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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가위, 들쇠, 손가락 대패… 70년 된 근대주택에서 감상하는 동양식 미드 센추리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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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20. 16:00
대학로 옆 작은 언덕 위 이화동 성곽 마을에 가구 편집숍 ‘무아치’가 문을 열었다. 이화동은 일제강점기 이후 대통령 사저인 ‘이화장’이 생기며 부유층들이 연립형 타운하우스를 이루어 살던 동네다. 1970년대 이후 낙후된 채 방치되었지만, 여전히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무아치는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숨겨진 보물 같은 이곳에서 근대주택 두 채를 연결하여 살뜰하게 정돈한 공간이다. 쇳대박물관을 운영하는 아버지 세대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오래된 사물들을 아들인 최진범 대표가 새롭고 친근한 구성으로 선별하여 소개한다.
공간이 들어선 자리는 오랜 세월 방치된 폐가였다. 쓰레기 더미를 버리고 집을 비우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을 정도다. 최진범 대표는 1950년대 지어진 주택의 건축양식을 최대한 보존했다. 건물의 뼈대와 형태는 유지한 채 썩은 지붕과 바닥만 드러냈는데, 두 채의 집을 합치며 자연스레 중정이 조성되어 공간에 여유와 기품을 더했다. “70년 가까이 된 낡은 집을 보며 이것 또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생각했어요. 세월이 지날수록 아름다움을 더해가는 동양의 미드 센추리인 셈이지요. 오래도록 지켜나가고 싶은 이 공간에 동서양의 멋을 조화롭게 담고자 해요.”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골고루 흡수하며 자라 왔던 그의 취향은 브랜드명 ‘무아치無我恥’에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나 스스로 경계 없이 자유로운 상태’라는 의미다. 그 이름처럼 이곳에서는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을 구태여 구분 짓지 않는다. 조선 목가구와 백자, 아프리카 빈티지 오브제, 조지 넬슨George Nelson의 소파나 잉베 익스트룀Yngve Ekström의 라운지 체어가 스스럼없이 한데 모인다. 손가락 대패, 엿가위처럼 작지만 소박한 이야기가 담긴 사물들도 함께 어우러진다. 개구멍 반닫이장이 놓인 곳 위로는 천장에 다소 생소한 오브제가 걸려 있다. 무엇인지 물으니 옛날에 한옥 문걸이로 사용했던 물건으로 걸쇠 혹은 들쇠라고 부른단다.
이제 문을 연 지 한 달 남짓인데 안목 있는 수집가들은 소문 듣고 벌써부터 찾아온다. 좋아서 기꺼이 찾아 모은 컬렉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의 힘이다. 최진범 대표는 ‘경계 없는 공간’이라는 브랜드 철학처럼 무아치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둔다. 신진 아티스트와의 협업 전시, 토기 컬렉션 전시는 물론 쇳대박물관 자물쇠, 열쇠 컬렉션을 쉽고 현대적인 언어로 재해석하여 상품화할 계획도 있다. 현재는 미드 센추리 모던 디자인 편집숍 컬렉트Kollect와 협업 전시를 진행 중이다. 그는 공간이 협소한 만큼 더욱 생동감 있는 편집숍으로 이곳을 꾸려나가겠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통가구와 유물에 장벽을 느끼는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의 멋을 전할 수 있는 색다른 방식까지 모색 중이다. 장인이 짜임새 있게 만든 가구와 소품도 결국 사용자가 스스로 쓰임을 만들어나갈 때 더욱 의미 있고 값진 사물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무아치 MUACHI>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9-616 운영 시간 | 목-일 11:00 ~ 18:00 (사전 방문 예약제) 글 | 디자인프레스 정인호 기자 (designpress2016@naver.com) 자료 제공 : 무아치 (@muachi_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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