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양영자·김미아 모녀전 <정원에서>

엄마·딸 함께하는 올해로 14번째 전시
50세에 창작 시작한 79세 엄마 작가
도시경관과 반려식물 즐겨 그리는 딸 
~4월 2일까지, 이랜드갤러리헤이리

14번째 함께 전시를 열고 있는 엄마 양영자 화백과 딸 김미아 화가.
14번째 함께 전시를 열고 있는 엄마 양영자 화백과 딸 김미아 화가.

[고양신문] 나무에는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고, 들판에는 연두색 새싹들이 요동치고 있다. 이 봄날에 어울리는 전시가 9일부터 ‘이랜드갤러리 헤이리(대표 장영학)’에서 열리고 있다. 엄마 양영자 작가와 딸 김미아 작가가 함께 마련한 전시 <정원에서(In the garden)>는 봄내음을 물씬 풍기는 작품 40여 점을 보여준다. 2009년부터 해마다 진행된 모녀전은 이번이 14번째로, 서로에게 전하는 사랑의 고백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양영자 화백의 ‘봄의 왈츠’라는 작품이 걸려있다. 노란색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녹색 잔디 위에서는 오리들이 노닐고 있다. 전시 제목처럼 작은 꽃밭이 있는 전시장에는 화사한 봄 향기가 넘실대고 있다.  

양영자 작가의 작품들.
양영자 작가의 작품들.

김미아 작가는 모녀전을 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엄마라는 말이 저한테는 무척 애틋해요. 엄마가 미술 수업을 한 덕분에 5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엄마 그림 중에 겨울 배를 그린 ‘강변서정’이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나이가 들면서 상실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자신이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하셨나 봐요. 그래서 저는 전시를 통해 어머니께 할 일을 자꾸 만들어 드리고 있어요.” 

올해 79세인 양 작가는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남매를 키우고 50세에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교사직을 이어가면서 교회와 문화센터에서 재능기부 활동을 했다. 양 작가는 “이번 전시에는 신작을 세 점만 출품했지만, 재작년에 암 수술을 받은 후 링거를 맞으며 그린 작품들”이라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마음에 더 와닿는다. 딸에게 말은 안 했지만, 이번이 마지막 전시일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작업을 했다”고 덧붙였다. 

양영자 작 '샬롬'
양영자 작 '샬롬'

양 작가의 유화에서는 깊은 멋과 삶의 연륜이 묻어난다. 붓보다는 나이프로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그의 터치는 강렬하고 과감하다. 캔버스 위에 밑그림 흔적도 그대로 남겨둬서 자연스럽다. 그와 달리, 딸의 작품은 화려하고 재기발랄하다. 섬세한 완벽주의자여서 점 하나만 보여도 깔끔하게 지워 버린다. 그는 도시 경관을 화려한 원색으로 표현한다. 이런 차이가 관람객들이 모녀전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통점은 둘 다 식물과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양 작가의 초기 작품이 사실화가 주를 이루었다면, 지금은 반추상 작품이 대부분이다.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이라는 작품에는 파란색을 주로 사용해 안정된 마음을 표현했다. ‘동행’에 등장하는 오리 네 마리는 가족을 상징한다. 맨 앞에 있는 대장 오리는 작가 자신이고, 남편과 아들, 딸이 뒤따라 오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저는 풍랑을 많이 만났어요. 남편 사업이 부도나서 물질적인 고난도 겪었고요. 그때마다 솔로몬처럼 지혜롭게 헤쳐나가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삶의 우여곡절이 제 그림 안에 담겨 있답니다.”   

양 작가에게 딸은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제 분신 같은 존재예요. 친구이자 동료, 멘토이고요. 미술적인 재능은 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표현은 전혀 달라요. 딸은 큰 고난을 겪지 않았고, 사랑만 받고 자랐어요. 그래서 그림이 깔끔하죠.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거지요.” 

김미아 작가의 작품들.
김미아 작가의 작품들.

김 작가는 국내 대학에서 원예학을, 일본에서 시각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홍대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에서 디자인을 공부했기 때문에, 일본 색깔도 약간 묻어나고요. 오리엔탈 팝 아트를 지향하고 있어서인지 어떤 작품은 민화 같다는 말도 들어요.” 

사람들은 코로나로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반려식물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김 작가의 작품에도 그런 취향이 반영됐다. 도심의 실내공간 속에 놓여있는 식물들을 시리즈로 부각시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했다.
“작업실 안에서 새벽까지 일하다 보니, 식물이 많은 밀림 속으로 탈출하고 싶었어요. ‘어서 오세요, 이상한 나라 미아의 실내정원으로’라는 작품은 어린시절 할머니 댁에 있던 다락방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예요. 낮 풍경, 밤 풍경, 바깥 풍경을 각각 세 면으로 구성했는데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각각의 장소로 이동하지요. 이 공간들이 저한테는 사색의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이고 놀이의 공간이에요.” 

김미아 작 '플랜트 스쿨 버스'
김미아 작 '플랜트 스쿨 버스'

‘플랜트 스쿨 버스’는 반려견 유치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바쁜 현대인들이 식물들에게 사랑을 나눠줄 시간이 부족해, 식물들을 빨간 스쿨버스에 태워 유치원에 보낸다는 상상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이 식물을 가까이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식물 자동판매기’ ‘열대 정원’ 등의 작품이 있다. 

현재 김 작가는 성남문화재단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입주해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활동하고 있다. “일상과 그림이 하나인 삶, 그게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생각해요. 딸을 한 송이 꽃처럼 곱게 키운 엄마의 사랑, 이제는 엄마 여생의 든든한 지킴이가 된 딸, 그 둘이서 정원에서 만나 하나가 됐답니다.” 

이랜드갤러리 헤이리
이랜드갤러리 헤이리

이랜드갤러리의 장영학 대표는 “이랜드는 1996년 중국에 진출한 후 중국 5대 미술대학에서 장학 사업을 했고, 2009년부터 국내에서 청년작가 공모전을 열어 창작지원금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지속해 온 신진작가 지원 사업의 연장이자, 예술과 대중의 접점을 확장하려는 비전으로 이곳을 열었다. 전시 외에도 국제음악제와 영화, 드라마 촬영 등 헤이리예술마을과 장기적으로 협력해 국제적인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작가도 이랜드 문화재단의 공모에 선정된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 성남문화재단 등 여러 곳에서 소장 중이고, 프랑스, 영국, 일본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전시와 수상 경력이 있다. 25일에는 김 작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참가문의는 031-945-7773으로 하면 된다. 전시는 4월 2일까지 계속된다.

❚이랜드갤러리 헤이리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55-50(월·화 휴관)

김미아 작 '도시어부'
김미아 작 '도시어부'
양영자 작 '봄의 왈츠'
양영자 작 '봄의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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