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사무총장. 사진. 구혜정 기자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사무총장.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지난해 100주년을 맞이한 세이브더칠드런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국제 NGO다.

‘아동의 보편적 권리’를 실현하고 증진하려는 NGO로, 한국 지부인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는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본격적으로 널리 알리게 됐다. 이후로도 꾸준히 아동 스스로가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아동의 권리 신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한국의 아동들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불행한 것이 현실이다.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2018년 아동 종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9~17세 아동‧청소년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57점으로 OECD 회원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이하 세이브더칠드런)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점차 탄탄하게 다져지고 있으나 아이들은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

이에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는 아동 유튜버의 인권 보호부터 아동 학대 방지 캠페인, 아동의 ‘놀 권리’확보, 위기가정 지원 사업 등 아동의 권리 신장을 위해 거의 모든 사안을 아우르고 있다.

이러한 세이브더칠드런의 실질적인 살림을 맡고 있는 정태영 사무총장은 30년 넘게 금융업계에 몸 담아온 ‘금융맨’이다.

일견 비영리단체와 사뭇 분위기가 달라 보이는 이력이지만, 정 사무총장은 자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살림꾼’이라는 역할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의 비전과 목표, 그리고 아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바람직한 미래를 그리는 데 주저않는 그의 모습에서 진심어린 열정이 묻어났다.

실제로 세이브더칠드런은 정태영 사무총장 부임 이후 안정적으로 외적 성장과 함께 내부 조직을 정비해 나가고 있었다. 다음 이사회에서 재임 여부가 결정된다는 그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남은 임기의 목표를 비롯해 세이브더칠드런의 다양한 사업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정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금융업계에 오래 몸 담으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 자리를 맡게 됐는지 궁금하다.

"1985년부터 33년동안 투자은행업계에서 일했는데, 2년간 우즈베키스탄에서 근무하게 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은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에 불과했는데 현지에서 빈곤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서 가슴이 무척 아팠다. 당시 빈민촌에 방문했을 때 단칸방에서 6명의 식구들이 살고 있더라.

아이 둘에 부모, 시어머니와 시숙까지 함께 살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게되자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의 부모님들도 기뻐했다. 그 때 더 좋은 공간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내가, 나아가 우리가 세계 시민으로서 어떤 책임을 갖고 있나 고민해보게 됐다.

이후로 구호사업이나 NGO 단체에 점차 관심이 커졌고 현지에서 근무하면서도 보육원을 찾아 후원 물품을 전달하는 사회공헌활동에 몸담게 됐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2010년 고 이태석 신부와도 개인적 연이 있어 수단어린이장학회에서 실무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경험이 NGO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다는 확신을 줬다."

보통 재단이나 비영리단체에는 이사장도 있고 사무총장도 있는데, 정확히 사무총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재단의 살림살이와 조직 운영 및 관리를 책임진다. 세이브더칠드런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기업의 CEO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이사회는 세이브더칠드런의 거시적인 사업 전략이나 방향성, 전체 예산 규모 등에 제언을 제시하는 역할이라면, 사무국에서는 실제 사업 운영 전략을 실행하고 조직을 운영한다. 그중에서도 사무총장은 후원금을 유치하고 재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등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셈이다.

사실 금융업계에서 제가 했던 일이 사무총장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업에서는 투자자를 모아 자금을 적재적소에 조달해준다. 사무총장은 후원자들의 기부금을 유치하고 이를 단체의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쓰는 역할로, 기존 업무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주주가 없다는 점에서 기업과는 다르다. 전적으로 모금액과 정부의 일정 부분 복지 예산으로 단체를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책임감이 요구되는 역할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세계적인 NGO로, 회원국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세이브더칠드런의 위상은 어떠한지?

"현재 전세계에 30개 회원국이 아동의 권리 신장을 위해 100년간의 노하우와 일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3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 피해 아동들을 구호하기 위해 세이브더칠드런 미국, 영국, 캐나다, 스웨덴 등이 한국지부를 창설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에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전신인 한국지역사회복지회에서 ‘내몽골 기초교육지원사업’을 시작하면서 43년만에 수혜를 받는 국가에서 세계 여러나라 지역에 도움을 주는 주요 회원국으로 성장했다.

2019년 기준 기부 모금액이 631억원, 개인 기부금이 560억원에 달하는데 예산 규모로 따지면 회원국 중 7위다.

다른 회원국과 비교해 개인후원자 비율이 높으며, 매년 성장하고 있는 부분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07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신생아 살리기’ 캠페인은 후원자가 직접 털모자를 떠 보내는 참여형 캠페인으로, 많은 후원자의 동참을 이끌어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가 사무총장 임기 마지막 해라고 들었다. 지난 임기에 대한 소회를 들어보고 싶다.

"더 하면 안될까? (하하) 농담이다. 사무총장으로 선임되면서 좋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했다. CEO라고 생각하다보니 단체를 운영하는 측면에서 독립 변수는 결국 사람과 재원이다. 기부금이 많으면 프로그램을 더 늘릴 수 있고 수혜 대상이 늘어나는데다 프로그램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재원이 한정되더라도 수행하는 사람에 따라 사업 집행 효율이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사무총장으로서 이 부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2018년 모금액이 742억원이었고, 지난해에는 815억원을 달성했다. 성장률로 따지면 상당한 성장이라고 자평한다. 올해 목표 모금액은 860억원이다. 다만 기업처럼 매출 목표를 설정해두고 전력 투구하는 방식은 NGO단체의 성격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돈만 있으면 좋은 일 할 수 있다는 말 흔히들 하시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다. 대략 460명 정도 직원들이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고 있는데, 모두 자기 분야에서 한정적인 재원을 가지고 일을 잘하고 경험도 축적된 전문가들이라 가능했다고 자부한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사무총장. 사진. 구혜정 기자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사무총장. 사진. 구혜정 기자

외형적 성장만으로 남지 않도록 고민하신 게 느껴진다.

"세이브더칠드런의 모금액이 이처럼 늘어날 수 있었던 건 모두 24만명의 정기 후원자 덕분이다. 어느날 갑자기 후원 의사를 밝혀오는 분들은 대부분 간접적으로 우리 기관(세이브더칠드런)을 알고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후원을 시작하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기관의 저변을 넓혀 정기 후원자들을 꾸준히 늘려나갈 계획이다."

저변을 넓혀 나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기존 후원자와 일반 시민들과의 접점을 늘리는 사업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리다. 100가지 말상처' 캠페인 같은 경우다.
이 캠페인은 부모 혹은 어른들에게 들었던 상처받는 말 100가지를 아이들이 직접 그림으로 표현한 뒤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공개했는데, 큰 관심을 받았다. 온오프라인 통합 누적관람객 210만명을 기록하면서 부모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상처 준 경험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아동학대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언어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됐다. 덕분에 여러 단체에서 전시 요청도 들어와서 지부마다 전시도 하고, 대한민국광고제에서 사회 공익캠페인 부문 대상까지 받았다.

이렇게 효과적인 캠페인과 꾸준한 사업활동이 병행되면 사회 인식을 개선하고 종국에는 세이브더칠드런만의 ‘개방성’을 바탕으로 우리 기관의 저변을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말로도 때리지 마세요’라는 안내서를 PDF 파일로 공개해 어떤 기관에서든 책자로 제작할 수 있게끔 제공하고 있다.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기관과 세이브더칠드런이 함께 책자를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보 공유와 협업을 통해 더 개방적인 조직으로서 아동 학대에 관한 전반적인 인식 개선을 주도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동의 ‘놀 권리’를 위한 사업이 인상깊었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도 힘쓰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놀 권리'는 그 바탕이 되는 개념 중 하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놀 권리'라는 개념을 이슈화하고 놀이가 아동 및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성과 평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를 바탕으로 2년마다 한국 아동의 삶의 질을 연구한 보고서를 발간해 아동의 생활과 휴식, 놀이 실태를 확인한다. 또한 각 시‧도별로 학교를 선정해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으로 약 120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동이 권리 주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것은 인식 개선이 아닌가?

"물론,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아동을 둘러싼 환경이나 이들을 보호하는 시스템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아동이 느끼는 주관적인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 수준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환경 관련 지표와 차이가 크다.

이는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로부터 비롯된다. 부모나 선생님들부터 노는 것을 '공부 못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아이들은 '놀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공부, 학원에서도 공부를 하게 된다. 이렇게 아이들의 자유 시간은 숙제 후  자투리 시간이 잠깐이고, 이마저도 게임 잠깐 하고 나면 끝이다. 당연히 삶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시간만 확보해서 자연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장소도 필요하다. 학교 및 도심, 농어촌 등의 놀이터는 대개 너무 오래돼 낡았거나 방치되고 있다.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니 그 장소는 비행청소년이나 노인들이 차지하게 된다. 그래서 세이브더칠드런은 놀이터를 지키고 개선하는 사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남은 기간 동안의 목표는 무엇인가?

"시스템적인 부분, 그리고 재정적인 부분의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 세이브더칠드런은 100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쌓아온 경험이 있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두려움 없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창립자로부터 내려오는 뜨거운 정신도 있다. 지금도 충분히 좋지만,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의 신뢰도와 인지도가 더 올라가고, 후원자의 만족도와 직원들의 자부심이 더 높아질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조금 더 욕심을 부리고 싶다."

올해는 어떤 사업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가?

"우리 기관을 비롯해 어린이재단 등 몇 개 단체들이 함께  '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인 자식에 대해 부모의 훈육을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훈육의 개념에는 물리적 체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문제인데, 손바닥이나 종아리는 당연히 체벌할 수 있다는 응답이 70%가 넘는다. 대부분의 친권자들이 처음에는 가볍게 혹은 경미한 수준으로 체벌을 가하지만 그것이 발단이 되어 저항이 불가능한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현재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1년에 40여건에 이르고, 최근 천안에서 또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이 발생한다는 사실 자체는 아동 학대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뜻한다. 하루 빨리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부모의 체벌을 문제시하기 어렵게 만드는 법제 개선이 시급하다."

정부 및 기업, 국민 등에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다면

"국내 사업도 중요하지만 미래까지도 사업 범위를 넓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후 변화나 현재진행중인 전쟁 등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직면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나아가 그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의 자손들이 직면해야할 문제까지도 지금부터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기부금을 낸 것으로만 끝날 일도 아니라고 사료된다. 미래를 위해, 미래 세대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한 사람이나 한 기관에 그치지 않고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함께 나설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어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코로나19를 보면서 우리가 서로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를 느끼게 되지 않았나. 아직 미래를 위해 고쳐야할 일은 수없이 많다. 때문에 결국 어른으로서의 책임감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될 수 있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