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지금 당장 행복한 삶, 농촌에선 가능하네요”

[인터뷰] 귀농 4년 차 이지현·한승욱 부부

충북 괴산서 친환경·유기농 농사 지어
농촌진흥청 창농 지원으로 기반 다져
지역 위한 농업 교육·체험 운영 계획

이지현(왼쪽)·한승욱 부부는 “농사와 ‘뭐하농’ 준비에 마을 일까지 하느라 몸은 피곤해도 매일 눈뜨고 잠들 때까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며 “이런 삶을 살게 해준 괴산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괴산=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나중 말고,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어서요.”

번듯한 직장을 버리고 귀농을 선택한 농사꾼 부부에게 이유를 묻자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2017년부터 충북 괴산 감물면에서 친환경·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이지현(33)·한승욱(36) 부부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아내 지현씨는 “정직하게 일하고, 가족이 마주 앉아 식사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이 소박한 희망이 도시와 회사에 얽매인 삶에선 ‘환상’이란 걸 깨닫고 귀농을 결심했다”고 했다. 지난 15일 만난 부부는 “요즘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며 웃었다.

귀농은 현실… 치밀한 준비가 중요해

부부는 “귀농을 꿈꾸긴 했지만, 단숨에 도시를 떠날 거란 생각은 못 했다”고 말했다. 조경 분야에서 일하던 두 사람 모두 업계 최고로 꼽히는 곳에서 일했고, 그래서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기가 어려웠다. 남들처럼 사표를 가슴 한쪽에 품고 ‘워라밸’ 없는 생활을 견뎠다. 결정적인 계기는 유산이었다. 아이를 잃고 수술을 앞둔 아내를 위해 남편 승욱씨가 휴가를 냈더니 “네가 수술받는 것도 아닌데 왜 출근을 안 하느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을 묵묵히 견디던 승욱씨는 그길로 사표를 냈다.

결심이 서자 치밀한 준비에 나섰다. 부부는 “스스로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준비했다”며 웃었다. 가락시장에서 취급하는 모든 농산품의 10년치 거래 가격을 따져봤다. “농사엔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요. 땅과 기계를 빌리고 종자도 사고, 기술도 배워야 하니까요. 기댈 곳 없이 시작하는 저희 같은 사람들에겐 특히 초기 수익이 중요해요. 굶게 되면 도시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둘 다 월급쟁이 생활을 한 터라 수확 텀이 긴 품목보단 ‘회전’이 빠른 작물이 좋겠다고도 생각했죠.”(이지현)

조건에 꼭 맞는 품목은 표고버섯이었다. 표고버섯은 거래 단가가 높았고, 매달 수익이 나왔다. “표고버섯은 한 배지에서 버섯이 수십개 나오는데, 이걸 사람 손으로 매일 따줘야 해요. 햇볕도 세심하게 쬐어 줘야 해서, 제대로 키우려면 온종일 버섯에만 매달려야 하죠.”(한승욱)

마침 지현씨 아버지 고향인 괴산이 표고버섯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부부는 괴산으로 귀농 장소를 정하고 본격적인 ‘표고버섯 정복’에 돌입했다. 은퇴한 아버지가 괴산에 살고 있긴 했지만, 가족 누구도 농사 경험은 없어 부부는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정부나 지자체, 농촌진흥청 등에서 제공하는 농업 기술, 창농 강좌를 찾아다녔고, 농가에선 현장 경험을 쌓았다. 부부는 “인부를 구하는 농가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사장님께 배웠다”며 “‘젊은 사람들이 기특하다’면서 아낌없이 가르쳐 주시더라”고 했다. 꼬박 4개월을 지역 농가에서 보낸 부부는 자신들의 농장인 ‘파머포유’를 열었다.

지역에 받은 만큼 돌려줄 것

올해로 귀농 4년 차에 들어선 부부는 이제 어엿한 농사꾼이 됐다. 표고버섯 하나로 시작한 농사 품목도 어느새 옥수수·감자·고구마·적양배추 등 일곱 품목으로 늘었다. “저기 비닐하우스에선 적양배추를 키우고, 여기 밭에선 옥수수와 감자를 키워요. 이 옥수숫대 좀 보세요. 엄청 튼튼하죠? 유기농으로 이렇게 키우기 쉽지 않아요.” 부부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싱싱한 작물들을 가리켰다.

부부는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여러 도움 덕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 창업농 지원책’이 큰 힘이 됐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창농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3년간 매달 100만원가량 지원금을 받았다. “덕분에 다른 고민 없이 농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귀농 초기에는 생활비를 벌려고 과외 일도 했었는데, 그땐 농업 기술 익히는 데 애를 먹었거든요. 귀농했다가 수익 문제로 도시로 돌아간 청년도 봤는데, 그들도 저희처럼 지원을 받았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 같아요.”(이지현)

이들은 ‘받은 만큼 돌려주자’는 생각으로 여섯 지역 청년 농가와 함께 ‘뭐하농’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옥수수·허브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정원을 만든 뒤 생태·농업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과 마을 주민들을 위한 북카페를 운영할 계획이다. 올해 11월 개점을 목표로 프로그램과 카페 메뉴 개발을 진행 중이다.

부부는 요즘 서울에서보다 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새벽부터 농사를 짓고, 짬짬이 뭐하농 일도 한다. 남편 승욱씨는 감물면 새마을회 위원이라 마을 일까지 돌본다. 부부는 “‘한가한 농촌 생활’은 환상”이라고 말했다. “성실한 농사와 이웃 간 관계 맺기를 못 하면 그냥 ‘아웃’되는 게 농촌이에요. 출퇴근 시간만 채우면 회사와 단절할 수 있는 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이죠. 지금 생각해보니,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네요(웃음). 피곤하긴 한데 부품처럼 소모되던 느낌은 전혀 아니에요. 예전에는 미래를 불안해했지만 요즘엔 내일을 기대하며 살거든요.”

[괴산=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공동기획 | 농림축산식품부·조선일보 더나은미래

※농림축산식품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실직·폐업·무급 휴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도시 구직자를 위한 ‘농업 일자리 연계 단기 귀농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5개 도시농협을 통한 귀농·금융 교육 프로그램, 시·군 농업기술센터에서의 귀농 기초 교육, 현장 실습, 단기 영농근로 체험 프로그램 등이 포함돼 있다.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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