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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상가 4층에 위치한 파인 스테이, 어 베터 플레이스. 401 (1)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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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20. 11:58
곱창집과 숙박 브랜드가 함께 있는 어느 종로 상가
어 베터 플레이스. 401 ⓒSangpil Lee
“4층은 아래 비밀번호를 눌러주세요. 띡띡 띡띡~띡, 찰칵” 상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날의 예약자’ 뿐이다. 1층에는 종로의 유명 곱창집이, 4층에는 펜트하우스 같은 숙박 브랜드가 공존하는 이 기묘한 풍경이라니. 종로 일대의 상가 건물을 보자. 대로변에서 조금 들어가면 5층 이하 연면적 3천 평에 못 미치는 상가 건물(일명 ‘꼬마 빌딩’이라 부른다)들이 즐비하다. 1층은 임대료가 비싼 반면, 위로 갈수록 저렴하다. 코로나19 이후, 공실 비율도 부쩍 늘었다. 디자이너, 문석진은 비어 있던 상가의 한 층을 임대하여 싹 고쳤고, 근사한 숙박 시설로 탈바꿈시켰다. 어느 종로 상가 4층에 위치한 ‘어 베터 플레이스, 401’이 바로 주인공이다.
다이닝 테이블 주변 벽 수납장에는 커트러리와 냅킨, 식탁매트, 컵받침이 수납되어 있다. 테이블 조명은 스위치가 따로 있어 분위기에 맞게 밝기를 조절할 수 있다. ⓒSangpil Lee
“ 어 베터 플레이스는 생활의 편리와 아름다움을 디자인하는 주거 공간 브랜드입니다. 한국(서울)의 주거 문화와 공간의 특성을 분석하고 더 나은 내일의 모습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첫 번째 장소는 600년이 넘는 역사의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종로입니다. 객실 내 다양한 오리지널리티 디자인을 경험하며 '더 나은 곳'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나누려 합니다.”
잘나가는 디자인 컨설팅 기업의 대표로 남부러울 것 없이 25년간 지내다 새로운 도전을 한 디자이너를 만난 적 있다. 청소기 하나를 제일 잘 만드는 다이슨처럼, 생활 가전을 뭐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꿈을 품고 실행했다.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없는 3년의 시간을 견디고 있고, 20억 가량의 개발비를 투자한 그의 미래가 해피엔딩일지는 아직 모른다. 디자이너로 살며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는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말이 좋아 컨설팅이지, 평생 남 좋은 일만 시켜준 것 같다는 것이 요지였다. 디자이너 문석진은 10년 차 디자이너다. 영국 RCA 졸업 후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13년부터 디자인 메소즈의 공동 대표로 일했다. 대표작으로 호텔 스몰하우스빅도어, ST&컴퍼니 공간 디렉팅 등이 있다. 디자인 메소즈에서 독립한 후 그는 1년 전부터 ’유즈플 워크샵Useful Workshop’을 시작했다. 산업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함께 일하는 서울 베이스의 디자인 스튜디오. 올해 2월, 스톡홀름 가구 페어에서 선보인 가구는 몇몇 가구 브랜드의 콜을 받아 협업을 진행 중이고, 공간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내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타인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가구 브랜드에 디자이너의 이름을 올리는 일 또한 매우 기쁜 일이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운영까지 책임지는 브랜드 하나쯤 만들어보고 싶었다.” 초기 비용에 큰 투자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상가의 공실을 떠올렸다. “텅 빈 상가 건물을 고친다고, 숙박 인허가 승인이 가능할까?” 보통 포기하지만, 그는 “와이 낫?”이라는 심정으로 달려들었다.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는 마루에 앉아 커피 한잔. 창을 열면 서울 도시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Sangpil Lee
가구를 주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숙박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나? 첫 시작이 궁금하다. 디자인 메소즈에서 일할 당시, 모 건설사의 의뢰로 200여 가구를 대상으로 한 주거 모델을 기획한 적 있다. 근 미래의 주거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가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많은 도구를 모듈식 가구에 수납하고 점차 확장해가는 것이 제안한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이를 현실에서 실현시킨 것이 ‘어 베터 플레이스, 401’다.
냄비, 팬, 커피 포트 등의 알레시 주방 용품,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이 갖춰진 수납장. 가구는 유즈풀 워크숍 자체 제작. ⓒSangpil Lee
상가의 재활용, 거리에 활력을 주는 간단하고도 탁월한 방법
숙소에 적합한 상가를 찾기 위해 많은 장소를 방문했을 것 같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처음에 한 일은 사무실 한쪽에 서울시 지도를 붙여놓는 것이었다. 숙박 시설의 인허가가 가능한 곳을 지역별로 표시했다. 학교나 주거 지역과 일정 거리 떨어져 있어야 하고, 여러 제한 사항을 살피는 것이 첫 번째였다. ‘남산 뷰’가 근사한 남산동 일대의 상가 임대료가 예산 범위 안에 들어왔고 마음에 들었지만, 허가가 안 나는 곳은 리스트에서 지워가며 접근했다. 여러 장소 중에서도 왜 종로를 택했나? 처음에는 외국인 대상의 숙박 브랜드로 생각했었다. 외국인 시선으로 보면, 한국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가 종로다. 숙소 가까이에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고 명동과 종각, 서울역도 가깝다. 런던에 처음 방문하면, 중앙역 주변에 숙소를 잡고 도시 관광을 하듯이. 이 주변을 탐색했고, 지금의 장소를 만났다. ‘어 베터 플레이스’를 론칭과 함께 이상필 디자이너가 제작한 영상을 공개했다. 숙소를 가운데에 두고 도보 여행이 가능한 곳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일종의 ‘서울 재발견’ 느낌이 들 것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 또한 이곳을 도보로 여행한 기억이 없다. 너무 가까워 놓쳐버린 즐거움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상필 제작의 ‘서울 필름’. 경복궁. 종묘, 창경궁 대온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지문화산업센터, 보안여관. 청계천, 종로돈부리까지 '어 베터 플레이스'를 가운데에 두고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곳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서울시에서도 오피스 빌딩이나 상가를 주거 공간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수개월간 상가를 찾다 보니, 이제 차를 운전하거나 걸을 때 주로 상가의 위층을 보게 된다. 메인 도로에서 한 골목만 들어가도 비어있는 상가가 매우 많고 공실률이 심각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보통 오피스나 상가의 저층부는 주거로 삼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아래에는 상업 시설이 들어서고, 3층 정도부터 주거나 숙박 시설이 들어가면 적절하다. 이러한 형태가 활성화되면, 도시의 기본 밀도를 충족하면서도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상주하는 인구와 유동 인구 간의 적절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솔루션이기도 하다.
여행 중 간단한 조리가 가능한 아일랜드 키친테이블 영역. 모듈러 월 시스템에는 주방 환풍기가 있고. 냄비 받침과 조리에 필요한 도구들이 수납되어 있다. 그릇과 접시, 칼, 컵 등은 아일랜드 부엌 아래에 수납되어 있다. ⓒSangpil Lee
인허가 과정, 까다롭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과정이 어렵거나, 돈이 안되거나. 숙박업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번듯한 건물을 떠올릴 것이다. 새로 건물을 짓거나 고쳐서 사용하지, 상가의 공실을 숙박 시설로 활용한다는 생각을 별로 안 했을 것이다. 인허가 과정이 물론 쉽지는 않았다. 소방과 위생 등 종로구청의 각 부처별로 요구하는 사항을 충족시키고 서류를 완비한 후 수차례 오갔다.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브랜드명의 의미가 궁금하다. 어 배터 플레이스A Better Place’의 줄임말인 ABP로 사용하기도 한다. ABP는 ‘혈액의 압력’을 뜻하는 의학 용어이기도 하던데.(웃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종종 사용하는 문장이 ‘더 나아진 점이 뭐야?”이다. ‘베터’해진 것이 없다면 또다시 디자인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의자보다 나아진 것, 이 물병보다 나아진 것, 이 숙박 브랜드보다 나아진 게 뭐야?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니 이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나아진 것이 없다면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공간의 중앙 레일을 이용해 중문을 열고 닫을 수 있어, 침실과 거실 공간을 적절하게 분할할 수 있다. ⓒSangpil Lee
‘어 베터 플레이스’가 다른 숙박 브랜드보다 나은 게 무엇인가? ‘근미래의 주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졌고 이에 대한 답이 곳곳에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저녁 10시가 되면 조도가 낮춰질 수 있지 않을까? 집주인이 어떤 시간대에, 어떤 장소에서 무엇을 하는지 정보를 수집해 조명이 스스로 빛의 양을 조절하거나 색을 제안하는 것이다. 집 안에 스위치나 문 손잡이가 아예 없으면 어떨까? 물론 이런 생각들의 반의반도 아직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9가지 기능을 가진 모듈식 월 시스템은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시간과 비용, 인력 투자를 가장 많이 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 2편에서 어 베터 플레이스 공간 디자인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프로젝트명 | 어 베터 플레이스. A better place. 클라이언트 | 어 베터 플레이스. A better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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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디자인프레스 편집장 김만나 (designpress2016@naver.com) 사진 제공 | 어베터플레이스 abetterpla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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