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BDS, 분홍빛 점령에 맞서는 평화와 문화의 연대 (6)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06/05
[특별기획] BDS, 분홍빛 점령에 맞서는 평화와 문화의 연대
(6) BDS란?: 문화보이콧운동을 중심으로
팔레스타인연대문화보이콧네트워크(서울인권영화제X팔레스타인평화연대)
- 들어가는 말 고운
- 핑크워싱이란?
- 서울인권영화제와 핑크워싱(1): 핑크 세탁기를 마주치다!
- 서울인권영화제와 핑크워싱(2): 핑크 세탁기를 부수다!
- 서울인권영화제와 핑크워싱(3): 핑크 세탁기를 부수다! 2
- BDS란?: 문화보이콧운동을 중심으로
- 세계가 마주친 핑크워싱, 그리고 BDS
- 우리도 마주친 핑크워싱, 그리고 BDS
- BDS, 나두 할 수 있어!
‘보이콧 운동’ 즉, 불매운동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특정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뿐만 아니라, 한 국가에 대한 불매운동까지도 말이다. 이때 사람들이 느꼈던 것은, 불매운동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불의에 대한 응징, 분노로 인한 보복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있어서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더불어 무기나 점령을 통한 생산물이 아닌 문화 또는 학술 보이콧은 왜 해야 하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BDS운동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BDS는 ‘보이콧(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의 약자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및 인종차별을 끝내기 위해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에서 2005년부터 이어진 비폭력 저항 운동이다. 이러한 방식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서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키는 데에 큰 이바지를 했던 운동이 바로 BDS운동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끔찍한 인종차별정책을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멈추게 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BDS운동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고립시킴으로써 팔레스타인 군사점령을 끝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팔레스타인은 반 세기가 훌쩍 넘도록 대화로, 시위로, 무력투쟁으로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에 호소해왔으나 점령정책은 더욱 극심해져 왔다.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포기와 순응을 택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고립시켜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방법으로 싸움을 이어 나가기로 힘을 모았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점령정책과 연결되어 이득을 보는 기업에도 마찬가지로 책임을 묻고 연결고리를 끊도록 하는 것이 BDS운동의 전략이다. 이는 남아공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국제연대가 그 어느때보다도 필수적인 운동이 BDS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팔레스타인 BDS운동은 2004년 학술ㆍ문화보이콧운동(PACBI, Palestinian Campaign for the Academic and Cultural Boycott of Israel)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문화를 하스바라(이스라엘의 대중선전행위)에 아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문화라는 소프트 파워를 이용해 점령을 지우는 행위, 나아가 점령을 정당화하는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연구와 기술 진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학술교류들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 또는 외면한 채 너무도 당당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행위들에 주목하고 이를 저지하는 것, 하여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의 민낯을 모두에게 드러내는 것이 BDS운동 중에서도 학술ㆍ문화보이콧운동의 역할이다.
‘브랜드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이 정부가 자행하는 문화 및 학술연구 교류를 통한 자국 이미지 쇄신이 비단 이스라엘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문화나 학술 교류는 정치적인 것과 별개로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하며 오히려 이스라엘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이야기, 그러니까 ‘반유대주의’라는 반발이 언제나 강력하게 대두된다.
그러나 BDS 운동은 이스라엘인, 혹은 유대인을 ‘악마화’ 하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BDS 운동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차별하고, 착취하고, 군사점령 하는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이에 동참하고 이득을 얻는 이들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한 것이다. 학술ㆍ문화보이콧운동의 기본 가이드라인에도 어떤 정체성이나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로 개인을 보이콧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간혹 팔레스타인에 관련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홀로코스트를 옹호하는 아주 끔찍한 발언들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낀다. 우리가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하면서 너무나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팔레스타인의 참담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다시 새겨야 할 것은 BDS 운동은 이스라엘인 개개인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모든 유대인을 시오니스트로 여겨 반유대주의의 함정에 빠져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의 사람들은 ‘균형 잡기’라는 명목, 즉 양측의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는 이야기나,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라는 이야기들을 한다. 이스라엘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고 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고 효과적인지는 그간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지난 15년간 BDS 운동이 이끌어 낸 크고 작은 승리들, 또 그에 대한 이스라엘 내부와 전 세계의 시오니스트들의 극심한 대응을 보면 이 운동이 실제로 얼마나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BDS 운동은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우리가 그 땅에 서지 않고서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비폭력 대응이다. 가장 악랄한 방법부터 가장 우아한 방식까지 아우르며 팔레스타인을 옥죄고 있는 손을 감추고 정당화하기까지 하는 이스라엘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하여 그것을 드러내고, 점령에 연결된 손들을 끊어내는 것이다. 남은 연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이스라엘이 문화와 학술 교류를 이용하는지와 BDS 운동을 통해 이루어낸 크고 작은 승리들을 나눌 예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도, 특히나 이스라엘과 FTA가 체결된 지금 더 적극적으로 이스라엘과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고민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한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