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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크리에이터] #198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 vol.3 영화 ‘기생충’ 속 그 가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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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 8:00
‘Oh! 크리에이터’는 네이버 디자인이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 세 번째 이야기 공간의 디테일을 극대화한 숨은 장치
박 사장네 거실 테이블이 자리한 그의 전시실. 국내외에서 이를 사겠다고 연락하는 이들도 많지만 ‘빈자리가 클 것 같아’ 아직 작가가 갖고 있다고. © designpress
박종선 시류와 타협하지 않고 본인만의 철학으로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 단순한 조형미,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균형 잡힌 비례. 그의 가구는 뽐내지 않는다. 간결하고 날렵하다. 최소한의 구조와 장식으로 기능을 극대화한다. 조선 목가구와 셰이커 퍼니처에 담긴 절제의 미덕에서 배운 결과물이다. 박종선 퍼니처 디자인 스튜디오와 스페이스원으로 작업을 양분화하여 하이엔드 가구와 사용자 맞춤 가구를 선보이고 있으며, 시간을 뛰어넘는 실용적 쓰임새와 인간적인 스케일에 그 가치를 둔다. 원주시 귀래면에 자리한 작업실에 10년 넘게 머무르며 무언가 풀리지 않을 땐 근처 폐사지에서 실마리를 찾곤 한다. bahkjongsundesign.com
ⓒ 2019 CJ ENM CORPORATION, BARUNSON E&A
지난해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며 영화 속 공간들이 다시금 주목받았다. 특히 ‘건축가 남궁현자 선생’이 설계했다는 대저택은 그간 스크린에서 보았던 재벌가 주택에서 벗어난 세련됨으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마치 집 전체가 하나의 작품 같은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 100% 세트 제작으로 ‘봉테일’이라는 별칭에 힘을 실었던 공간. 박종선 디자이너는 박 사장 집 인테리어의 간결한 여백과 다양한 층위를 돋보이게 한 숨은 주역이다. 주방과 거실 가구, 조명을 비롯해 기우와 다혜가 과외 수업을 하던 책상, 다혜의 일기장을 숨긴 나무 가방 등 그의 작업 20여 점이 스토리의 완결성을 끌어올리는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영화 ‘기생충’ 가구 작업은 어떠한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3년 전, 2005년부터 2017년까지의 작업을 정리하며 도록으로 엮었어요. 1,000부를 발간했고 300부 정도를 주변에 보냈죠. 그게 흘러 흘러서 봉준호 감독에게 전달이 됐나 봐요. 이후 이하준 미술감독과도 몇 차례 만나며 구체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게 됐지요. 봉준호 감독이 특별히 강조했던 요구사항이 있었나요? 조건은 심플했어요. “가로세로 2m 40cm의 로우 테이블이 필요하다. 그 안에 세 명이 숨을 것이고,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처음 만났을 당시 그의 머릿속엔 이미 정방형의 테이블이 그려져 있었어요. 다리가 네 개 달린. 하지만 그 스케치를 따라서 제작만 하는 것이라면 저로서는 영화 작업에 참여하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비슷한 이유로 거절도 했고요. 대부분 저의 기존 작업이 영화에 그대로 쓰일 계획이었거든요. 적어도 로우 테이블에는 나를 담아야 즐거운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다행히 논의가 잘 되어 모두가 ‘해피’한 방향으로 작업할 수 있었어요. 그만큼 고민도 많이 했던 디자인이에요. 신작이 아닌 작업을 내놓는 것에 특히 주의하시는 듯해요. 그만큼 꾸준히 작업도 하시고요. 프로젝트마다 기획자들의 의도와 맥락이 있을 테니까요. 그 과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죠. 기존 작업을 계속해서 선보이는 게 습관이 될까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결벽이 좀 있는 편입니다. 물론 예전만큼은 작업을 많이 못 하지만, 게으름에 대한 경계를 놓지 않으려 합니다. 좀 우스운 비유이기는 하지만 추수를 하려면 심어야 하잖아요? 그 마음과 비슷해요. 내 직업이니까.
부엌의 다이닝 테이블&체어와 거실의 메인 테이블, 그곳에 놓인 조명, 기택의 아들 기우와 박 사장 딸 다혜가 과외 수업할 때 쓰던 테이블은 모두 그의 작품. ⓒ 2019 CJ ENM CORPORATION, BARUNSON E&A
두 계층의 복잡한 간극을 강렬한 미장센으로 전달했던 거실 테이블 신. 상판 5개가 계단처럼 조립되며 그 사이로 생긴 ‘틈’이 영화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보는 각도에 따라 숨은 기택네 가족이 보이기도, 감춰지기도 한다. ⓒ 2019 CJ ENM CORPORATION, BARUNSON E&A
영화 속 로우 테이블은 두 계층의 수직 구조를 대변하는 핵심 가구로 화제가 됐어요. 어떤 메시지를 담은 건가요? 제가 자주 찾는 작업실 근처 거돈사지에는 대웅전 기단과 석탑만 남아있어요. 천 년 전 건물들이 머물던 자리는 추상화의 면 분할처럼 미니멀하게 남아 층층이 산의 능선을 따라 오르죠. 로우 테이블의 계단은 폐사지의 공간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이에요. 영화 속 테이블은 제단이자 계단이며 계급과 뫼비우스의 띠를 은유적으로 표현해요. 이러한 의미뿐 아니라 누군가 엿볼 수 있는 집의 구조도 고려했어요. 테이블의 층과 층 사이로 ‘틈’이 존재하잖아요. ‘숨는다’라는 행위에서 착안한 형태에요. 누가 봐도 숨을 것 같거나 찾기 힘든 공간은 긴장감이 없을 테니까요. 테이블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거실 바닥이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해요. 무언가 떠오르지 않을 때 폐사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그 밖에도 작업에 영감을 주는 것들이 있나요? 주로 책을 통해 공부하는데, 꽤 편협한 독서에요. 소설보다는 실용서나 인문서, 그중에서도 노자와 르코르뷔지에 책을 많이 읽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만화나 판타지를 좋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참 건조하죠? (웃음) 가끔은 그런 천진함과 아이 같은 시선이 부럽기도 해요. 한 번쯤 얼토당토않은 발상이 떠올라도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내가 갖지 않은 기질에 대한 욕심 같은 것이겠죠.
Trans-15 Nov-01, 02, 03, 2015 photo by Park Myung-rae
작가의 사무실 겸 전시실. 벽면에는 이전 세대의 유명 목수가 쓰던 공구 세트를 수집하여 정리해두었다. © designpress
많은 매체에서 박종선을 ‘아트퍼니처 작가’로 소개하지만 정작 작가님께서는 이를 경계하시는 걸 보고 살짝 의아하기도 했어요. 그 이전에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하거든요. 바라보는 관점마다 다를 테니까요. 저는 내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무언가를 봤을 때 예술이라고 느껴요. 어느 경지를 뛰어넘은 아름답고 숙련된 행위들. 김연아의 스케이팅도, 손흥민의 축구도, 가슴 뭉클한 무언가가 있을 때 예술이 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가구를 보고 울컥할 수 있다면 그것도 물론 예술이겠죠. 하지만 그게 아닌데도 가구를 예술이라는 범주에 두고 남용하는 행위는 지양하는 편입니다. 스스로 경계하며 담금질하는 삶의 태도가 작업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전시실에 있는 첫 작품 역시 초심을 돌아보기 위해 가져다 놓으셨다고. 맞습니다. 10여 년 전 전시에서 저 스피커를 선보이고 서미갤러리에 발탁이 됐어요. 갤러리로부터 지원을 받으니 좋은 재료로 스피커 시리즈를 계속 만들 수 있었죠. 신나서 하다 보니 볼륨도 꽤 커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문득 가죽 연결 부위가 끊어졌다며 수리 요청이 들어온 첫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됐어요. 그간 미처 느끼지 못했던 변화를 눈으로 보게 된 것이죠. 그래서 신작을 드리고 첫 작품은 제가 다시 가져왔어요. 10배가량의 비용을 더 지불했던 셈이에요. 초심 확인용입니다. 박종선 작가가 지향하는 가구는 어떠한 디자인인가요? 조형적으로 경제적이고 보편적인 디자인. 그것이 결국 시간이 흘러도 오래가는 디자인 같습니다.
Trans-Sep09 L01, Zelkova, Brass, 80×80×156H㎝, 2009 photo by Park Myung-rae
빛과 소리가 조응하는 박종선 작가의 작업. 오디오 첫 작품은 ‘초심 확인용’으로 여전히 그의 전시실 한편에 놓여 있다. Trans-1001, Zelkova, Audio, 96×96×174.5×㎝, 2009 photo by Park Myung-rae
기획 | 디자인프레스 편집부 글 | 디자인프레스 정인호 기자 (designpress2016@naver.com) 사진 | 이은숙(eeeun studio) *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사진을 무단 복제 및 사용할 경우 법적인 책임이 생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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