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는 2020년 시작과 함께 갑작스레 찾아와 세계를 휩쓸고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사회는 정부와 시민, 기업의 적극적인 대처와 협조를 통해 대규모 확산을 통제해 4월 말~5월 초 이후 신규 확진자 수가 크게 감소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확진자 감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선언하는 것은 어려우며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발표를 내놓은 바 있다. 우리가 ‘포스트 코로나’라 부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으며, 사회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고 새로운 일상을 영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를 감안하여 개별적인 계약서 작성 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책임분배를 규정할 수는 없는지, 그 고민의 결과를 정리해 보았다.

코로나19 등 사회상황과 계약책임

‘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이 라틴어 법격언과 같이, 계약은 계약의 내용대로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민사법의 기본 정신이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이 거대한 사회상황의 변화가 발생하면, 계약의 이행이 불가능해지거나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오히려 손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당사자는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해 손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개최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공연기획사는 미리 섭외한 아티스트와 계약을 해제해야 할 필요가 발생한다. 

또한,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해진 계약사항을 이행하지 못하는 채무불이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업장 내 확진자 발생에 따른 강제 휴업이나, 각국 정부의 수출금지 조치나 물류 중단으로 인한 해외 원자재 수급 불가 등의 사정으로 인하여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계약의 해제·해지와 더불어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계약당사자는 ①코로나19가 계약의 해제·해지 사유가 될 수 있는지, ②코로나19를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해지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약서에서 구체적인 해제·해지 사유를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다면 코로나19 상황 자체만을 근거로 계약을 해제·해지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법원은 단순한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에 대하여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3다26746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계약서에는 ‘기타 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발생’하면 서면통지로 해제·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도 계약의 목적과 성격에 따라 개별적으로 다양한 해제·해지의 사유를 정하고 있다면, 계약서 내용의 해석과 포섭에 의하여 해결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공연기획업, 중개업 등 체결된 계약의 해제·해지 가능 여부에 의하여 금전적·법률적 부담이 크게 좌우되는 상황이라면 보다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사유를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래 체결하는 계약서의 해제·해지 사유에 ‘당사자 귀책과 무관하게 불가항력 및 재난상황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계약의 이행이 불가능함이 확정된 경우’를 포함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비해 손해배상책임과 관련해서는, 각 당사자의 귀책사유 있는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광범위하게 규정한 뒤 ‘전쟁, 지진, 홍수 기타 불가항력으로 인해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에 대한 면책을 규정하는 정도로 간략하게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는 아예 그 정도의 불가항력 규정마저도 결여한 경우가 상당수다(개별 계약서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이를 명시적으로 배제하지 않는 한, 불가항력 사유로 인정되면 민법 제390조의 해석에 의해 책임을 면책받을 수는 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지난 1/4분기 동안 법률 분야에서 채무불이행 책임과 함께 가장 ‘핫(?)’하게 다루어진 주제는 불가항력의 해석과 적용을 통한 면책가능성이었다.

기존의 법원의 태도를 보면 개별 사안에서 불가항력 사유 인정 여부에 있어 상당히 엄격한 판단기준을 적용하여왔다. 법원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및 그로 인한 자재 수급의 차질이 불가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메르스 여파로 관광객이 급감한 사정을 불가항력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전세계를 휩쓴 판데믹으로서 각국 정부가 직접 개입해 각종 행정 상의 조치를 취한 사례가 많아 기존의 IMF나 메르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가항력 사유로 인정되거나, 불가항력 사유로 인정되지는 않더라도 책임범위 판단 시 책임 감경요소로 반영될 소지가 크다. 또한 개별 사건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불가항력 사유 인정 여부가 달라질 것이므로, 코로나19 상황에서 발생한 채무불이행이 ①채무자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했으며 ②통상적으로 예견·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음을 최대한 주장·입증하여 손해배상책임의 면제 또는 감경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재난안전법」 상 기준을 활용한 책임감면 사유의 세분화(細分化)

새로이 계약을 체결하는 상황이라면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 적용될 책임분배의 방식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코로나19와 유사하게 ‘불가항력 사유가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채무불이행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사유’를 포괄적으로 지칭할 수 있다면 더욱 편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에서 규정하는 ‘재난’의 정의를 활용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코로나19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감염병이고, 이에 따른 피해는 재난안전법에 따른 ‘사회재난’에 속한다. 

위와 같은 재난안전법의 ‘재난’에 대한 규정은 계약서 작성 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개별 계약서에서 기존과 같은 불가항력 사유에 의한 면책조항을 마련하여 두되, 그에 더하여 ‘재난안전법에서 정하는 재난으로 인하여 본 계약을 위반하는 경우’를 추가적으로 책임감면의 사유로 정한다면 보다 다양한 사유를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은 2020. 3. 31. 시행령을 개정하여 행정재산의 사용ㆍ수익허가를 받은 자가 재난안전법에서 정하는 재난에 따른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일정한 절차를 밟아 한시적으로 사용료를 인하할 수 있도록 시행 중이기도 하다.

또한 해외에 공장을 두고 있는 등 외국 사정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경우 해외재난(대한민국의 영역 밖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재난으로서 정부차원에서 대처할 필요가 있는 재난)에 관한 내용을 추가할 수 있다. 반대로 재난상황 가운데 책임감면의 사유로 인정되는 범위를 축소하고자 한다면 계약서에 그와 같은 내용을 반영하여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손해배상책임 감면 범위 및 방식의 다양화(多樣化)

손해배상책임 감면의 범위 역시 기존의 불가항력 조항들처럼 일률적으로 전부 면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정할 수 있다. 간단한 예시로 ①일체의 손해배상책임을 면책하거나 ②손해배상책임을 일정 비율로 감면하거나 ③일정한 기간(재난 상황의 해소 시점까지 등)에 대하여는 손해산정 시 반영하지 않는 방식 등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호적인 관계에서 체결하는 계약이라면 재난 발생 시 상호 협의 하에 계약조건을 조정·수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조항으로 넣어두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의무조항이 아니라 하더라도 재난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대화를 제안할 수 있는 근거가 계약서에 있는 것만으로도 상호 협력의 물꼬를 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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