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h! 크리에이터] #197 공간 디자이너 종킴 Vol.2 명품 가방 같은 공간의 비밀
디자인프레스
・
2021. 1. 22. 1:42
‘Oh! 크리에이터’는 네이버 디자인이 동시대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공간 디자이너 종킴의 두 번째 이야기 소리치는 법이 없는, 진짜 디테일
공간 디자이너 종킴(김종완) 공간 디자인을 통해 의뢰인의 철학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상쇄하는 ‘공간전략디자이너’. 디자인 스쿨 에꼴 카몽도École Camondo 공간・제품 디자인 전공 졸업. 공간 디자인 회사 주앙 만쿠Jouin Manku에 대학원생 인턴으로 입사해 5년 뒤 VIP 클라이언트 전담 디렉터Chef로 퇴사. 반 클리프 아펠 긴자 플래그십 스토어 작업을 마지막으로 귀국,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를 거쳐 2016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종킴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한다. 과감하게 곡선을 사용해 자연스러운 심도를 주는 한편 국내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소재를 발굴하고 일일이 마감해 공간의 완성도와 깊이가 남다르다는 평. 직접 명명한 ‘공간전략디자이너'란 말에 걸맞게 구호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 설화수 스파 등 종킴이 선보여 온 공간은 표면의 단순한 형태를 넘어 스토어 아이덴티티(SI) 정립을 통한 브랜드의 상업적 성공에 그 핵심이 있다.
15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201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종킴디자인스튜디오'로 서울 디자인 신에 상륙한 종킴. 종킴이란 대형 신인의 존재를 알린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승부사적 기질에 이어 2편에서는 그의 공간을 점차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키게 한, 공간의 격을 높이는 디테일을 살핀다.
오랜 명성을 지닌 이탈리아의 가죽 브랜드로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함께 국내에 진출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취임하면서 젊은 감각의 악어백이 재탄생하는 중요한 시기에 공간을 의뢰받았다. 종킴은 옛 소재와 신소재의 교차점을 직선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선으로 표현할 것을 제안했다. 갤러리아 이스트에 위치한 이 공간의 콘셉트는 요트. 작은 손잡이 하나까지도 마감에 마감을 거듭했고, 전체가 하나의 명품 가방같은 공간으로 완성됐다. 이 공간의 면면은 이후 콜롬보의 스토어 아이덴티티로 활용된다.
‘콜롬보' 프로젝트를 가장 좋아하는 작업으로 꼽는다고요. 리테일 공간이 정말 많잖아요. 소재 하나만 잘못 선택해도 특정 브랜드를 따라했단 얘길 듣기 십상이에요. 그런데 콜롬보는 가장 콜롬보스럽게 풀어냈다고 생각해요. 브랜드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오면서 젊은 감각의 악어백이 재탄생하는 시기였고, 클래식한 소재가 사선으로 꽂히고 그 중간에 이음새가 들어간 스케치를 제안했어요. 취지는 좋지만 사선이 들어가면 가용 공간이 줄어들게 되니 클라이언트가 받아들여 주실지가 미지수였는데, 한번에 OK 사인이 떨어졌어요.
작은 손잡이까지 하나하나 마감했다. © Studio SIM
공간 전체가 매끈한 느낌이 나는 건 왜일까요. 길이 든 느낌이라고 할까요. 재료를 모두 가공했기 때문일 거예요. 저희는 어느 하나도 그냥 놔두질 않아요. 돌은 기본적으로 샌딩을 했고, 클래식한 느낌을 주기 위해 가공된 돌을 굳이 뒤집어 둔 부분도 있고요. 나무에도 요즘 잘 하지 않는다는 피아노 도장까지 했어요. 정말 아주 작은 금속 손잡이 하나까지도 마감이 안 들어간 게 없죠. 원석보다 가공되었을 때 제맛인 다이아몬드처럼. (웃음) 이런 부분은 날것의 물성을 그대로 두고 보여주는 최근 국내 트렌드와 조금 다른 면이기도 해요. 이런 미감을 시도해보고는 싶은데 결국 완성하면 다시 이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이 사진 속에만 일곱 가지 소재가 담겨 있다. 거울, 나무, 페인트, 금, 돌... © Studio SIM
이런 마감이 왜 흔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우선 저는 재료를 많이 쓰는 걸 좋아해요. 정말 많은 걸 썼는데 하나같이 보이는 걸 좋아하죠. 정말 맥시멀리스트인데, 막상 결과물을 보면 화려하진 않아요. 다만 공간을 볼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죠. 이렇게 하면 공간이 덜 질리고, 오래 가게 되거든요.
디자이너의 디테일은 언제 시작된 걸까요. 학업을 할 때, 그리고 직장 다니면서도 계속 그렇게 배웠어요. 눈에 띌지 안 띌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끗 차이에 집착합니다. 정말 신경을 많이 쓰시거든요. 여성들이 반지를 낀 상태의 손으로 무엇을 잡았을 때 철과 철이 닿는 순간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부터, 다이아몬드는 몇 온즈로 하고 루비는 뭘로 하고... 그렇게 시작을 했으니까요.
오랜 기간 켜켜이 쌓여 온 디자이너의 몰스킨 노트. © designpress
공간에도 손이 많이 가지만 제안서에도 디지털 렌더링 이미지 대신 손 그림이 들어가죠. 디지털 렌더링이 없는 제안서는 요즘 보기 드물잖아요. 어떤 의도가 있나요? 손 그림이 빨라서요. 컴퓨터가 쓰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면 좋잖아요. 디지털 렌더링 하나를 만들 때 손 그림 두 장을 그리는 거예요. (웃음) 물론 아주 급한 경우는 디지털 렌더링으로 돌입할 때도 있지만요.
경복궁을 지척에 둔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브랜드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기로 했다. 본래 건물의 외관을 모던하게 정리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 Studio SIM
'활명'은 '까스활명수'로 이름난 동화약품의 코스메틱 브랜드. 종킴은 왕의 신하들이 명령을 대기하던 건춘문 옆의 건물을 선정하는 과정부터 참여해 공간 디자인, 유니폼 디자인까지 브랜딩 전반을 협업했다. 브랜드의 역사에 주목하는 디자이너에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로 기네스북에 오른 '부채표'와 임시정부를 지원했던 동화약품의 이야기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공간은 건춘문의 풍경을 들이고 부채의 모티프를 은유적으로 활용해 디자인되었다.
얼마 전 ‘활명' 작업이 *DFA 어워드 동상을 받았어요. 동화약품의 코스메틱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죠? 동화약품은 정말 기분 좋은 회사잖아요. 까스활명수 판매 수익금으로 임시정부를 도왔고, 부채표는 가장 오래된 브랜드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브랜드 스토리에 워낙 관심이 많기도 해서 더 즐겁게 했던 작업이었어요. *Design For Asia Awards. 홍콩디자인센터가 주최하는 디자인상으로 세계를 향한 아시아적 관점을 보여주는 모범 디자인을 선정해 디자인 리더십을 기념한다.
사무실에 놓인 DFA 트로피. © designpress
공간의 시퀀스를 담은 콘셉트 드로잉과 자재 팔레트.
역시 브랜드 이야기를 먼저 하시네요. 공간 구상을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가 보여요. 공간 디자인에 관한 코멘터리라면요. ‘한국적’이란 것을 풀어낸 방식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식당’처럼 되고, 반대로 일식처럼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한국적인 의미를 담은 프로젝트를 할 때는 항상 두 마리 토끼를 잡자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이 봤을 때 “신선하다" 싶은데 외국인이 보면 “한국적이다" 할 수 있는. ‘활명’은 사이트 선정부터 함께 했어요. 부동산을 같이 보러 다니다 ‘건춘문' 옆의 건물이 나온 거예요. 옛날 경복궁에 들어가는 왕들을 모시는 신하들이 명령을 대기하던 장소거든요. 활명의 서브 타이틀인 ‘로얄 레시피'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요. 외관은 본래 건물을 모던하게 정리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어요. 경복궁을 지척에 둔 역사적인 지역에 브랜드의 목소리를 세게 내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부에선 한국적인 ‘차경'의 방식을 써서 창 밖에 있는 건춘문의 풍경을 안으로 들였어요. 내부의 조형적 디테일은 무척 절제하고요. 살펴 보면 선 자체도 무척 동양적이에요. 한국적이죠. 하지만 마감은 수입 은박 마감재를 써서 서양식으로 했어요. 자재를 통해 디테일을 무척 많이 잡았지만 겉으로 도드라진 것이 없어 과한 느낌이 없지요.
까스활명수를 만들기 위해 물을 길어 올리던 우물을 은유했다. © Studio SIM
부채표의 부채살을 형상화한 나선 계단 디자인. © Studio SIM
계단 하나하나의 윤곽에 부채살을 모티프로 한 디테일을 줬다. © Studio SIM
설명을 들으니 공간의 결들이 보여요.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수고에 비해 눈에 너무 안 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많은 요소들이 하나처럼 하모니를 이루는 걸 좋아해요. 말씀하신대로 처음에는 잘 안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디테일은 보면 볼수록 하나씩 눈에 들어오거든요. 저번 주에 왔을 때는 몰랐는데 오늘 보니 이런 게 있었구나, 하는 식으로요. 뭐 하나 튀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유니폼 디자인은 초기 의뢰 내용에 없었지만 공간 작업 중 제안을 통해 성사됐다. 안송, 윤대우 디자이너와 협업했다. © Studio SIM
공간이 아니라 한땀 한땀 만들어내는 명품 가방의 제작 과정을 듣는 것 같은데요. 한편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유니폼도 제안했죠? 설계 하나만 하는 것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해요. 마치 인공위성처럼 꾸준히 함께 하는 협업자들과 매번 다른 팀을 꾸리죠. 유니폼은 안솔, 윤대우 디자이너와 함께 했고 이외에 신기오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음악가, 그래픽 팀, 식기 팀… 자주 협업하는 팀들이 꽤 돼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함께 만든 결과물이 좋은 수상으로 이어졌네요. 무척 감사하죠. 그런데 공간을 하면서 상을 받는 것이 가장 기쁜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럼 가장 기쁜 건 뭐예요. 디자이너만의 기준이 있나요? 잘 됐다, 잘 안 됐다를 가르는. 있죠. 작업을 마치고 연락을 계속 하느냐. (웃음)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사이의 케미라고 해야 할까요. 새로운 클라이언트도 당연히 환영하지만, 같은 클라이언트와 계속 또 새로운 작업을 하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블랙핑크 제니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젊고 당당한 서울 여자 '서울리스타'를 향한 브랜드 메시지를 담은 공간을 의뢰했다. 직선으로 밀어붙인 디테일과 화려한 라이팅, 반영을 유도하는 소재로 도시의 네온사인을 연상하게 했다. 한편 벽면의 렌티큘러 소재는 조명을 곡선으로 반사하며 서울의 등고선을 표현한다. 곡선과 따뜻한 색을 필두로 하는 종킴의 디자인 문법을 벗어난 미감. 역시 단발성 작업이 아닌 스토어 아이덴티티 디자인으로, 이후 헤라 스토어에 변주되어 적용될 예정이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에요. 현재까지 종킴의 공간 문법은 무척 명확해요. 마치 종킴이란 브랜드가 있는 것 같죠. 저희 스타일을 좋아해주시고 먼저 찾아주시는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하면 아무래도 저희 스타일이 명확한 결과물이 나와요. 그런 과정을 거친 공간들을 얼핏 보시고는 아쉽다는 말씀을 주시는 경우도 있었고요. 하지만 정말 확실한 것 하나는, 모든 공간이 충분한 논의와 과정 끝에 그 클라이언트만을 위해 완성된 것이란 사실이에요. “이것밖에 할 줄 모른다"란 일각의 평가를 알고 있어요. 스스로에게도 던지죠. 무척이나 많이 생각하고 또 고민하고 있어요. 이미 인지하시고 먼저 제안 주시는 프로젝트와 달리 저희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제안할 수 있는 비딩(입찰 경쟁) 제안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지금 문 밖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저 분들과 함께 말이죠. 다음 편에선 종킴의 멤버들과 조금 다른 이야길 해 볼게요. 기획 | 디자인프레스 편집부 글 | 디자인프레스 유미진 기자 (designpress2016@naver.com) 사진 | 하시시박
디자인프레스는 매주 1명의 크리에이터를 선정하여 '네이버 디자인 - Oh! 크리에이터'를 연재합니다. 동시대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에게 듣는 다양한 디자인 스토리! 네이버 디자인 판에서 매일 만나보세요 :-D Oh! 크리에이터 – 공간 디자이너 종킴 01. 종킴의 공간은 화제가 된다 ▶02. 명품 가방 같은 공간의 비밀 03. 인사이드 종킴디자인스튜디오 04. 다섯 가지 브랜드로 본 종킴 05. 그가 꼭 맡고 싶어 하는 의외의 브랜드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