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편지) 영원히 행복했으면 해요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09/09
여러분은 2014년에 연락하던 사람들과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시나요? 며칠 전 동거인에게 이 질문을 받고 나서부터 자주 상념에 젖어요. 사실 왜 2014년일까, 엄청난 의미가 있는것은 아닌것 같아 구태여 묻지 않았지만, 2014년은 제게 사람보다는 세월호 사건으로 더 각인이 박혀있던 해였어요. 그럼에도 이 질문을 계기로 2014년에 맺었던 여러 관계를 생각하다가,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절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A와 나누었던 시간을 나누고 싶어요.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 할까. 우리는 거의 매일 통화했는데 서로 목이 아파서 시간을 확인해보면 새벽 세시, 네시인걸 확인하고 깔깔 웃어댔었어요. 그렇게 지새운 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요. 작고 귀엽다고 여겨지는 외모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A를 굉장히 약하게 보거나 만만하게 대하곤 했는데, 제겐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었어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맺고 끊음이 확실했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다른 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는지 되짚어보고, 발언권이 적은 사람을 신경 쓰던 A.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가까워지던 우리는 2015년, 페미니즘을 알고 난 후, 우리가 쌓아오던 세계가 확장되었음을 느꼈고, 이전보다 더 깊고 넓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그렇게 보내온 시간들은 켜켜히 쌓여 한데 뭉쳐있었죠.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면 이해관계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저는 그러질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비슷한게 많다는 이유로, 많은것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같을거란 동일시가 눈을 가로막고 있던것 같아요. 우리에게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때, 어찌 할 줄을 몰랐어요. 당황스러움은 좌절로, 좌절은 분노로, 분노는 슬픔으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홀로 삭히고 나서도 A를 몇 번 만났었어요.
A를 마지막으로 만났던건 작년 봄이에요.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니까 어서 집에 가고싶더라고요. 대화가 다 끝났을 땐, 고심해서 골랐던 예쁜 디저트가 이곳저곳 잘려진 채 형태를 알 수 없는 꼴만 갖추고 있었는데 그걸 한참 쳐다봤던거 같아요. 이만 가자며 나갈 채비를 하면서 관계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상실이란게 이런 것이구나, 온 몸으로 느꼈어요. 마지막 만남 이후로 속상함이 1년넘게 지속 된 걸 보면서, 애써 떠올리려고,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지 슬픔은 잔존해 있었다는걸 이번에 알게됐네요. 참 서글프면서도 한편으론 감각이라는건 무뎌지기 마련이고, 특히 인간관계에서 주고받았던 무수한 것들은 다른 것들로 뒤덮혀 왔다는 것을 떠올리면 일렁이는 마음이 조금은 잦아들어요. 참 허무한 말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나누었던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우리라는 행성은 서로의 궤도를 돌다 단지 몇년 비슷한 주기에 들었을 뿐. 그 주기가 끝나면 영영 멀어진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걸 느꼈다. 그때의 우리가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사람 영원히 내 인생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어지지 않음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 김사월ㅣ<사랑하는 미움들> 중 -
우연인지, 우연을 가장한 것인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최근에 A의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이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A는 여전히 단단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어요. 몸은 매일매일 마모되고, 때때론 희망을 찾기 어려워 낙담하기 쉬운 세상에서 자기를 너무 잃지 않길 바라며, A가 언제나 안온했으면 좋겠어요. 불가능한 말인걸 알지만, 영원히 행복했으면 해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