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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와인, 음식, 패션… 이곳에 오면 ‘오가닉’에 길을 잃는다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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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6. 13:40
성수동 창작 집단 TPZ의 4번째 복합 공간 ‘로스트 성수’
성수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적 흐름을 만들고 있는 팀포지티브제로(Team Positive Zero, 이하 TPZ)가 또 하나의 공간을 완성했다. 2017년 재즈 바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를 오픈한 뒤 4번째로 선보이는 공간이다. 이름은 로스트 성수Lost Seongsu. TPZ가 운영하는 ‘카페 포제’ 옆 건물에 자리한다. 숍들이 늘어선 골목 그 자체로 문화적 현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기 전 발 빠르게 선점한 결과다. TPZ는 최근 성수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창작 집단으로 손꼽힌다. F&B, 음악, 패션, 디자인 등 여러 분야의 플레이어들이 모인 팀인데, 이를 융합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룹명은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이들이 전개한 공간을 들여다보면 면면이 고개가 끄덕여질 테다. 성수동의 대표 재즈 바로 안착한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Positive Zero Lounge, 렁팡스 김태민 셰프와 함께하는 보이어Boyer, 그리고 다채로운 전시가 펼쳐지는 카페 포제Cafe Poze까지. 모두 공간을 매개로 라이프 스타일을 실험하는 콘텐츠들이다. 지난 8월 문을 연 로스트 성수는 이들이 TPZ를 가장 집약적으로 소개하고자 기획한 복합 공간이다. 편집숍, 레코드숍 및 레코드 바가 있는 1층과 내추럴 와인바가 있는 2층으로 구성된다. 공간의 전체적인 기획과 디자인, 브랜딩 및 콘텐츠 큐레이션은 모두 TPZ가 도맡았다. 낡고 오래된 외관과 구조를 멋스럽게 살려 마치 예전부터 이곳에 자리했던 것처럼 편안하게 안착했다. 공간 디자인에 가장 깊이 관여했던 윤지원 CD는 “로스트Lost라는 단어가 ‘길을 잃다, 사라지다’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폭넓은 경험을 하기를 바랐다”라고 말한다. 마치 쳇 베이커Chet Baker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Let’s Get Lost>처럼 말이다. 옛 공장을 개조하며 새로운 상업공간을 모색했던 시도들이 충분히 많았기에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하지만, TPZ의 명료한 콘텐츠와 취향을 바탕에 둔 느슨한 연대감에 사람들은 벌써부터 이곳으로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로스트 성수 1층. 입구를 지나면 편집숍과 레코드숍을 지나 레코드 바로 향하게 된다. 의도적으로 건물 측면에 출입문을 배치하여 공간의 변화를 순차적으로 경험하도록 했다. ⓒ TPZ
Interview with TPZ 김시온 대표 & 윤지원 CD 로스트 성수는 어떻게 기획한 공간인가? 음악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확장된 공간을 만들고자 시작했다. 레코드 바지만 레코드숍도 함께 운영한다. 바이닐이라는 매체가 촉각, 시각, 청각을 함께 자극하기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키워드도 함께 넣었다. 1층 입구를 지날 때 제일 먼저 마주하는 콘텐츠는 브랜드 파라코즘PRCSM이다. 음악이 중심인 F&B 공간에 왜 패션을 접목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는 큐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고 싶었다. 편집숍 공간은 앞으로도 유연하게 꾸려나갈 예정이다. 신진 디자이너의 전시장이 될 수도 있고, 각종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될 수도 있다.
TPZ는 특히 콘텐츠를 다각도로 편집하고 결합하는 창작 집단이다. 이곳에서는 어떠한 시너지가 생겼나? 이제는 ‘무엇을 먹는지’보다는 ‘어떻게 먹는지’가 중요한 시대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문화 예술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전달 방식이 재미있다면 높은 진입 장벽도 얼마든지 허물 수 있다. 이곳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소믈리에, 셰프, DJ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엄선한 패션, 내추럴 와인, 음식, 그리고 음악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어렵게 느끼지 않는다. ‘술집에서 바이닐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의외로 레코드숍도 반응이 좋다. 편집의 힘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분야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로스트 성수에서 큐레이션 한 음악과 와인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각각의 콘텐츠도 눈여겨 볼만 하지만, 무엇보다 두 분야를 일맥상통한 키워드로 제시한다는 점이 이곳의 매력이다. ‘내추럴 와인Natural Wine & 오가닉 그루브Organic Grooves’라는 콘셉트다. 내추럴 와인과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을 제공하는 만큼 음악도 전자 음에 기대지 않기를 바랐다. 최고의 페어링은 결국 음악이다. 로스트 성수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공간감. TPZ는 기존 건물의 독특한 구조를 살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도록 콘텐츠를 구성했다. 인테리어 설계는 조미연 디자이너가 담당했다. ⓒ TPZ
공간의 키컬러는 오렌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영감을 얻은 대칭 구조로 벽면을 장식했다. 천창에서 빛이 쏟아질 때 더욱 드라마틱한 색감을 이룬다. ⓒ TPZ
공간은 어떠한 콘셉트로 연출했나?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되 1층과 2층, 낮과 밤에 따라 서로 다른 공간감을 지니길 바랐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천장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다. 보는 위치와 각도, 그리고 빛에 따라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건물을 처음 봤을 때,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높낮이가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이를 염두에 두고 공간을 연출했다. 디테일한 시각 요소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착안했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에 의해 오렌지 컬러의 채도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변화한다. 앞으로 로스트 성수를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되 강요하지 않는 공간이고 싶다. 창작자가 어떠한 의도를 지녔든 작품은 수용자마다 달리 이해하고 해석한다고 하지 않나. 취향에도 옳고 그름이 없다. TPZ는 관심사를 확장하고 즐기는 방식에 대해 제시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억지스럽지 않게. 그래서 한편으로는 공간에 힘을 더 빼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모자란 부분은 시간이 지나며 저절로 채워질 것이다. 결국 인테리어의 완성은 사람이니까. 많은 이들이 이곳을 편안하게 즐겨 찾으며 차곡차곡 손때 묻은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2층 내추럴 와인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며 마주하는 레코드 바 풍경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폿으로 꼽힌다. ⓒ TPZ
글 | 디자인프레스 정인호 기자 (designpress2016@naver.com)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 로스트 성수 @lost_seong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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