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우아한 늙음, 44년생 산양 양조장 리노베이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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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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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로컬 크리에이터가 모이는 이곳, 문경


* 1편에서 산양 양조장 리노베이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2020. STUDIO HEECH.

© 2020. STUDIO HEECH.

건물의 수명은 얼마일까? 누가 부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건물은 100년까지 거뜬히 버틴다. 그러나 한국에는 100년 이상 된 건물이 많지 않다. 땅값 상승과 비례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으니 오래 살게끔 내버려 두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신축이 유리하지만 최근에는 건물을 고쳐 용도를 바꾸는 리노베이션 사례가 많다. 시간의 축적을 층층이 드러내는 건물에서 일종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리노베이션을 하는 것은 좋은데, 탁월한 사례를 찾기란 힘들다. 그런 면에서 문경시 산양면에 위치한 ‘산양 양조장’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리노베이션을 거쳐 새롭게 문을 연 양조장은 2020년 한국건축가협회상과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수상을 함께 받았다.

로컬 문화를 실험하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 ‘달빛 탐사대’를 진행했다.

잉글리시 헤리티지는 자율성을 주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쓸데없는 참견 없이 핵심을 콕 짚어주니 좋다.

100년 전후의 건물에서 정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꼭 남겨야 하는 것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먼지를 훌훌 털어 보이지 않았던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다시 그 건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 산양 양조장에서 추구했던 핵심도 그와 같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대부분 그렇지만, 자국 건축물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범위도 넓은 것이 근대뿐 아니라 현대 건축물까지 포함한다. 한국으로 치면, 1960년대 이후 김중업, 김수근 건축가 이후의 건축물들이다.

그렇다. 영국에는 ‘20세기 소사이어티 The Twentieth Century Society’(C20 Society)라는 곳도 있는데 이곳은 시민 단체다. 건축유산 보존을 목표로 하는데, 20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에 한해 목소리를 높인다. 예를 들어 그들이 판단하기에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건축물이 훼손될 위험에 처해있다고 하면 사적 재산이라도 개입을 한다. 국민 청원도 하고, 자문단을 보내 협상안을 찾는 것이다.

20세기 소사이어티 웹사이트 메인 화면. 붕괴 위험에 빠진 20세기 건축물의 상황을 알리고 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교체할 것인가!

아까 말했듯 원형 복원이 아닌 경우, 무엇을 남기고 교체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관공서가 발주한 근대 건물 리노베이션이 실패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결국 깨끗하게 철거해 복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역에 기존 건물의 상태를 평가하고 목구조를 다루는 구조설계사무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수십 번을 오가며 6개월간 설계에 공을 들였다. 설계 전에는 이 건물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지붕 아래 옛 트러스(지붕을 받치는 삼각형의 구조물)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주거 공간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 2020. STUDIO HEECH.

건축물을 뒤덮은 시간을 조심스레 핀셋으로 발라내 집의 윤곽을 찾아낸 느낌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었는가?

우선, 남측의 외벽은 기존 목조 건축 양식으로 복원했고 심각하게 훼손되어 붕괴 위험이 있던 북측 입면은 해체하여 새롭게 세웠다. 오랜 세월 증축을 반복해서 원형 파악을 할 수 없는 서측의 여러 부속 공간들은 철거해서 주방과 기능실로 만들었고 새롭게 슬라이딩 도어를 넣어 내부와 외부 공간을 연결했다. 가느다란 일본식 목구조 기능을 남기려 노력했다. 남길 수 있는 기둥은 두고, 썩은 기둥은 하부를 잘라내고 T자 금속 디테일을 이용해 새로운 재료와 연결해 고정했다.

© 2020. STUDIO HEECH.

요즘 재생 건축에서 많이 보이는 형태이지만, 실내 천정에 노출된 트러스 구조도 이 양조장에서 시선을 끄는 요소다.

트러스는 하중을 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크고 작은 세모꼴의 반복은 시각적으로 명료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북측에 위치한 트러스의 경우는 해체한 후 인천의 공장에서 보수 과정을 거쳐 현장에 다시 설치했다.

© 2020. STUDIO HEECH.

© 2020. STUDIO HEECH.

보통 목조건축은 현장에서 목수가 보수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돈을 절약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반 구조재보다 강도가 높은 '글루램 Gluelam '이라는 집성재가 유명한 곳이 인천에 위치한 ‘경민산업’이다. 공장에서 옮겨와 조립하는 데에 하루 반밖에 안 걸렸다. 당시 양조장을 목조로 지었던 것은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재료라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런 재료가 무엇일까. 그래서 글루램을 사용했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재단하는 것 또한 별것 아니지만 현재의 기법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새롭게 지어야 하는 기능실과 기계실은 시멘트 벽돌과 철골을 사용했다. 가장 저렴하고 견고하게 지을 수 있는 이 시대의 기술과 재료이니까.

건물을 해체해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옛 자재를 재사용했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자잘하고 세심한 작업들 덕분에 특별한 아우라를 갖게 된 것 같다.

발효실의 온도 유지를 위해 벽 천정까지 둘러쳐졌던 90cm 두께의 왕겨보온층이 있었다. 해체할 때 고이 수거해서 이 단열층을 강화유리 벽체에 넣었다. 그 방이 원래 술 숙성을 위한 사입실이었음을 보여주는 조그만 장치다. 해체할 때 나온 오동나무 발효 상자는 전시 패널로 활용했고, 벽체를 해체할 때 나온 골재는 새로운 벽체를 미장할 때 재사용했다. 재료를 이어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비슷한 모양을 내는 다른 공법에 비해 비용도 덜 든다.(웃음)

© 2020. STUDIO HEECH.

젊은 로컬 크리에이터가 모이는 곳

산양 양조장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청년 운영주체인 리플레이스가 산양정행소로 운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스튜디오 히치는 베이커리 카페와 청년창업 지원센터 용도의 내부 가구들을 섬세하게 디자인해 설치했고 옛 양조장의 사진, 드로잉, 사료들을 모아 전시 공간을 기획했다.

© 2020. STUDIO HEECH.

스튜디오 히치는 베이커리 카페와 청년창업 지원센터 용도의 내부 가구들을 디자인했다. © 2020. STUDIO HEECH.

현재 산양 양조장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시작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다양한 목소리와 의견이 반영되었다. 문경 시청, 건축가, 주민, 공모를 통해 결정된 청년 운영단체까지.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귀농한 청년 기업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와있고, 지역에 정착한 청년들이 모여 로컬 문화를 실험하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 ‘달빛탐사대’도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사실 코로나 이후의 건축이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해 아쉽다. 산양 양조장은 문경시민이 주인인 공공건축이다. 1980년대에 성행했던 양조장의 활달했던 모습처럼 청년들이 북적이는 공간,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 2020. STUDIO HEECH.

© 2020. STUDIO HEECH.


Project Info

프로젝트명 | 산양 양조장 Sanyang Brewery

건축주 | 문경 시청

설계 | 스튜디오 히치(박희찬)

시공 | 한맥 종합건설

구조 엔지니어 | 하모니 구조

기계/전기/통신 설비 엔지니어 | 유성 기술단

전시 설계 및 제작 | 스튜디오 히치

가구 설계 | 스튜디오 히치

글 | 디자인프레스 편집장 김만나

(designpress2016@naver.com)

사진 제공 | 스튜디오 히치 studiohe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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