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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크리에이터] #192 건축가 민성진 vol.1 자유롭고 대담한 도시 연구자의 25년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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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9. 22:11
‘Oh! 크리에이터’는 네이버 디자인이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건축가 민성진 첫 번째 이야기 “창작은 발바닥에서 나오는 것”
민성진 | SKM 건축사사무소 존재의 이유가 분명한 건물을 짓는 건축가. 시대를 읽는 깊이 있는 안목과 관점으로 사람을 위한 환경을 제시한다. 1964년 출생.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교(USC)와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GSD)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며 1995년 SKM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주요 작품은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 엠파크 허브 중고차 매매단지, GS 자이 주택문화관, 세이지우드 골프 & 리조트, 헤르만 하우스, 세스코 아카데미 등으로, 휴식, 레저, 상업, 주거 문화를 폭넓게 아우른다. 대담한 건축적 도전과 섬세한 디테일, 수준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한번 일했던 클라이언트가 계속 찾는 사무소로 유명하다. 건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며 믿음직스러운 자신의 동료들과 ‘생명력 있는 건축’을 완성하는 일에 목적을 둔다. skma.com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까마득한 SKM 건축사사무소 사옥.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5m가 넘는 층고에서 오는 자유로운 공간감을 느끼게 된다. ⓒ 김동규
사옥 문 앞에 도착하자 빙긋 웃음이 났다. 입구에 적힌 다정한 문구 때문이다. “평안한 장소에서 건축에 몰입할 수 있는 일상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건축을 대하는 민성진 건축가의 겸허하고 진중한 태도가 그 한 문장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SKM 사옥은 그가 10여 년 전에 직접 설계한 건물이다. 도심 한복판 주택가에서 한발 물러난 품새로 단정하게 자리하는데 다양한 식물이 무성하게 건물을 덮고 있어 마치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것처럼 고즈넉하다. 1층 회의실 서가는 그가 주로 머무는 방.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영감의 창고다. 민성진 건축가는 문학, 예술, 철학, 과학 등 편식 없이 골고루 좋은 서적을 섭렵하는데 모든 책은 결국 자연의 섭리와 건축 철학으로 귀결된다. 이곳에서 그는 SKM 건축사사무소의 이정표를 그린다. 멍하게 기다리지 않고, 엉덩이의 힘을 믿으며 꾸준하게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그의 순항 방식이다. 좋은 건축가가 되기 이전에 좋은 인간이기를 노력하고 있다는 그의 가감 없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통창 너머로 정원이 액자처럼 걸린 볕 좋은 서재에 마주 앉았다.
1층 서가를 보면 그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살필 수 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그의 지적 허기는 SKM 건축사사무소의 작업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바탕이다. ⓒ 김동규
올해는 SKM 건축사사무소가 25주년을 맞이한 해예요. 어떤 일이 있었나요? 지난 25년을 돌아보며 25개 키워드를 정리하여 책을 만들었어요. 독창성, 인류애, 생명력, 유연성, 자연, 기술, 형태… SKM 건축사사무소의 관점을 표현하는 단어와 건축 사진, 그리고 이를 함축하는 문장을 함께 담았지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함께 일하는 공동체로서 우리가 어떠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되짚어 보고자 했던 것이죠. 전 직원 설문을 통해 키워드를 취합하고 선별했는데, 한 분이 적어낸 낱말 중 23개가 책에 실렸어요. 그녀가 고른 단어로 진작에 결정했다면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6개월을 단축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웃음). 그만큼 우리 동료들이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키워드 외에도 사옥 벽면 곳곳에 다양한 문구들이 붙어있어요. 건축가에게는 건물을 짓는 능력에 앞서 정신적인 신념이 중요하니까요. 많은 문장을 붙여 놓은 까닭은 하나의 가치만 좇게 되면 그 목표에 부합하지 않을 때 불행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지향하는 바가 여럿이라면 서로 유연하게 존중할 수 있죠.
25 Years - 25 Keywords ⓒ SKM 건축사사무소
SKM은 장기근속자가 많은 사무소로 유명해요. 개소할 당시 영입했던 실시 설계 전문 소장님은 아직도 계신다고. 4명으로 시작해서 이제 30명 남짓 되니 1년에 한 명씩 직원이 늘어난 셈이에요. 10년 이상의 경력자들이 많지요. 저는 설계, 구조, 전기, 설비, 토목을 전부 아우르고 소화할 수 있는 경력자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신선함 만으로는 퀄리티를 충족할 수 없거든요. 조평제 소장님은 저와 25년을 함께하신 분이죠. 시작했을 당시 저보다 급여가 높았어요. 저희는 실시 설계도 직접 하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SKM은 건축뿐 아니라 인테리어 설계까지 동시에 하죠. 한국 건축가로서는 드물게 오성급 호텔 프로젝트를 단독 설계하기도 했고요.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하며 설계해야 건축도 인테리어도 완성도가 더욱 높아져요. 필요에 따라 다른 디자이너에게 공간의 일부를 맡기기도 하고 협업도 하지만요. 프로그램에 깊이 있게 관여하기 때문에 프로젝트 하나 맡을 때마다 집중해서 오랫동안 진행해요. 25년 동안 지은 건물이 25개 정도이니 다작하는 편은 아니죠. 나중에 또 한 번 책을 낸다면 이런 오랜 고민을 담아 한 세트에 세 권을 엮고 싶어요. 콘셉트, 과정, 결과물로 나눠서요. 결국 건축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수용하는 모든 공간과 사물을 일컫는 것 같아요. 특히 최근엔 일과 삶의 바탕이 되는 건축,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의衣와 식食이 충족되면 주住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해요. 이제는 먹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다이어트에 연연하는 시대이고, 명품 옷으로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흐름도 지났어요. 자신이 머무는 환경을 좋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점점 더 커지겠죠. 커피 맛보다도 커피 마시는 분위기를 중시하는 요즘이잖아요. 장소를 점유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집이 아닐까 싶어요.
소장님은 부산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났어요. 건축에 눈을 뜬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캘리포니아에 있는 학교에 갔는데 동양인은 저뿐이었어요.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없었죠. 유일하게 저와 어울렸던 친구들은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들이었고 방과 후 그들과 도서관에 다니는 게 일상이었지요. 엘레비 베켓이라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공공 도서관이었는데 높은 층고가 주는 공간감에 단번에 압도됐어요. ‘이런 건축물은 누가 만든 걸까?’ 막연하지만 멋진 건물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미국 학교 커리큘럼은 에세이를 많이 필요로 했는데, 그럴 때면 또 스스로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곤 했지요. 고등학교엔 건축 클래스가 따로 없으니 주변 컬리지에 찾아가 관련 수업을 신청해서 듣기도 했고요. 돌이켜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건축에 기댔던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겪으며 어렴풋하게 건축가의 꿈을 키웠어요. 어린 유학생에게 건축이 나름의 해방구이자 안식처였네요. 대학교, 대학원을 다닐 때도 그랬나 봐요. 기분이 안 좋을 때도, 한가한 금요일 밤에도 24시간 열려 있는 스튜디오 제도판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쉬는 토요일이면 항상 사무실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복기하곤 해요. 얼마 전에는 10년 가까이 되는 가족사진을 정리했는데 인물 사진은 별로 없고 대부분 건축 사진이라 헛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심지어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요. ‘어쩌면 인류는 건축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인류가 멸망해도 건축물은 남아있지 않을까?’라고. 그만큼 저는 건축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유년의 경험이 가장 강렬한 건축적 인상인 듯해요. 모든 창작은 발바닥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발끝을 자극해야 뇌가 살아 움직이는 거예요. 아인슈타인도 하루에 한 시간은 무조건 동료들과 산책을 했다고 해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다섯 형제를 데리고 틈만 나면 전국 사찰을 찾아 방방곡곡 돌아다니셨어요. 집에서는 개를 열 마리나 길렀는데 안팎 구분도 없이 들락날락하며 다섯 형제와 엉켜서 살았죠. 저의 건축을 보고 ‘자유롭고 대담하다’고 평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날 것’에 가까운 모습으로 뛰어다녔던 경험이 그러한 사고를 길러주지 않았나 싶어요. 저희 형제들은 허구한 날 놀 궁리만 하면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 늘 웃음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거든요. 층고가 높은 공간에서 창의적인 사고가 나온다는데, 저는 천장이 하늘까지 뻥 뚫린 골목 어귀에서 매일같이 뛰어다녔으니까요. SKM 정도 규모를 이루는 중견 건축 사무소는 한국에 많지 않아요. 신중하게 차근차근 키워 온 회사의 25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25가지 키워드를 정리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정체성이 확고할수록 존속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결국 언젠가 소멸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던지는 힘 있는 질문들은 꾸준히 정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엔 직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타인에게 자랑할 만한 일을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치를 추구하자고. 그게 불가능할 것 같은 경우 과감히 프로젝트를 포기하기도 하죠. 저는 작품 한 편으로 크게 히트하는 작가보다는 오랫동안 좋은 글을 쓰는 소설가가 더 멋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사를 키워야겠다는 큰 욕심은 없지만 꾸준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자 해요.
사무실 벽면 곳곳에서 건축을 대하는 SKM의 태도가 읽힌다. “우리는 기필코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건축물 100개를 디자인한다”라는 문장에서는 그 비장함이 머쓱해 ‘기필코’를 지웠다고 한다. ⓒ designpress
기획 | 디자인프레스 편집부 글 | 디자인프레스 정인호 기자 (designpress2016@naver.com) 사진 | 김잔듸(516 studio) *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사진을 무단 복제 및 사용할 경우 법적인 책임이 생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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