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충무로의 작은 상가에서 시작해 오랜 시간 해방촌에서 한국 독립 출판의 태반 역할을 해 온 ‘스토리지북앤필름’이 강남점을 새롭게 열었다. 주소지는 강남대로 426. 작은 골목도 아닌 강남역 지오다노 맞은편이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알라딘, 예스24가 빠짐없이 자리한 빌딩숲의 중심에 섰지만 이 작고 단단한 서점이 품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10년 전 필름카메라를 좋아하던 직장인에서 사진집을 출간한 독립출판 작가, 이어 독립 서점 주인이 되어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의 창작물을 응원하고 있는 강영규 대표를 만났다.
전체 공간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원형의 모임 공간이 눈에 띈다. Ⓒ Mijin Yoo
강남대로에 독립서점이 들어섰어요.
좋은 기회가 닿아 문을 열게 됐어요. 저희 힘만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웃음) ‘일상비일상의틈'이라는, MZ 세대를 아우르는 열린 공간을 만들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 해 온 저희에게 연락을 주셨어요. 있는 그대로의 스토리지북앤필름을 구현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셨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카페 ‘글라스하우스’, 사진 스튜디오 ‘시현하다' 등 흥미로운 곳들과 함께 자리하게 됐습니다.
넉넉한 면적에 비해 서가가 많지 않아요.
여백이 있길 바랐어요. 해방촌에서는 책을 꽂을 공간이 부족했던 부분이 늘 아쉬웠어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랐고, 그것이 곧 공간 디자인에도 반영되길 바랐습니다.
Ⓒ Mijin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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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스토리지북앤필름이 이전에 운영했던 분점 '초판서점' 성산동 매장의 집기.
(오른쪽) 이를 참고해 만든 강남점 집기. Ⓒ Mijin Yoo
건물 내부 전체를 기획하는 팀과 대여섯 번 정도 미팅을 거쳐서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어요. 공간 중앙에는 키가 낮은 매대를 두어 시야가 트일 수 있게 했고, 가장자리의 서가에도 특징을 주었어요. 서가는 책의 면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등을 모아두어도 될 때가 있잖아요. 저희는 가능한 한 많은 독립출판물을 잘 보이게 하는 방향으로 구성했습니다. 한편 책 이외의 굿즈를 위해선 여러가지로 활용할 수 있는 타공판을 두었고요. 삼각뿔 모양의 집기는 이전에 분점으로 운영했던 초판서점의 성산동 매장에 두었던 집기를 참고해 만든 거예요.
책의 표지를 보여줄 수 있도록 구성한 서가, 활용도가 높은 타공판. 굿즈 속 캐릭터는 스토리지북앤필름 12주년을 기념해 작가 ‘겸디’와 함께 만든 것. Ⓒ Mijin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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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의 사춘기'가 맡은 식물 데코레이션. Ⓒ Mijin Yoo
도서 선정에 있어 강남점에서 더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사실 강남대로에 대형 서점이 모두 들어와 있거든요. (웃음) 반대로 강남구 전체에도, 옆 서초구에도 독립서점은 한 곳도 없고요. 그래서 더욱 더 저희가 가야 할 방향은 독립출판물이라 생각했습니다. 독립출판물은 설사 기성 서점에 입고를 했더라도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지 않기에 전면으로 잘 나오지 못하거든요. 이곳에서만은 더 다양하고 독특한 독립출판물을 많이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저희 책방이 다른 독립 서점에 비해서도 많은 종의 서적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강영규 대표의 사진집 WALK 시리즈. Ⓒ Mijin Yoo
독립 출판물만의 조금 다른 시선이라 함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무속인 인터뷰집 ‘무'>라는 책이 있어요. 보통 무속인을 매체나 도서에서 다룰 때는 붉은 핏빛의 강렬한 이미지나 작두를 타는 모습, 자극적인 언어들이 주를 이루잖아요. 이 책은 분명 같은 무속인을 인터뷰했는데, 업무를 마치고 친구를 만나 술 마시면서 넋두리를 하는 장면을 등장시켜요. 막상 만나서 이야길 들어보니 일반적인 직장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거예요. (웃음) 사뭇 다르면서 재미있는 시선이었죠.
매달 새로운 주체와 함께 하는 전시 공간. Ⓒ Mijin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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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전시 공간이 눈에 띄었어요.
매월 주제를 바꿀 예정입니다. 지금은 오랜 시간 교류해 왔던 일러스트레이터 문제이moonj 작가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다음에는 베어 매거진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고요. 그 다음에는 어떤 브랜드나 지방의 독립서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작가들이 많거든요. 아직 숨겨져 있는 창작자들을 알리고, 이곳에 오시는 분들께서도 흥미로운 발견을 하실 수 있도록 이 공간을 잘 활용해 볼 생각입니다.
키미앤일이와 함께 제작한 강남점 개점 기념 굿즈. Ⓒ Mijin Yoo
말씀하신 것처럼 강남에 독립 서점이 많이 없었던 만큼, 독립 출판을 처음 접하는 분들도 이곳을 많이 찾으실 것 같아요. 이 공간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면 좋을까요.
독서를 이야기할 때 ‘일년에 12권 읽기’같은 걸 하기도 하잖아요. 그만큼 독서가 재미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거고요. (웃음) 여기선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즐기시길 바라요. 제가 독립 출판물을 처음 접했을 때도 일단 너무 재밌었거든요. 이런 세계도 있구나,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작업도 있구나. 그런 게 흥미로웠어요. 오천 원이면 이 정도 판형에 이 정도 장수는 나와야지, 같은 어떤 정량적인 평가보다는 그 내용 자체에 주목해 보시면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다양한 작업물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책을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