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아직 못 푼 빈곤의 숙제

“수급자 떨어뜨리는 게 그들 임무 같아”…가난 외면한 복지행정읽음

박용하 기자

비수급 빈곤층

[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아직 못 푼 빈곤의 숙제]“수급자 떨어뜨리는 게 그들 임무 같아”…가난 외면한 복지행정
■ ‘빈곤의 숙제’ 아직 못 풀었다

집중진단 - ‘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2014년 2월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 한 단독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던 60대 여성과 30대 딸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60대 어머니는 근처 놀이공원의 식당에서 일하며 병든 큰딸과 신용불량자인 작은딸을 보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몸을 다쳐 식당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이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가난하고 도움받을 곳 없는 이들을 지원해주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었지만 자격이 까다로워 이들 모녀는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이들의 죽음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이란 이름으로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5년. 지난 15일 기자가 찾아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은 ‘가난’을 상상하기 힘든 동네였다. 석촌동의 북쪽으로는 123층 높이의 롯데월드타워가, 남쪽으론 건국 이래 최대 아파트 단지라는 ‘헬리오시티’가 들어와 있었다. 주변의 개발 붐은 이곳의 땅값도 크게 흔들어 놓았다. 근처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은 “5년 전과 비교하면 못해도 땅값이 2배로 뛰었다. 좋은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 100만원 정도를 줘야 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빈곤은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낡은 주택의 반지하 방들은 월세가 20만원 안팎이었다. 주변의 놀이공원이나 가락시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저소득층 노동자들은 일터와 가깝다는 이점 때문에 햇볕을 볼 권리를 포기하고 이곳에 모여들었다.

정부와 국회는 이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며 관련 법을 정비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낮추고,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 처한 저소득층이 신속히 보호받을 수 있는 ‘긴급복지지원’ 대상도 늘렸다. 복지담당 공무원이 단전·단수 혹은 건강보험료 체납 정보를 근거로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사업도 진행했다.

하지만 현재도 제2, 제3의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서울 중랑구 망우동 주택가의 한 반지하 월세방에서 두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에게는 노인기초연금 25만원 외에 받은 정부 지원금이 없었다.

가난해도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5년을 맞아 경향신문이 만나본 ‘비수급 빈곤층’(가난한데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도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이들을 도와줄 가능성이 있는 가족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혹은 근로능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정부가 복지정책의 큰 틀을 전환하지 않은 채 미시적인 여러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복지 사각지대에서 생기는 사건도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빈곤층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성장의 온기는 이들에게 미치지 않았다. 양극화 속에 이들의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낙상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61세 이광희씨가 18일 서울 영등포의 한 고시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낙상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61세 이광희씨가 18일 서울 영등포의 한 고시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20년 된 기초생활보장 제도
근로·부양 조건 까다로워
93만명은 정부 지원 못 받아
이혼 후 생사도 모르는 딸 셋
왕래 없던 아들 전화 한 통에
생계급여 신청도 무용지물
수급자들에만 가난 책임 지워

가난을 가난이라 인정받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송파 세 모녀’처럼 생활이 힘든데도 가난을 인정받지 못하고 국가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이들을 ‘비수급 빈곤층’이라 부른다. 이들은 소득과 재산 등을 종합해 측정한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1인 가구 기준 170만원)의 절반도 안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 있거나 근로능력이 있다는 등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

■ 연락 끊겨도 가족 있다는 이유로 탈락된 김건호씨

한때 잘나가는 관리수의사로 일했다. 김건호씨(79·가명)는 50세 후반이던 1997년 회사가 외환위기 사태를 맞으며 일자리를 잃었다. 저축해놓은 돈으로 일본에서 소를 들여오는 사업을 하려 했으나, 실패해 남은 돈도 잃었다. 돈이 없어지자 가족들 간의 불화는 깊어졌고 결국 아내와 세 딸, 아들과 헤어지는 신세가 됐다.

그는 연금으로 낸 500만원을 찾아 서울에 월 38만원의 집을 얻어 생활했다. 마땅히 돈을 벌지 못하니 갖고 있던 돈만 줄어들었다. 월세 낼 돈도 없어진 그는 ‘주거복지센터’의 도움을 받아 성북구에 월 20만원짜리 반지하방을 얻어 생활했다. 정부로부터 생활비를 도움받기 위해 생계급여를 신청했는데, 복잡한 소득·재산 요건을 이해하는 것은 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서류를 준비해 동주민센터에 냈지만, “소득이 있는 아들과 연락할 수 있으니 안된다”는 답이 왔다. 현재 법은 생계급여를 신청한 이의 배우자나 자녀들이 법이 정한 기준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면 급여를 지원하지 않는다.

김씨는 “가족 관계가 파탄 나 아들이 원망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도와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라며 담당 공무원을 설득해야 했다. 김씨 아들은 식품회사에서 차량을 운전하고 있는데, 그가 전화를 했을 때도 “도와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담당 공무원이 하라는 대로 가진 통장을 다 냈고, 자녀한테 돈을 받은 기록도 없었다”며 “그런데도 자녀가 연락 가능하다는 이유로 안된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담당자들은 신청자들을 떨어뜨리는 게 임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생계급여 없이 기초연금 25만원에 주거복지센터에서 지원받는 5만원을 더해 30만원으로 살고 있다. 하루 한 끼 정도는 거르거나 친구들의 신세를 지는 식이다. 그는 “공짜 지하철을 타고 종각에 나가 그곳에서 알게 된 지인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며 “일주일에 3번 정도 아는 이들이 밥을 사주고 있는데, 민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이 상태로 지금은 어찌어찌 살지만, 몇 개월 전 지하철에서 올라오는데 한쪽 다리가 아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며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는 게 아닐까 무서워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 아픈데 일할 능력 있다며 수급 탈락한 이광희씨

지난 13일 영등포의 한 고시원에서 만난 이광희씨(61)는 자신의 인생 대부분이 가난했던 기억뿐이라고 말했다. 남의 땅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식구들을 배부르게 먹이지 못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형편이 급격히 기울었다. 중학교 갈 형편이 안된다는 걸 깨달은 이씨는 초등학교를 자퇴한 뒤 공장과 광산, 고깃배까지 각종 일터를 전전했다. 한때 배를 타며 돈을 벌었지만 순간이었다. 투자한 가구공장에 불이 나며 이씨는 떠도는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겹게 따라붙은 가난이었지만, 그는 한 번도 국가의 도움을 받아보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도 못했고, 그 역시 “국가에서 도움만 받는 삶은 창피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3년 전쯤 공사장 일을 하다 3m 높이에서 추락해 등뼈 4개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산재 처리를 받아야 했지만 회사는 귀찮은 문제를 피하려 합의를 종용했고, 일시불로 많지 않은 보상금을 건넸다. 이씨도 나으면 다시 일하고 싶어 회사의 부탁을 들어줬다. 하지만 2년 뒤인 지난해 6월 몸이 회복된 줄 알았던 이씨는 갑자기 찾아온 왼쪽 다리 마비로 쓰러졌다. 예전의 등뼈 부상이 완치되지 않았고, 뇌경색도 온 것이었다. 그는 “합의금을 쓴 상태에서 일마저 할 수 없으니 죽는 일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는 예전에 인연을 맺은 시민단체 ‘홈리스 행동’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실려갔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한 차례 어려움을 겪은 이씨는 그제서야 정부가 지원하는 주거급여(월세 등)와 생계급여(생활비)를 신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절차는 쉽지 않았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여전히 다리를 쓰는 게 불편한데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것이다. 이 경우 자활 작업을 해야 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다시 일하긴 힘든 상태였다. 자활 작업을 유예하는 절차라도 밟아야 하지만, 이씨가 속속들이 알기는 힘들었다. 결국 ‘자활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가 수급자가 된 지 한 달 만에 급여가 중단됐다. 그는 “밥이야 어찌 해결할 수 있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마음고생이었다”며 “‘언제까지 버텨야 하느냐’는 막막함과 예전 지인들을 찾아가 생활비를 구걸하는 것은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나 이씨 같은 비수급 빈곤층은 2015년 기준 93만명이었다. 정부는 4년 뒤인 오는 2022년에는 절반가량인 47만명까지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이은 정책에도 이들의 규모는 크게 줄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 근로 능력·부양 요건 완화해도 수혜자 확대는 더뎌

지난 5년간 뭐가 바뀌었나

수급자 찾는 ‘적극 행정’ 미흡

비수급 빈곤층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버티고 있지만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나서야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곤 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그런 사례였다. 정부와 국회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관련 법을 정비해 왔다. 사건 이전에는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4인 가구 기준 월 167만원)보다 낮으면 주거급여부터 생계급여 등 각종 급여를 한꺼번에 지원해주고, 이 기준에 미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7월부터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생계비와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등으로 나누고 각각 기준을 달리 매겼다. 소위 ‘맞춤형 급여체계’가 시작된 것이다. 이를 통해 의료·주거·교육 급여의 자격 요건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부양의무자’ 기준도 낮아졌다. 예전에는 자녀가 사망해도 그 배우자(사위·며느리)가 일정 소득 이상 올리면 부양을 이들의 책임으로 보고 국가는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 모녀 사건 이후 이 기준은 없어졌다. 교육급여와 주거급여에서는 부양의무자 요건이 아예 폐지됐다. 김건호씨 역시 연락되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생계급여를 받지 못했지만, 주거급여는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정책 변화가 너무 더디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측은 “생계급여의 경우 정부가 주는 지원금 중 액수가 가장 큰데, 여전히 부양의무자 요건이 적용되고 있어 비수급 빈곤층들이 혜택을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주거급여 등에서 부양의무자 요건을 없애 빈곤층을 더 많이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신청자는 예상했던 50만명보다 적은 20만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능력평가에 대한 지적도 많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는 “가난한 이들 중에는 사실상 근로능력이 약한 사람들이 많으며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일정 정도는 일을 하지 않고도 최소한의 삶이나마 영위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기초보장제도의 본래 목적”이라며 “안 그래도 제도가 복잡한데, 근로능력까지 너무 강조하면 ‘일을 안 해 가난한 것’이라며 수급자에게 지나치게 빈곤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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