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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 투톱 삼성전자 vs TSMC 맞대결···최후의 승자는?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21.02.03 14:06:57
요즘 재계나 IT 업계는 물론 주식 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단어는 파운드리가 아닐까 싶다.

파운드리란 ‘반도체 위탁생산’을 뜻하는 용어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만 담당하는 팹리스,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 설계와 생산 모두 함께하는 IDM(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나뉜다. 반도체 시장에서 설계와 생산을 분리하는 것은 그만큼 생산 공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에서 파운드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삼성전자 영향이 크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하면서 파운드리 산업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삼성전자 주가 역시 파운드리 육성 전략이나 수주 현황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투자 확대를 검토 중이다. 사진은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공장.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투자 확대를 검토 중이다. 사진은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공장.



▶파운드리 산업이 뜨는 이유

▷자동차·4차 산업혁명·언택트

약 100조원.

올해 파운드리 시장 규모(예상)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규모가 지난해 대비 6% 성장한 896억달러(약 97조600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23.7% 증가하는 등 매년 급성장 중이다. 파운드리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자동차가 전장화되면서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팹리스 기업이 많이 생겨났다. 파운드리와 팹리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팹리스 기업 숫자가 증가하면 파운드리 시장이 커진다.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팹리스 시장은 1300억달러(약 142조2000억원)에 달했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2.9%에 이른다. 10년 전인 2010년, 팹리스 매출은 635억달러,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3000억달러)에서 팹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1.2%였다.

많은 기업은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IT 업계에서는 애플이 대표적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도 자체적인 반도체 설계를 꿈꾼다. 자동차 업체도 마찬가지다. 미국 IT 공룡 기업이 직접 ‘맞춤형 칩’을 설계하기 시작하면서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신규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는 점 역시 파운드리 시장이 확대되는 요인이다. TSMC나 삼성전자와 같은 파운드리 기업은 현재 공정 시설을 갖추는 데 수십조원을 투자했다. 이미 기술과 자본 측면에서 높은 진입장벽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에는 리스크가 크고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제한적이니 당연히 가격이 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 SMIC가 미국 제재를 받는 등 전반적인 파운드리 공급량이 부족해졌다.

파운드리 업체 대부분 호황이지만 역설적으로 상위 업체와 하위 업체 간 기술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10나노 이하 공정 기술을 갖춘 파운드리 기업은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두 곳뿐이다.

최근 많은 커뮤니티에서는 ‘삼성전자 vs TSMC’를 비교하는 글이 자주 올라오고는 한다. 양사 경쟁력을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해본 배경이다.

▶비교1. 공정 기술 측면

▷2016년부터 앞서 나간 TSMC

1나노미터. 10억분의 1m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나노’ 앞에 나오는 숫자 즉, 10나노의 10은 곧 경쟁력을 나타낸다. 숫자가 낮을수록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칩 성능이 좋아지고 전력 소모가 줄어든다.

최근 TSMC와 삼성전자는 10나노를 넘어 7나노 공정으로 전환하고 있다. 10나노는 머리카락 두께 5000분의 1에 불과할 만큼 얇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파운드리 기업 간 기술력 차이는 지금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20나노대 공정에서 대만 UMC, 미국 글로벌파운드리 등 2~3위권 기업과 선두 업체 간 격차는 미세했다. 10나노 이하 공정으로 접어들면서 상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TSMC의 기술력을 하위 업체가 따라잡기 무척 어려워졌다.

그럼 현시점에서 TSMC와 삼성전자 중 공정 기술은 누가 앞설까.

올해 초 한 콘퍼런스에서 반도체 컨설팅 업체 ‘IC Knowledge’는 흥미로운 자료를 공개했다. TSMC와 삼성전자, 인텔의 공정 기술을 비교하는 자료였다. 이 자료에는 2011년부터 2022년까지 3사 기술력이 소개돼 있다.

2014년만 해도 3사는 모두 14나노 공정을 도입하며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반도체 칩의 직접적인 성능과 연관 있는 트랜지스터 밀도(Density)는 인텔(4551만MTx)이 삼성전자(3468만)나 TSMC(3606만)보다 나았다.

삼성전자와 TSMC가 앞서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다. 2014년부터 인텔은 몇 년 동안 14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다. 더 이상 발전이 없다. 반면 2016년 삼성전자와 TSMC는 10나노 공정에 진입했다. 밀도 역시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인텔 칩의 밀도는 4551만으로 그대로인 반면 삼성전자(5455만)와 TSMC(5510만)는 인텔 기술을 넘어섰다.

10나노 이하 공정에서는 더욱 극명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TSMC는 2017년 7나노 공정에 진입했다. 삼성전자 역시 2018년 7나노 공정에 들어갔지만 인텔은 2019년에도 여전히 10나노 공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9년 삼성전자와 TSMC는 5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다만 양사 칩의 밀도는 확연히 다르다. TSMC 칩의 밀도는 1억8546만을 기록한 반면 삼성전자는 1억3356만으로 약 40% 차이가 났다.

IC Knowledge는 올해 삼성전자와 TSMC가 3나노 공정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본다. 칩 밀도는 TSMC(3억1665만)가 삼성전자(1억8031만) 대비 월등히 뛰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은 내년 혹은 내후년은 돼야 7나노 공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와 TSMC는 ‘나노’로 표현되는 전반적인 기술 수준은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 다만 트랜지스터 밀도는 TSMC가 삼성전자보다 훨씬 낫다. 장비 최적화나 수율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0나노 이하 미세 공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EUV(Extreme Ultra Violet·극자외선 노광장비)가 필수다. 1대에 무려 1500억~2000억원에 달하는 고가 장비다. 지난해 말 기준 TSMC는 EUV를 약 60대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삼성전자는 약 10대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UV 장비 숫자는 전반적인 공정 기술과 직결된다. 여러 요소로 인해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TSMC 공정 기술이 삼성전자보다 ‘약 1년’ 앞서 있다고 평가한다.



▶비교2. 파운드리 생태계 측면

▷고객사 확보·전략, TSMC가 앞서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고객사 확보, 생태계, 사업 전략 등 제반 여건이 중요하다.

먼저 고객사 확보.

TSMC는 30년 이상 고객사와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뢰 관계가 구축돼 있다. 현재 TSMC 고객사만 약 500개에 이른다.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TSMC가 삼성전자보다 한 수 위다. TSMC는 파운드리 사업에만 힘을 쏟을 수 있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별도 시스템LSI사업부가 존재한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언제든 설계도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기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독립성 보장을 위해 별도로 파운드리사업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파운드리사업부 또한 삼성전자라는 기업에 속해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사업부를 분사해야 한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 이유다.

전반적인 생태계 측면에서도 삼성전자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 대만에는 세계 10대 팹리스 중 하나인 미디어텍이 있다. 대만은 전반적인 팹리스, 파운드리 분업화 구조가 가장 잘 돼 있는 국가다. 대만 경제에서 TSMC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부 지원 또한 활발하다. 반면 한국은 규모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팹리스 기업이 없다. 정부 지원 역시 큰 기대가 어렵다.

양사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종류도 차이가 난다. 삼성전자는 이전만 해도 모바일 AP,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 드라이버, CMOS 이미지센서 등만 취급했다. 지금은 각종 센서나 RF(무선 주파수 관련 칩) 등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TSMC와 비교하면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 TSMC는 세상에 있는 모든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생산 가능한 반도체 종류만 1만가지가 넘는다.

▶비교3. 투자 여력 측면

▷삼성이 그나마 앞설 수 있지만…

지난해 TSMC 실적을 보면 놀라운 부분이 많다. 매출 약 52조원에 영업이익은 약 22조원. 영업이익률이 무려 42%다.

더 무서운 점은 투자 규모다. 지난해 TSMC는 약 20조원을 설비 투자에 썼다. 올해는 투자 규모가 커졌다. 최대 3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단행한다는 계획이다. 웬델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설비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한다. 삼성전자가 D램에서 ‘초격차 전략’을 구사한다면 TSMC는 파운드리 산업에서 ‘초격차 전략’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가 그나마 TSMC에 대적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투자 여력이 아닐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가 170억달러(약 19조원)를 들여 미국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삼성전자가 100억달러(약 11조원) 이상 투입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에 파운드리 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투자 규모나 시기는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올해 투자 규모를 20조~30조원으로 늘린다는 소식도 종종 들린다.

현시점에서 삼성전자가 공정 기술이나 파운드리 산업을 위한 제반 여건은 TSMC에 뒤지는 것이 분명하다. 양사 점유율 격차는 무려 30%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TSMC와 삼성전자 간 점유율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다른 기업이 모두 TSMC 추격을 포기했을 때도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있어 눈길을 끈다. 116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삼성전자 입장에서 희망적인 요소다. 삼성전자 현재 주력 사업은 D램이나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다. 이 분야에서 연간 20조원 가까운 이익을 거두고 있다. 파운드리 투자 여력만큼은 삼성전자가 TSMC에 견줄 만한 상황이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투자 결정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혹자는 “파운드리 산업이 워낙 호황이기 때문에 TSMC에 이어 2인자 자리를 유지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에서 2위 기업은 언제든 도태될 수 있다. 호황과 불황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1위 기업’이 아니라면 안심할 수 없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대규모 신규 공장을 짓고 있다. 지금과 같은 공급난이 해소되면 TSMC를 제외한 나머지 파운드리 기업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7~8년 전부터 TSMC는 삼성전자를 매우 경계했다. 삼성전자 투자 결정에 따라 파운드리 산업은 10년 전 메모리와 같이 새로운 치킨 게임이 재현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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