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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뮈스의 새 사무실 공개, 표절 혹은 오마주?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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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19. 15:30
지난주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자크뮈스Jacquemus는 새로운 사무실 내부를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프랑스 보그에 독점으로 싣기로 한 인테리어 사진들은프랑스 AD의 에디터가 촬영 스타일링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 공개되자마다 멋지다는 수백 개의 덧글이 달리던 중 디자인 전문가들의 눈에는 어떤 불편한 사실이 하나 포착되었다.
파리 8구에 위치한 새로운 사무실 디자인 역시 자크뮈스의 아이덴티티에 어울리는 모던하고 세련됨을 베이스로 지중해의 자유로운 감성을 부분적으로 더했다. 아름답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서른 살 젊은 디자이너의 감각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가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다는 피에르 폴랑Pierre Paulin의 미시시피Mississippi 소파가 놓인 미니멀한 공간, 남프랑스의 분위기가 전달되도록 연출한 테라코타 화분들이 놓인 테라스, 이탈리아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의 프리마 두나Prima Duna 책상과 덴마크 신진 도예가 말렌 크누센Malene Knudsen의 화병이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는 방 그리고 사진을 하나씩 넘기다가 어디선가 본 듯한 가구와 스타일링에서 시선이 머물게 된다.
루크하르트 형제Hans und Wassili Luckhardt가 1932년에 디자인한 두 개의 크롬 기둥을 세워 만든 책상과 자크뮈스의 사무실 리셉션의 책상이 동일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데, 책상과 함께 연출된 미스 반 데 로에의 의자와 책상 위 검은색 램프, 전화기의 위치까지 1930년대 베를린의 빌라에 연출된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벽에 자크뮈스라는 큼직한 글자가 없었다면 이 장소가 베를린인지 파리인지 헷갈릴 만큼 말이다.
루크하르트 형제의 작품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SNS에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가장 먼저 공론화한 곳은 14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컨템포러리 디자인 플랫폼 세이하이투Say Hi To다. 1930년대의 크롬 책상을 오마주해 그대로 연출했다면 촬영 컷에 원작의 이름과 설명이 더해져야 하는데 그 정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전문가적이지 못한 행동이고 이렇게 남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인 양 보이도록 하는 행위는 디자인 윤리에 맞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았다. 촬영을 집행한 프랑스 AD 에디터는 ‘자크뮈스가 구입해 소장한 작품일 수도 있지 않는냐’라는 어설픈 해명을 더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실제 이 책상은 재생산된 기록이 없어 구입이 불가능한 작품이다. 하루 만에 유럽 인테리어 디자인계에 거대한 불길처럼 타오른 자크뮈스 사무실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놀라움과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자크뮈스 측은 사무실 공개 이틀 만에 사과문을 작성해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원래 루크하르트 형제가 디자인한 책상의 사진을 좋아했고 그대로 따라 연출한 오마주였다’라는 뒤늦은 해명이었다.
(좌) 이광호 디자이너 (2020.2) (우) @ 자크뮈스 (2021.1). 출처 | @sayhito_
자크뮈스의 해명 덕에 온라인에서의 열기가 줄어들 줄 알았지만 오히려 감춰졌던 다른 작업들의 카피 제보가 이어져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이미지를 검색해 그대로 똑같이 만들라고 시킨다’라는 내부 디자인팀의 익명의 제보뿐만 아니라 사무실 건물 안쪽 정원에 놓인 유선형의 화이트 테이블은 한국의 이광호 디자이너의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나왔다. 사무실 내부 사진 속 직육면체의 기하학적 의자는 미국의 미니멀리즘 아티스트 도날드 저드의 Chair 84의 진품인지의 여부도 알려달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단지 오마주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스캔들이라고 하기엔 좀 과한 관심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프랑스 패션계의 천재라는 타이틀로 업계 최고의 위치에 오른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인정해야 한다. 특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친 그가 그동안 남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해왔다는 예시를 제공한 이번 사건은 많은 신진 디자이너들 입장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과거의 알려진 작품은 오마주라는 방법을 취하고, 현재의 젊은 아이디어는 협업이라는 이름 하에 작업을 의뢰하면 된다. 첫 번째 것은 정확한 크레딧 정보를 명시해서 해결할 수 있고, 두 번째 방법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업계의 발전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특히 자크뮈스처럼 협력의 제안이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면 더욱더 주변과의 상생을 위해 이 방법을 제안해야 한다. 디자이너 외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중심에는 프랑스 AD 잡지가 있다. 디자인 전문가라면 모를 수 없었던 표절이라는 사실을 눈감아주고 제대로 된 정보를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 사람들은 노여워하고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 AD는 현지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이기 때문에 특히 이 부분에 대해 용납이 어렵다는 해석이다.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덧글을 매번 삭제하는 대응을 보인 프랑스 AD와 달리 독일, 스페인 판 AD에서는 이 사건을 기사로 발표했다. 패션계에서는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인테리어 복제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더 수면 위로 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디자인 윤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너무나 중요하지만 아쉽게도 가장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통 자금력을 가진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신진 디자이너의 경우 아이디어를 뺏기거나 도용을 당해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자크뮈스 사건이 온라인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는 그만큼 ‘디자인 윤리’에 어긋나는 사례와 피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역할은 미디어의 손에 달려있다. 아직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될지 알 수 없지만 정확한 해명과 함께 정보가 공개되는 것으로 끝나길 바란다. 그것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앞으로의 디자인계에서 스타 패션 디자이너가 롱런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고, 앞으로 지켜져야 할 디자인 윤리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 | 디자인프레스 해외 통신원 양윤정 (designpress2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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