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냉전의 입구에서 남북관계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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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냉전의 입구에서 남북관계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자
  • 2020.06.23 09:00
  • by 이찬우 (테이쿄대학 교수)

2020년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개성 금강산 등 휴전선 지역에서 물러났던 북한군대가 다시 원위치하고 남북 간에 상호 비방과 마찰이 재발하면 남북 간에 소모하는 긴장관리비용은 그만큼 높아진다. 이렇게 되지 말았어야 했다. 

한 예로 남한 정부는 2018년 남북간 사이 좋을 때 한 보건의료 협력 약속에 따라 2019년 1월초에 북한주민 20만명이 사용할 독감약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의결하였고 정부가 비축해둔 타미플루를 북한에 바로 보낼 수 있었다. 이 독감약은 2009년 멕시코 신종플루 사태 때 구입하여 10년 비축유효기간으로 2019년이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1년 후에 폐기하느니 긴급수요가 있는 북한에 도움을 주고 재고도 덜어내는 효과가 있는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었다. 북한도 겨울철 독감이 유행하고 있어서 시급을 다투어 받고 싶었다. 

▲ 2009년 북한에 전달될 타미플루를 실은 차량 [이미지 = MBC 캡처]
▲ 2009년 북한에 전달될 타미플루를 실은 차량 [이미지 = MBC 캡처]

그러나 남한 정부는 미국 정부와 휴전선을 관리하는 유엔사령부의 반대에 부딪혀 눈치 보며 제때에 지원하지 못하고 늦추다가 겨울을 보내버렸다. 당시 통일부의 해명은 한미 사이에 잘 논의하고 있고 북한 내부에 의견조정이 안 되돼서 기다리고 있다는 식이었다. 

독감약 실은 트럭 장비가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 유엔제재 위반이라고 하면 아예 금속이 하나도 없는 지게에 싣고 가면 되는 일이었다. 독감약은 무겁지도 않다. 전국에서 자원하는 농민, 노동자, 청년 학생, 시민 들이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모여 지게에 독감약을 지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가 전달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러면 1998년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당시)이 시연한 소 떼 방북 이후 얼마나 세계적인 장면이 되었겠는가. 미국과 국제사회는 6.25전쟁때 북한의 지게수송부대의 능력에 놀란 이후 남한의 지게수송부대의 능력에 다시 한번 놀랄 일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더해서 인도지원조차 사실상 막는 미국 정부의 잘못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참 아쉽다. 지게가 창의적일 수 있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다. 위기 때에는 자기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 라이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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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무원들은 미국 정부와 "한미워킹그룹"에서 상의(라고 쓰고 허가라고 읽는다)하여 이해 받지 않으면 진행하지 않는 "몸조심"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워킹그룹은 한국이 미국에 제의해서 만든 것이다. 이걸 만들자고 처음 제의한 자가 누구인지 참 바보스럽다. 미국은 이 워킹그룹을 대북한 제재 강화와 확인에 이용했다. 후에 이 틀이 문제되니 한국이 참석하지 않아서 미국이 워킹그룹을 빨리 재개하자고 한국정부에 요구하는 상황이 생겼다는데 한국정부는 이도저도 못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로 일부 탈북자그룹이 정부를 무시하고 미국에 기대서 비인륜적 내용의 삐라를 띄우는 일까지 하였으니 한국 정부의 통솔력과 책임성이 문제였다. 

북한은 남한이 그간 금강산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개, 의료협력에 계속 약속을 지키지 않고 미국에 사대주의하다가 급기야는 "최고 존엄"을 삐라로 비방하게 놔둔 것에 대해 복수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북한도 책임이 없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2019년 1월의 독감약 지원 추진의 경우를 보면, 개성 판문점에서 독감약 받기위해 두 달간 기다리다 돌아갔다고 하지만, 2월에 "한미워킹그룹"의 논의가 진전되어 독감약을 전달할 수 있는 협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받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미 독감 철이 지나서인지, 남한당국에 화가 나서인지, 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준비가 더 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받는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북한당국이 잘못한 것이다. 3월 이후는 하노이회담이 결렬되어 국면이 완전히 바뀌어서 북한은 남한과의 민간 교류 협력도 중단했다. 남한과의 관계를 북한의 판단과 일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남한을 대등하게 보지 않고 내려다보려는 습성의 반영이다. 이는 남한 정부도 마찬가지다.

남북 간에 이렇게 되어버린 2020년이지만 남북관계는 기나긴 여정을 경험해가는 과정이다. 좋은 결과(평화와 통일)를 내기 위해 다시 상황을 조성하는 밭갈이를 힘들어도 또 하면 된다. 그 방법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다양해질 수 있다. 

그 방법의 하나는 국제정세를 잘 이해하는 데서 나올 수 있다.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문제에 더해 흑인 인권 문제로 혼돈에 빠져있다. 그런 와중에도 선거를 코앞 에 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전략적 대결을 마음먹은 듯, 중국을 배제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더욱이 중국과 관련된 홍콩 문제, 대만 문제. 남중국해 영해문제 등은 한반도의 긴장 못지않게 아시아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 지역에 다시 냉전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냉전후시대가 진영 없는 초국가적 대립이 전세계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했다면, 이제 이슬람원리주의 세력 같은 초국가 세력이 힘을 잃어가고 미국과 중국이 국가들 진영으로 대립하는 신냉전시대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 Economic Prosperity Network)라는 것을 한국, 일본, 베트남, 인도, 호주, 뉴질랜드에 제시했다고 지난 4월 마이크 폼페오 미국무장관이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중국을 고립시키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다. 이 경제네트워크에 포함된 국가들의 기업, 시민, 에너지, 인프라, 무역, 디지털 비즈니스, 연구개발, 교육 등 경제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포함하여 수급체계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세계의 공장"이요 "세계의 시장"으로까지 성장하면서 세계 경제의 1위 국가로 될만한 조건들을 갖추어 왔다. 그 핵심은 각종 원자재와 부품 및 상품의 글로벌 공급망(서플라이 체인) 시스템을 중국 중심으로 정비해 온 것인데, 애플 같은 미국 기업들이 무공장(파브레스) 경영을 추진하여 미국-대만-중국 사이에 수평적 분업체계를 구축했었던 것도 성공 요인 중의 하나였다. 한국은 이미 최대의 무역상대국이 중국이고 한중간에 산업 부문별 부품, 원료, 상품의 수출입이 이미 구조화된 상태다.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서 더 나아가 “일대일로(一帯一路)” 전략구상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중국식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냉전후시대의 성과인 중국의 시장경제 성공을 다시 봉쇄하는 것이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번영네트워크" 정책이기에 신냉전시대의 도래를 염려할 수밖에 없다. 미·중 간의 대립은 전략적 대립이며 냉전시대의 미·소 간 대립을 연상시킨다. 

미·중 간의 전략적 대립이 신냉전체제로 가게 되면 한반도에서는 남북한에 대해 국가적 아이덴티티를 분명하게 하도록 요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만일 남한이 미국 진영에 북한이 중국 진영에 전적을 가담하는 양상이 나타나면 한반도의 분단상황은 고착되고 국가적 대립상황을 맞게 된다. 한국은 과거 냉전시대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완전히 분리된 블록경제에서 자본주의로 경제성장을 하였고, 냉전후시대에는 세계화된 시장경제에서 아시아 통화위기를 극복하고 중국과 더불어 경제성공을 지속했다. 이미 진영을 넘어 개방경제로 성장한 한국으로서는 신냉전시대가 되면 안보 불안에 경제 불안까지 나타날 우려가 있다. 

대만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면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호응하고 "경제번영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일본-대만-동남아시아-인도-호주 라인으로 안보 및 경제 블록이 구축되면 한국으로서는 이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반면 중국은 중국-동남아시아-아프리카와 중국-중앙아시아-유럽으로 이어지는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데, 대만과 홍콩의 독립을 막는 것을 사활적인 관건으로 보고 있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등 무리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남아시아(아세안 10개국)는 나라 간 성향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외교(자주외교)를 함으로써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이 선택할 전략은 동남아시아와 연대하여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다양화하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은 일본이 중국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중국 이외의 국가로 투자를 늘리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붙인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균형외교를 추구해야한다. 그러면 일본도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는 선택을 할 수는 없기에 미국은 현실적으로는 중국봉쇄를 성공시킬 수 없게 된다. 미국과 중국의 줄 세우기를 피하는 길이 살길이다.

그리고 남북 간에 진영 외교와는 다른 남북협력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신냉전시대에 남북이 진영논리를 극복하는 길은 국가(중앙정부)가 과도한 부담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남한은 중앙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창구 단일화"해서 다 하려다가 아무것도 못 한 형국이다. 이제 중앙정부가 할 일보다는 민간과 지방이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중앙정부는 안전보장에 힘쓰고 교류는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에 맡기는 시대가 강제적으로 도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북한은 어떤가. 과거 북한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의 달인이라고까지 불렸다. 지금은 북한에게 중국이 사실상 유일한 경제적 안보적 버팀목이라고 분석하는 눈들이 많다. 북한이 남한을 버리고 중국 진영(러시아를 포함)에 올인할 거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북한이 남한을 대하는 태도를 남북관계를 넘어선 국제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 진영에 완전히 가담하는 것은 그동안의 북한의 정책으로 보아 예상하기 힘들다.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해서 그러한 진영적 선택을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김정은시대에 들어 충격 중의 하나였던 "장성택 숙청" 사건의 한 특징은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한 행태에 대한 숙청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에너지와 원료와 부품, 상품을 중국에 의존하는 것이 많고 2018년 이후 중국과 정상회담을 포함한 외교적 관계가 상당히 강화되었다고 해도 북한은 전통적으로 균형 외교를 선택해온 역사가 있다.  

그래도 북한은 국내적으로 무력강화에 자원 배분을 많이 해온 터라 경제생활이 많이 어렵다. 미국과 관계개선이 결렬된 상황에서 당면한 경제적 곤란을 중국과 협력으로 풀 것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신냉전 블록경제에 가담하는 외교정책을 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국제적인 코로나감염사태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여 무역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지난 반년 (1월-6월) 동안 북한경제는 어렵지만 버티고 있고 물가와 환율도 대체로 안정적인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장마당 시장엔 사람이 없고 팔 물건도 없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지만, 굶주린 모습들은 아니다. 최근 6월에 중국이 북한에 식량 80만 톤을 배편으로 지원했다는 모 일간신문의 보도는 가짜뉴스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국경지역에서 중국과 밀무역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보지만 그보다 국내에서 경제가 돌고 있다. 이는 지방이 스스로 자력갱생하는 길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자체의 자원을 가지고 기업과 농촌과 지방이 경제를 꾸릴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고 중앙정부가 이를 통일적으로 지도한다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북한도 지방이 일어서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제 중앙정부가 좀 더 전략적 행위자로서 균형 외교의 지혜를 짜내고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남북교류는 지방과 시민사회에 맡긴다면 남북한이 신냉전의 대립 구도를 뚫고 상생 구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한반도를 싸움터로 만들어 대립과 봉쇄로 나타나는 결과는 막아야 한다.

신냉전시대로 들어서려는 입구에서 남북관계는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자. 시민들과 지방이 자율적으로 남북 경제사회교류를 진행하도록 중앙정부는 길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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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 (테이쿄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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