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가을의 끝자락으로 가는 지금도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게 보편화 돼 가고, 부정적이거나 경계의 의미로만 쓰이던 ‘거리두기’도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마주하면 느낄 수 있는 간절한 눈빛과 목소리·숨소리에 담긴 진실 된 마음, 따뜻한 온기는 희미해져 가고 사람이 떠난 공간은 존재의 의미조차 상실돼 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마주하지 못하거나 마주하지 않는, 한 공간이나 공동체 안에 함께 머물지 못하는, 생명체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을 잃은’ 시절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없다는 것, 사람을 잃는다는 것, 쓸쓸하고 고독하고 무서운 일이며 사람이 없는, 사람을 잃은 일은 참으로 무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경제는 ‘사람과 사람들의 결사’로 시작됩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공통의 목적을 이루고자 자발적으로 모이는 게 사회적 경제의 출발입니다. 결사의 목적을 이루고자 사업을 하고 그 사업의 과정이나 결과는 다시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환경으로 향합니다. 사회적 경제의 제도화 여부를 떠나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그래왔습니다. 또 이래야만 사회적 경제라 부를 수 있고, 이것이 안착될 때 우리는 시장도 아니고 국가도 아닌, ‘사회적 경제’라는 고유영역을 구축할 수 있고, 미래를 스스로 담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사회적 경제의 주체인 사람이 점점 사라져 가고 보이질 않습니다. 사회적 경제 영역이 점차 법으로 제도화돼 가면서 사회적 경제 주체가 사람에서 법제화된 조직의 이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제도화된 사회적 경제가 국가의 목적을 함께 달성해 줬으면 하는 국가의 기대도 문제겠지만, 조직의 이름으로 사회적 경제를 형해화한 우리 스스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결사로 시작했지만 법적 지위를 획득하면 법제화된 조직 이름만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결사도 없이 사람이 사업을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사업이 수단이고 사람이 주체인 사회적 경제에서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결사 목적을 사업을 통해 어떻게 충족할 것이며, 더 나아가 결사 안에 조차 들어오지 못해 소외된 사람들에게까지 어떻게 향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수립과 실천방법을 모르는 것도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이는 사회적 경제를 사회적 경제답게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나만의 것을 살리는 게 진정한 경쟁력인데, 나만의 것이 무엇이지 모르고, 나만의 것을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중심’의 경제라 자부하는 사회적 경제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경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풍부한 시대에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필요와 염원, 새로운 세상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다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를 위한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 정교한 시스템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회적 경제에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업이 주인이 된다는 뜻이고, 이는 ‘자본보다 인간과 노동을 우선’하는 사회적 경제에서 사람이 자본에게 밀려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경제에서 사람이 없다는 것,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일입니다.
사회적 경제가 제도화되지 않았고 심지어 탄압받던 시절에도 우리 선배들께서는 사람이 중심이었고, 사람이 중심되게 하려 방법을 찾아냈고, 사람을 잃지 않으려 부단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이 뜻과 노력이 무엇인지 다시 새겨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코로나19로 사람을 잃어가는 시대, 시장을 통한 부의 분배에는 아예 참여조차 못하고, 국가의 재분배는 턱없이 부족해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야기된 문제를 정보통신기술 등으로 극복해 나가는 문명으로부터도 소외된 이웃입니다. 자발적으로 결사한 사람만이 아닌, 결사 밖 이러한 이웃을 위해 사회적 경제 활동을 통한 공유지(Commons) 창출로 사회통합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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