"동화같은 느낌이었어요. 신데렐라가 요정 할머니랑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요.
전적으로 내 얘기만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요정 같았어요.
열심히 내 얘기를 들어주는, 내 편인 요정 할머니요."
-블라인드 마음보듬 후기 中

상담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 진행된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표정도 의미가 없다. 이름 대신 별칭으로 불린다. 이제부터 속 편하게 가슴 속 응어리를 말로 털어놓기만 하면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누군가가 50분간 경청해주고 공감해주는 자리다.

이 색다른 상담서비스의 이름은 ‘블라인드 마음보듬(이하 마음보듬)'이다. ‘봄그늘 협동조합’(이하 봄그늘)이 2018년 1월부터 시작한 힐링대화 프로그램이다. 서울대입구점(그레이프 라운지)과 강남점(이든비즈플러스) 두 곳에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봄그늘은 2017년 서울대학교 소셜벤처경영학회 인액터스에서 출발했다. 2019년 7월 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이들은 2017년 말 마음보듬 사업을 구상했고,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구체화해 마음보듬 서비스를 시작했다.

멘탈헬스케어 대중화 목표로 시각장애인 마음보듬사 양성

마음보듬사 '어린왕자'(사진 기준 왼쪽)와 봄그늘 협동조합 팀원 이서영(가운데), 김소은씨(오른쪽)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상담 컨셉을 위해 마음보듬사는 정면촬영하지 않았다.

봄그늘은 멘탈헬스케어 서비스를 대중화 하겠다는 미션과 시각장애인 특화직업을 창출하겠다는 미션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경험하는 현대인은 늘고 있다. 그러나 전문상담 비용이 비싸다보니, 쉽게 찾게 되지 않는다.

마음보듬은 '착한 비용'으로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서비스라고 봄그늘 측은 설명했다. 마음보듬은 문제해결보다는 말 그대로 고객의 마음을 보듬는다는데 중점을 둔다. 마음보듬사가 공감하고 경청하며 고객과 동등한 친구가 되어준다. 마음보듬 가격도 2만5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하다.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음보듬사’는 모두 시각장애인이다. 마음보듬사 양성과정 1기와 2기 각각 5명씩 10명 중 7명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나머지 3명은 실습단계에 있고, 교육이 끝나는 대로 마음보듬사로 배치될 예정이다. 3기 모집도 올해 안에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들은 ‘어린왕자’, ‘좋은’, ‘눈꽃’ 등 별칭으로 불린다. 블라인드 환경이라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 고객과 마음보듬사 모두 개인정보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채택했다. 

봄그늘 서비스 안내 팻말./사진제공=봄그늘 협동조합

맞춤형 ‘공감과 경청’으로 고객 위로

서비스 비용이 착하다고 비전문적인 것은 아니다. 마음보듬사는 전문 상담교육을 이수한다. 이들은 음악치료사, 상담심리 등을 전공했던 사람들로 구성돼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 출신 전문상담사에게 50시간 교육을 받는다.

상담실습 30시간을 수료한 뒤에도 ‘슈퍼비전’이라는 역량강화를 위한 심화교육을 격월로 받는다. 지난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민간 자격증으로 마음보듬사 자격증이 등록되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인정받았다. 

또한 이 서비스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로 제공된다. 마음보듬사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를 표시해 놓는다. 고객은 마음보듬사의 관심 분야를 보고 찾아간다. 예를 들어 친구와의 갈등으로 불안을 겪고 있는 고객은 ‘#트라우마 #불안 #분노 #타인과의갈등’을 담당하는 마음보듬사 '어린왕자'를 찾으면 된다.

이러한 맞춤형 서비스와 전문상담 대비 저렴한 가격 덕에 서비스 시작 2년 만에 250명이 마음보듬을 찾았다. 고객 재방문 의사가 92%에 달하고, 서비스 경험자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새로운 고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장애인이 더 잘하는 직업 개발이 목표

봄그늘 로고

마음보듬 서비스는 시각장애인이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특화직무로 인정 받았다. 마음보듬사에게 시각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라 '역량'이 된다. 시각장애인은 어둠에 익숙해 어두운 환경에서 장시간 근무가 가능하고, 정안인(正眼人)에 비해 청각이 예민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봄그늘은 상담 서비스를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 ‘장애인이 더 잘하는 직업’이라고 본다.

실제로 이들은 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 범위를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봄그늘 팀원 김소은씨(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시각장애인의 직업은 주로 헬스키퍼(안마사)에 한정돼 있다”며 “그마저도 체력 등 개인적인 역량의 차이로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40대에 시력을 잃은 1기 마음보듬사 ‘어린왕자’도 헬스키퍼 일을 잠깐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대학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했던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전공을 살린 일을 하고 싶었지만, 비용·시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어린왕자’는 우연한 기회에 봄그늘을 알게 됐고, 초창기부터 함께하며 상담 일을 다시 차근차근 배웠다. 마음보듬사로 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는 고객으로부터 “나도 몰랐던 나를 찾아줘서 감사해요”,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상담공부를 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은데, 일할 기회는 찾기 힘들다”며 “마음보듬사같은 다양한 일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다른 장애인도 자신처럼 하고싶은 일을 하며 즐거움과 보람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각장애인도 다양한 꿈을 꿀 수 있음을 증명

봄그늘도 마음보듬사라는 직업군이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이를 통해 마음보듬사의 안정적인 수입과 근무시간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 고용 확대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한다. 김소은씨는 “우리의 꿈이 작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가능성과 희망을 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봄그늘 팀원 이서영씨(서울대 국사학과)는 “마음보듬은 장애로 고통받는 시각장애인과 심리적 아픔을 겪은 고객들을 함께 보듬는다”며 “이 사업이야말로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의 존재가치를 빛나게 해주는 사업”이라고 밝혔다.

봄그늘 팀원 사진./사진제공=봄그늘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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