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BDS, 분홍빛 점령에 맞서는 평화와 문화의 연대(7)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06/17
[특별기획] BDS, 분홍빛 점령에 맞서는 평화와 문화의 연대
팔레스타인연대문화보이콧네트워크(서울인권영화제X팔레스타인평화연대)
(7) 세계가 마주친 핑크워싱, 그리고 BDS
오늘은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를 통해서 핑크워싱과 BDS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금껏 각국의 BDS 운동가들은 ‘퀴어 해방’이라는 대의명분을 엉뚱한 ‘핑크색 세탁’에 쓰지 말 것을 촉구해왔다. 그 요지는 퀴어의 권리와 해방을 주창하는 일이 다른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일과 절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지개 깃발이 현란하게 나부끼는 바로 그 땅에 억울하게 피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무지개는 결국 낭자한 핏물에 대한 ‘가림막’이 될 수밖에 없다. 2019년에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와 텔 아비브 프라이드의 사례를 보도록 하자.
먼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소개하자면, 1956년 1회부터 유구한 전통을 가진 이 대회는 유럽 각국의 대표 뮤지션이 출전해 대결을 펼치는 행사로, 억 단위의 시청자 수를 자랑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바(ABBA)는 1974년, 셀린 디온은 1988년 이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바 있다. 그런데 원래도 출연진의 ‘다양성’으로 유명했던 이 경연대회에서 2014년 오스트리아의 트랜스젠더 가수 콘치타 부르트스가 우승함으로써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한층 더 “성소수자 친화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콘치타 부르트스는 “차별 없는 미래가 올 것을 믿고, 저의 우승은 관용과 존경심을 가진 사람들의 우승입니다.”라고 이야기하여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 후 2015년 오스트리아 개최 대회에서는 성소수자를 위한 특별 신호등을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만들어왔다.
그러한 무지갯빛 기류 속에서, 2018년 대회에서 이스라엘 출신 우승자가 나타났다. 참가곡 “Toy”로 우승을 거머쥔 네타 바르질라이는 단숨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2019년 대회 개최국가가 되었다. 매해 개최국은 전년도 우승자의 출신국가이기 때문이다. 5월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달, 그리고 6월은 프라이드의 달, 이렇게 이스라엘은 완벽히 스스로를 “성소수자 천국”으로 포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바르질라이를 “이스라엘 최고의 외교관(ambassador)”로 일컬었고, 축하 공연을 개최했다. 끔찍한 것은 바로 그 날에도 이스라엘 군대가 무장하지 않은 팔레스타인인 62명을 살상했다는 점이다.
각국의 BDS 운동가들은 뮤지션들에게 2019년 텔 아비브에서 열릴 대회를 보이콧해달라고 요청했다. 영국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와 영화 감독 마이크 리를 비롯한 50여 명의 예술가가 “양심적인 예술가에게 유로비전 참가는 석연치 않은 영예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돈나도 BDS 운동가들로부터 보이콧 요청을 받았지만 결국 마돈나는 결승전 무대에서 공연했다. 마돈나도 나름대로 고심했는지 ‘돌발 이벤트’를 만들었고, 이는 큰 논란을 촉발했다. 무대에서 마돈나의 두 댄서는 각각 이스라엘기와 팔레스타인기를 그려넣은 옷을 입었는데, 그에 대해 마돈나는 “적대를 표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조화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축제를 (자기들에게 불리한 의미에서의) ‘정치의 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이스라엘에 당연히 도발적인 일일 수밖에 없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 BDS 운동가들에게 역시 심히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BDS 운동가들이 원했던 것은 이미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계적인 균형을 잡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의 편을 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행사를 보이콧하는 대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자간의 조화’를 요청하는 것은 힘의 논리를 망각한 ‘나이브한 퍼포먼스’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예루살렘국제도서전에서 ‘예루살렘 상’을 받았는데, 역시 행사를 보이콧할 것을 요청받았다. BDS 운동가들은 ‘예루살렘 상’의 목적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기여’를 높이 평가하기 위한 것임을 지적했다. 하루키가 ‘예루살렘 상’을 받게 되면, 그것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스라엘이 자유를 숭상한다는 거짓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시상식에 참석하여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 부서지는 달걀이 있을 때, 나는 항상 달걀의 편에 서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루키는 말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그 달걀을 ‘팔레스타인인’으로 치환해 읽기 쉬울 것이나, 하루키는 문제가 간단치는 않다면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각자 하나의 달걀이며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괜한 혼동을 일으켰고, 일부 이스라엘 언론은 수상소감에 대한 찬사까지 바쳤다. 그러나 이후 일본으로 돌아온 하루키는 자신의 입장을 좀더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이 처한 비극적 현실에 관해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정책을 비판했다.
[그림1. 켄 로치 감독의 2017년 7월 11월 트위터 캡쳐. ‘라디오헤드는 억압받는 자 편에 설지, 억압하는 자의 편에 서 있을지 결정해야 한다. 선택은 간단하다.’라는 말을 하며 라디오헤드 보컬 ‘톰 요크’를 태그걸었다. 이와 함께 ‘라디오헤드는 이스라엘을 향한 BDS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영국 기사가 링크 되어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부터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까지 다양한 ‘정치 영화’로 유명한 켄 로치는 BDS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유명 인사 중 하나다. 켄 로치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스라엘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팔렸으나, 켄 로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을 배급함으로써 발생하는 수익 전체를 BDS 운동에 기부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연대의 의사를 확고히 했다.
[그림2. 2017년 7월 12일 켄 로치 감독의 트윗에 대한 톰 요크의 답장 화면 캡쳐. ‘국가에서 공연하는 것과 그 국가의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여러 정부의 변화 속에서도 지난 20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활동해습니다. 어떤 정부는 더 자유주의적(liberal)이었고 어떤 정부는 덜했죠. 미국에서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트럼프를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보다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공연합니다. 음악, 예술 및 학계는 국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넘나드는 것이며, 상대에 대한 열린 마음과 인간성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대화와 자유에 대한 표현입니다. 나는 켄이 이것들을 분명히 하기를 바랍니다.’]
BDS 운동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비친 예술가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는 켄 로치 등 BDS 지지자들의 공연 취소 요청 서한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내비치면서,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만큼 모자란(retarded)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누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겠다고 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정말 그랬다면 문화 보이콧은 한층 쉬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톰 요크는 BDS 운동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흑백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라면서, 세상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 역시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 보이콧이 분열적이고, 차별적이며, 평화를 촉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서한에 서명한 바 있다. ‘세상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건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압적인 행태를 두 주체간의 ‘분쟁’으로 판단하여 ‘팔짱 끼고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사태에 대한 납작하고 단순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이 행하는 폭력에 비하면 그들의 화려한 색깔을 벗겨내려는 시도들은 얼마나 ‘평화적’인가? 예술가들이 정말로 ‘예술’의 힘을 믿는다면, 적어도 그 힘을 약자를 두들겨 패고 있는 폭군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