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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떠오른 거점배송·실버택배… 택배갈등 없는 아파트 가보니

입력 : 2021-04-27 06:00:00 수정 : 2021-04-26 23: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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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구서 물건 넘겨받아
업체 수수료 받는 기사가 배송
서울 은평선 취약층 보조금 투입
‘어르신 기사’ 고용해 개별 배송

勞 “근로자 희생에 기대선 안돼
배달·퀵 노동자와 파업도 고려”
거점배송기사들이 지난 23일 경기 하남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택배 차량이 싣고 온 수하물을 전동카트에 옮겨 싣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하주차장에 있는 안심배송센터에서 택배상자를 분류하고 있는 모습. 장한서 기자

“저기 차 들어오네요. 얼른 올라갑시다.”

지난 23일 오전 11시쯤 경기 하남시의 한 대단지 아파트 입구에 택배차가 나타났다. ‘탑차’라 불리는 이 2.5t 차량은 단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멈췄다. 이어 차에서 내린 택배기사가 인도에 물건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지하주차장에서 노란 카트를 끌고 나타난 남성 3명이 택배기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물건을 카트에 옮겨 실었다. 상자를 내린 택배차는 곧장 다른 곳으로 떠났고, 200여개의 택배 상자를 실은 카트도 지하주차장으로 사라졌다. 카트가 도착한 곳은 지하주차장 2층에 있는 ‘안심배송센터’. 그곳에 대기하던 10여명의 다른 남성들은 카트에 실린 상자를 내려 동별로 물품을 분류했다. 이윽고 분류가 끝나자 상자는 각 가구 문 앞으로 옮겨졌다.

카트를 끌고 택배 상자를 배송한 이들은 ‘거점배송’ 기사다. ‘공원형 아파트’로 설계된 이 아파트는 단지 내 차량 출입이 금지돼 모든 차량은 지하주차장을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키가 큰 탑차 등은 진입하기 어렵다. 이에 거점배송 기사들이 카트로 택배를 넘겨받아 배송 업무를 분담하는 것이다. 이날 택배 차량에 물건을 싣고 온 택배기사는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는 저상 탑차에 물건을 실으면 수하량에 한계가 있어서 여러 번 오가야 한다”며 “(그런데) 이 아파트에서는 입구까지만 배송하면 돼 편리하다”고 말했다.

덕분에 이 아파트에서는 ‘택배 대란’이 발생한 적이 없다. 최근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단지 진입을 금지해 택배기사와 입주민 측이 갈등을 빚었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배송센터는 별도의 운영업체와 택배사, 아파트입주자대표 3자가 협의해 운영되며, 고용된 거점배송 기사 14명은 택배기사가 받는 수수료에서 일부를 떼어내 임금으로 받는다.

거점배송 기사들은 성남시 자활센터에서 연계한 조건부 수급자 등 경제적 취약계층이다.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째라는 신모(51)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 찾기도 힘든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영순(65)씨도 “집에만 있으면 오히려 몸이 아픈데 나와서 일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거점배송이 아파트의 택배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효과도 거두는 것이다.

지자체의 예산을 투입하는 곳도 있다. 26일 찾은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는 은평구의 ‘실버택배’ 정책으로 택배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택배 차량이 배송거점 장소에 수하물을 내려놓으면 ‘어르신 기사’들이 개별 배송을 하는 방식이다. 은평구청과 은평시니어클럽 등이 협의해 단지 안에 서울실버종합물류센터를 만들어 택배 배송을 담당한다. 택배기사들의 임금은 국가 보조금과 배송 수익금으로 지급된다. 이 아파트에서 실버택배가 처음 시행된 2015년부터 배송기사로 일했다는 최병은(81)씨는 “한 달에 60만원 정도 버는데 돈도 벌고 운동도 된다”며 “일을 할 기회를 줘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차량 진입이 금지된 아파트에서 거점배송 기사를 따로 두는 것이 택배 대란 문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비용 문제가 걸림돌이다. 현재 거점배송을 운용하는 곳의 인건비 대부분은 기존 택배 기사의 수수료에서 차감하고 있다.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수지타산’이 맞는 경우가 아니라면 택배 기사가 이런 임금 차감에 동의하기 어렵고, 기사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택배노조의 김인봉 사무처장은 “다산신도시 등 다른 지역에서도 실버택배를 운용했지만 인력 운용에 세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무산됐다”며 “결국 비용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택배 문제가 발생하는 지역에서 택배 노동자의 희생에 기댈 것이 아니라 택배사가 책임지고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택배노조는 이날 배달, 퀵 노동자와 함께 ‘갑질 아파트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총파업까지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종민, 하남=장한서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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