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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괜찮은 카페 그 이상, 아파트먼트 기룬
서울의 카페들은 비슷한 모습을 띤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와 무릎 높이만 한 테이블이 있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잡지 몇 권이 올려져 있다. 분위기를 극대화해주는 블루투스 스피커는 필수다. 흔히 말하는 ‘인스타 감성’의 분위기. 이는 오늘날의 카페는 최신 트렌드가 반영된 곳이라는 증거다. 카페의 역할도 사뭇 변해간다. 우리는 집 대신 카페에서 공부나 일하는 것을 선호하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도 카페로 약속을 잡는다. 그러니까, 지금의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러 가는 곳 그 이상이라는 의미다.
서울 중구 장충동 대한불교조계종 관련 건물 ‘우리함께’에 위치한 아파트먼트 기룬 ©아파트먼트 기룬
동대입구역 조계종 회관에 자리 잡은 ‘아파트먼트 기룬’은 이런 트렌드 속에서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분위기를 지키려 한다. 과거 불교 강연장을 리브랜딩하고 리모델링한 이곳은 ‘새로 생긴 괜찮은 카페’로 남는 것을 경계한다. 대신 커피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모여 연대를 맺는 곳으로, 책과 강연을 통해 문화를 나누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해당 공간을 기획한 커먼 리터러시의 이형인 디렉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Interview with 이형인, 커먼 리터러시Common Literacy 디렉터
복합문화공간 ‘아파트먼트 기룬(이하 기룬)’의 기획을 맡은 이형인 디렉터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재생’과 ‘공동체’를 주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커먼 리터러시의 이형인입니다. 저희의 첫 작업인 아파트먼트 기룬은 카페를 넘어 장충동 일대의 대안 문화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각 구역은 커먼 리터러시가 선정한 파트너와 기획되고 운영한다. 1. 전실Entrace
기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 각종 책이나 오브제가 전시되어 있다. 외부와 협업하여 팝업 존이나 편집숍으로 꾸며질 계획이다. 2. 커피 바Coffee Bar
커피 바는 커뮤니티센터Community Center라는 팝업으로 운영된다. “사람을 모으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커피는 상업성이 담보된 실내 공간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커피 머신을 포함한 기물은 매장 밖으로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장충단 공원, 국립극장과 같이 매장 밖의 근처에서도 팝업 브루잉을 열 계획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공동체에는 ‘모든 생명’이 포함되기에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은 비건 디저트를 제공한다. 3. 커먼Common
기룬을 방문한 누구나 편히 머물 수 있는 거실. 식음료 주문 여부에 상관없이 편하게 서가의 책을 읽거나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4. 스테이지Stage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 무대. 강연장이었을 때부터 있던 강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더 넓게 활용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창고를 허물고 실내조경으로 채웠다. 10월에는 도쿄다반사팀과의 기획 행사가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동대입구역의 조계종 건물에 자리 잡았습니다. 본디 불교 아카데미의 강연장이었다고요. ‘문화살롱 기룬’이라는 이름으로 좌담회나 교육이 진행됐었어요. 2017년에 대규모 리뉴얼을 거쳤으나 활성화가 여의치 않아 잠정적으로 운영이 중단된 차였고요. 지인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듣고 브랜드 마케터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에 아카데미의 이사장님을 찾아뵙고 서너 번에 걸쳐 리모델링과 리브랜딩 제안을 드렸고요. 위치한 장소를 보면 불교와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하지만 종교를 콘셉트로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풀어냈다간 흉내만 내는 셈이 될 수 있으니까요. 공간 곳곳에서 불교와 관련된 오브제나 책을 볼 수 있어요. 모두 불교 아카데미로 사용될 적부터 있었던 것들이에요. 재생 공간으로서의 의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전의 흔적을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아파트먼트 기룬의 로고. 사각형 심볼은 ‘방’을 의미한다. ©아파트먼트 기룬
이름 ‘아파트먼트 기룬’의 뜻이 궁금합니다. 크게 ‘아파트먼트’와 ‘기룬’ 두 단어로 나눠 설명할 수 있어요. 아파트먼트의 사전적 정의는 ‘공동 주택’입니다. 관계자분들은 다양한 배경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언제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원하셨어요. 특정 대상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요. 아파트먼트야말로 기룬이 전하고자 하는 ‘공동체와의 연대’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인 거죠. 기룬은 한용운 스님의 시집에서 따온 말입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구절에서요. 충청도와 전라북도 지역의 사투리인 ‘기룬’은 그리움이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전에 사용되었던 공간의 이름이기도 해서 남겨두고 싶었어요.
공간 내부에서 가꾸고 있는 식물들 ©아파트먼트 기룬
지역 재생과 관련해 'TTT 구도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서울시의 지원도 받았습니다. 원도심 재생 일환으로 세대 균형 지원 사업에 선정됐어요. 기룬을 오랜 서울 원도심 중 하나인 장충동의 지역 거점이자 이 동네 주민들의 쉼터가 될 수 있도록요. 아쉽게도 코로나 사태로 오프라인 공간 활용에 차질이 생겨 사업 계획이 수정됐습니다. 그래도 저희의 목표는 기룬이 단순 상업 공간을 넘어 대안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TTT 구도심 프로젝트Teeny TIny Townie - 유명하지 않은 서울 동네의 이야기를 알리는 프로젝트 우리나라에 편의점보다 커피숍이 더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SNS에 ‘서울카페’를 검색하면 수많은 가게가 뜨고요. 그럼에도 ‘새로 생긴 괜찮은 카페’가 되는 것을 경계했어요. 전에 없던 것을 만들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허주혜 디자이너와 공간을 계획하며 이곳은 재생 공간이라는 사실에 집중했어요.
한쪽에는 읽을거리를 큐레이션 해둔 공간을 마련했다. 도서의 경우 장르에 구애받지는 않으나 기본적으로 젠더와 환경, 생명에 관한 책들은 항상 포함하려 한다고. ©아파트먼트 기룬
공간을 재생하면서 원래 있던 재료들을 재활용했다고요. 소파와 소파 테이블을 제외하면 모든 것들이 재활용된 셈이에요. 기존에 있던 기둥은 조명으로, 창틀과 나무판자는 테이블로 만들었습니다.
내부에서 밖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창. 어두운 실내의 밝기는 조명으로 채웠다. ©전혜민
대부분의 카페는 밝은 채도를 선호하는 데 반해 기룬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 앤 매너를 가지고 있습니다. 빛이 공간의 분위기를 좌우한다면 채광이 가장 좋은 인테리어 요소가 되곤 해요. 하지만 없는 창을 굳이 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조명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실내 곳곳에 조명을 설치해둔 것이 이런 이유입니다.
기룬이 어떤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나요? 장충동의 거점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요. 새롭게 생긴 곳이라기보다는 원래부터 이 근처에 있던 것들을 잘 다듬고 녹여낸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도쿄다반사와 함께하는 행사의 브로슈어 ©아파트먼트 기룬
앞으로의 운영 방향이나 현재 계획하고 있는 행사가 있다면요. 코로나로 계속해서 미뤄오던 일들을 조금씩 시작해볼까 합니다. 첫 파트너로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는 프로젝트 기획팀 ‘도쿄다반사’와요. 책과 음악 큐레이션을 함께할 예정입니다. 스테이지에서는 10월 15일(목)부터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안도프리미엄’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이고요. 이후에는 책 <커피가 커피지 뭐>의 저자 ‘연필과 머그&아티스틱 커피 듀오’팀과 기룬의 공간을 채울 예정입니다. 많은 분의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려요.
아파트먼트 기룬 서울 중구 동호로 24길 27-17, 2층 매일 12:00 - 22:00 (일요일 휴무)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에는 21:00까지 단축 운영. 이후 영업시간은 SNS에 별도 공지 안내 예정.
글 | 디자인프레스 온라인 기자단 전혜민 (designpress2016@naver.com)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 커먼 리터러시, 아파트먼트 기룬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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