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크리에이터] #187 조경전문가 김봉찬 vol.4 죽기 전 꼭 봐야 할 한국의 정원 Best 5

프로필
디자인프레스 공식블로그

2020. 11. 5. 20:00

이웃추가

‘Oh! 크리에이터’는 네이버 디자인이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조경전문가 김봉찬 대표의 네 번째 이야기

서울부터 제주까지, 그의 역작들


김봉찬

고사리와 키 작은 활엽수를 포함해 작고 여린 식물을 주인공 삼아 새로운 미감과 가치의 정원을 보여 주는 조경 전문가. “제주도 촌놈이 뭘 알겠습니까?” 말하지만 생태학은 기본, 철학과 미학, 인류학과 사회학에도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원이야말로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창작물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꽃과 나무의 생태적 특징을 넘어 우주의 운행 원리와 지구의 아름다움에까지 눈을 뜬 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고도의 미술. 제주 베케 정원, 포천 평강 식물원, 경기 곤지암 화담숲 암석원, 아모레 성수와 모노하의 정원 등 거의 모든 ‘베스트 가든’을 디자인했다.


김봉찬 대표가 만들어내는 정원은 기존에 없었던 형태와 디자인, 그리고 미감을 보여준다. 작은 꽃과 작은 나무가 큰 여운을 만드는 쪽으로 발전해 어디를 가든 야생의 숲에 온 듯 신비로운 기운을 발산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가 개성과 철학이 있는 조경 전문가로 활동을 시작한 나이는 35세 때부터. 그가 온 마음과 지식을 다해 구현한 정원들은 그 자체로 죽기 전 꼭 한 번 가 볼 만한 한국 정원의 리스트가 된다.

평강 식물원

제가 35세에 조성한 곳이예요. 큰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분이 평강한의원 원장님입니다. 서산 분인데 갖고 있던 땅을 파는 바람에 그런 땅을 다시 만들고 싶어 하셨지요. 여미지식물원에서 10년 경력을 쌓고 영국의 생태정원기술에 대해서도 공부를 한 터라 한 번 해보고 싶어 안달이 났을 때였어요. 촌놈이라 영어를 못 하는데 ‘be 동사’까지 찾아가면서 공부를 했어요(웃음). 생태 정원을 만들고 싶어서 풀 하나하나를 다 새로 심었어요. 개중에는 제가 지금 좋아하는 줄사초도 있지요. 이때가 1999년도였는데 일본만 해도 정원 문화가 굉장히 앞서 있었어요. 일본 습지 중에 하코네 습생 화원이라고 있어요. 그런 정원이 이미 1976년도에 만들어졌어요. 한 번 가보세요. 너무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옛날에는 정원에 연못을 만들이나 폭포를 만들면 ‘갈비집’ 이라고 했어요. 교외에 있는 갈비집에 가면 그런 시설물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저는 의문이었어요. ‘왜 저렇게 만들까’, ‘저런 건 참 싫다’하는 마음이었지요.

평강식물원은 자연스러운 조경을 한 번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요즘 이야기하는 생태정원의 시작이 그곳이었지요.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하기보다는 풀과 정원의 전체적인 관계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곳에 있는 모든 나무와 풀은 제가 직접 키운 거예요. 백두산, 지리산, 한라산에 가 씨앗을 가져와 심었지요. 그 작은 씨앗을 하우스에서 키우고 있으니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언제 정원을 만드느냐고 했는데 하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어린 풀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초원에 어린 풀만 가득하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정원을 만든다고 하면 큰 나무부터 알아보는데 작은 생명일 때부터 곁에 두고 키워야 더 사랑하게 돼요.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지요. 그래야 정원에 역사도 생겨요. 평강식물원도 한 때는 그저 잡초밭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깊고 풍요로운 땅이 됐습니다.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경북 봉화에 있는 곳인데 앞으로는 높은 산세가 우람하게 펼쳐집니다. 이런 곳에 정원을 만들 때유념할 게 있어요. 정원이 산하고 ‘붙어도’ 절대 작아 보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냥 전체적으로 조화가 잘 맞아야 해요. 그런 큰 그림 없이 정원을 만들어 놓으면 큰 산이랑 대비가 되면서 “그냥 아기자기하네”, 이런 말을 듣기 좋아요. 이곳은 암석 정원이고 고산식물을 위한 정원이예요. 돌무더기 사이사이로 고산식물이 올라와 있어서 황량하면서도 근사해요. 백두산 꼭대기에 자라는 식물을 가져와서 심기도 했는데 그것들을 그냥 심으면 다 죽어요. 어떻게든 직근을 뻗어서 땅 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줘야 해요. 국화 같은 식물은 원래 잔뿌리 식물인데 모래에다가 삽목揷木을 하면 굵은 뿌리의 직근이 나와요. 식물도 다 아는 거예요. ‘여긴 물도 없고 내가 곧 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 평상 시에는 그런 DNA가 아닌데 굵은 뿌리를 내려 땅 밑에까지 파고 들어가는 거죠. 이 때 뿌리가 더 깊이 내려갈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렇게 뿌리가 깊이 내려가 있으면 물 기운을 잘 흡수하고 그 기운으로 살아나가는 거지요.

제주 비오토피아 생태공원

제주 비오토피아가 있는 곳은 중산간 지대예요. 원래는 이곳이 초원지대였어요. 제주도의 초원에서 나올 수 있는 풍경, 이를테면 습지 정원이나 암석 정원 같은 곳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새로 만든 게 아니고 원래 있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정원. 수풍석 미술관은 하나하나 건축미가 좋아서 건축물 주변을 제주도의 진짜 초원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억새가 마구 야생적으로 흔들리는.

벌써 15년 이상 된 곳인데 최소한의 관리로 경관이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이곳에 내리는 물은 우수 라인을 통과해 모두 습지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물이 마르지 않는 거죠. 빗물을 재활용할 수도 있고요. 이 습지의 물은 특별하게 청소를 안 해도 깨끗하게 관리가 돼요. 물이 귀한 여름철에 가도 물 깊이가 1m가 넘어요. 저 아래쪽으로 개미만 한 물벼룩이 지나가는 것도 보여요. 그 정도로 친환경적이고 친생태적인 공간이예요. 우리가 흔히 물도 썩는다고 하는데 자연에서는 물도 안 썩어요. 우포늪을 보세요. 썩기는커녕 생명의 원천이잖아요. 생태 정원은 생태 기술과도 관련이 깊어요. 인공 필터를 만들어 땅과 물을 깨끗하게 해 주는 거죠. 이런 기술들을 잘 활용하면 20년이 지나도 깨끗한 물과 정원을 만들 수 있어요.

아모레 성수

처음 아모레에서 연락이 왔을 때 안 될 줄 알았어요. 제가 인지도가 있거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데 어느 날 베케에 서 회장님이 직접 오셨어요. 연락도 없이, 일요일에. 언뜻 보기에도 자연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설악산과 백두산을 포함해서 한국에 좋은 자연이 정말 많은데 서울 사람들이 망쳐 놨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다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어요. 하버드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한 번씩 서울에 올라가면 버스도 어디서 타는 지 잘 모르지만 할 수 있다고 했죠.

아모레 성수 있던 자리가 자동차 정비소여서 토양이 굉장히 오염돼 있었어요. 유럽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토양에 1달러를 쓰고 나무에 1센트를 써야 한다고. 한국은 거꾸로죠. 나무에는 1달러를 쓰면서 토양에는 1센트만 써요. 토양이 중요한데 무거운 롤러나 차가 계속 땅을 누르면 땅이 콘크리트처럼 돼요. 미생물과 식물이 못 자라는 거예요. 아모레 성수의 정원을 만들면서 바닥을 15m까지 깊이까지 완전히 파 냈어요. 원래 진흙땅이라 물이 안 빠지면서 저절로 연못이 생기더라고요. 배수가 좋은 토양으로 흙의 성질을 다 바꿔주고 계곡 같은 형상이 된 사면에 나무를 심어줬어요. 그렇게 깊이가 생겼어요. 바닥으로는 키 작은 식물들이 많아 건물 안에서 가만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고요. 아모레 성수는 최고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어요. 제가 해 달라고 하는 것을 안 해준 것이 하나도 없었고 아모레 내부에서도 디자인 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전폭적으로 믿고 지지해 줬어요. 이런 팀은 다시 못 만날 확률이 높죠.

모노하

모노하 안에는 오브제가 많아요. 건물도 제법 크지요. 그런데 여기에 들어가는 정원까지 큰 나무들로 채워 넣으면 여백의 미가 없게 돼요. 그래서 부러 키가 잘 안 크는 나무를 골랐어요. 작고 여린 나무들로 채웠지요. 빽빽하게 심지 않고 여백도 많이 주고요. 그러니까 단순해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거예요. 대표적인 나무가 사람주나무예요. 키 작은 낙엽활엽수인데 이 나무가 얼마나 안 자라냐 하면 30년이 지나도 몸통이 굵어지지 않고 야리야리한 모습 그대로 있어요. 조경하는 농장에서 그 나무를 하면 망해요. 한국에서는 무게가 많이 나가야 비싸니까. 모노하의 정원은 작은 것들이 어우러져서 작은 원시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요. 키 작은 활엽수 아래로 고사리 종류를 심어 놔 신비로운 그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요. 어디서 많이 못 봤던 정원이라 새롭기도 하고. 정원을 만들 때는 작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갖다 놔야 해요. 그 땅에 딱 맞는 식물을 가져다 놓으면 사람들은 아 이게 진짜 숲이구나 하고 느껴요. 맥문동은 음지와 양지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데 이를 테면 그늘에서만 온전히, 또 완전히 자라는 고사리 같은 식물을 심으면 정원이 훨씬 깊어져요.

기획 | 디자인프레스 편집부

글 |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정성갑

(designpress2016@naver.com)

인물 사진 | 이은숙, 더가든, 정성갑


디자인프레스는 매주 1명의 크리에이터를 선정하여 ‘네이버 디자인 - Oh! 크리에이터’를 연재합니다.

Oh! 크리에이터 – 조경전문가 김봉찬

01. 한국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정원, 베케

02. 제주 베케는 어떻게 최고의 정원이 되었나?

03. 베케에 반영된 '큰' 디자인 규칙

▶ 04. 죽기 전 꼭 봐야 할 한국의 정원 Best 5

05. 좋은 정원, 손 쉽게 알아보는 법

디자인프레스
디자인프레스 공식블로그 미술·디자인

디자인프레스는 네이버와 디자인하우스가 만든 합작법인입니다. '디자인, 공예, 아트' 관련 정보를 다루는 콘텐츠 기업이며 관련 분야의 이벤트, 세미나, 팝업, 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합니다. 현재 디자인플러스(www.design.co.kr)와 헤이팝(www.heypop.kr)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