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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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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한국이 기후악당이라 불리는 이유

2009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 목표치 한 번도 지키지 못해…
70개국 ‘넷제로’ 달성 선언하지만 한국은 40% 감축안에도 “과도하다” 반응
등록 2020-08-31 07:10 수정 2020-09-05 01:04
2019년 9월21일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서 열린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기후위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9년 9월21일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서 열린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기후위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0년 61개국 중 58위’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1위’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하위 2위, 석탄발전 비중 상위 4위’

최근 몇 년 사이 국제기구·연구기관·비정부기구(NGO) 등이 발표한 기후위기 관련 지표에서 드러난 한국의 위상이다. 심지어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함께 ‘기후악당’(2016년 4월 영국의 기후변화 전문 미디어 ‘클라이밋 홈 뉴스’가 국제환경단체 기후행동추적(CAT)의 분석을 인용)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이 매번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공언했음에도 한국은 왜 이러한 오명을 벗지 못하는 것일까.

신재생에너지 비율 6.5%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추세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현주소가 또렷해진다. 2009년 처음 온실가스 배출 목표치를 설정한 이래 한국은 한 번도 이를 지키지 못했다. ‘2019년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900만t·CO₂eq(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2017년 기준)이다. 2014년에 수립한 목표치의 15.4%를 초과했다. 1990년 이후 연평균 3.3%씩 증가한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한국전력통계’를 보면 2019년 전체 발전량에서 신재생에너지는 6.5%에 그친다. 온실가스 배출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소도 여전히 40.4%로 ‘제1에너지원’이다.

이는 2015년 전세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을 거스르는 일이다. 파리협정은 2100년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2도를 넘지 않아야 하고 최대한 1.5도 밑이 되도록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했다. 산업화 이후 현재까지 지구 온도가 0.87도 오르면서 해수면 상승, 폭염 등 기상이변이 생기자 미래의 재앙을 막아낼 길을 찾은 것이다. 2018년 10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이르면 2030년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PCC는 2030년까지 전세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적어도 45% 줄이고, 2050년까지 넷제로(net-zero·온실가스 배출량을 과학기술, 산림 조성 등으로 흡수해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를 달성해야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밝힌다.


여전히 전통적 성장 논리에 매달려

70여 국가가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머뭇거린다. 파리협정에 따라 2020년 11월 각 나라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도 2019년 3월부터 각계 전문가 69명이 참여한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저탄소 포럼)을 운영하고, 초안 성격인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검토안’(2050검토안)이 지난 2월 환경부에 제출됐다. 2050검토안에는 넷제로 대신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2050년까지 75%, 69%, 61%, 50%, 40%를 감축하는 5가지 시나리오가 담겼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10~11월 정부안을 확정하고 올해 말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넷제로는 우리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따라야 가능한 일이라서 현실화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토안 작성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재편과 규제 강화’ 대 ‘산업계 피해’라는 대립 구도에서 한 발짝도 못 내딛는 모습이 드러난다. 2019년 4월부터 12월까지 저탄소 포럼 청년분과장으로 참여했던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2050년에 살아 있을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추천받아 들어갔다. 하지만 넷제로 이야기를 하면 산업계 쪽에서 ‘현실성이 없다’ ‘국민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안 된다’는 이야기만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동안 온실가스 감축 등 국가 기후위기 정책 수립 과정에서 산업계는 철강·시멘트 등 전력을 많이 쓰는 산업과 정유·석유화학 등 화석연료 산업에 피해가 간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해왔다. 2050검토안 수립 과정에서 산업계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이 가장 적은 40% 안을 두고도 “과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19년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평가에 참여했던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정부가 의지가 없다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그 문제만이 아니다. 화석연료로 지탱해온 경제구조와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에 대해 도전해야 하는데 정부 역시 전통적인 경제성장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해외에서 기후악당이라고 비판받으니까 대응하겠다고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크게 느낀다”고 덧붙였다.

2050검토안 작성 과정을 지켜본 한 정부 관계자도 정부가 ‘산업계 피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산업계 반대가 심하니까 ‘불필요하게 갈등을 유발하면서 이렇게 해야 하냐’는 의견이 포럼과 정부 부처 내부에서 많았다. (온실가스 감축이) 된다는 사람보다 안 된다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인데 그 벽을 넘기 힘들다.”

그런데 기후위기 대응과 최근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저탄소 경제구조 전환) 계획은 전문가·산업계 범위 안에서만 논쟁을 벌이기엔 우리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온실가스 감축은 산업재편에 따른 일자리 변화, 내연기관 차량의 점진적 퇴출, 에너지 소비 형태, 전기요금 체계 변화 등 사회구성원의 삶을 좌우한다. 더 확장된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다.

“몇 개 부처 아닌 전 부처의 문제”

코로나19 사태로 공론장에서 좀처럼 뜨거워지지 못하지만 이번 여름 폭우와 장기간의 장마로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관심이 높아졌다. 공론화는 결국 정부와 정치의 몫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그린뉴딜·기후위기 관련 각종 토론회와 세미나에 참여해 수시로 ‘판을 크게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도 그린딜(유럽연합이 2019년 12월 발표한 기후위기 대응책)을 완성하는 데 2년 걸렸다. 영역별로 사회구성원의 논의를 모으는 기획과 일정표가 있었다. 정부와 국회가 의견을 받고 피드백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공간을 열어야 한다. 기후위기 문제는 정부 몇 개 부처가 아닌 전 부처가 달라붙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이 있으니 ‘광화문 1번가’ 같은 온라인 국민참여 플랫폼을 열어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표지이야기_2020 청소년 기후위기 리포트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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