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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크리에이터] #207 건축가 박창현 vol.2 품위 있는 다가구, 품격 있는 다세대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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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31. 17:30
‘Oh! 크리에이터’는 네이버 디자인이 동시대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박창현의 두 번째 이야기 원룸이나 빌라에 지친 영혼을 거두다
에이라운드건축사사무소 본인의 자리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리드미컬한 부산 사투리를 인터뷰에 담을 수 없어 아쉽다. 내용은 진지하지만, 전달하는 톤 앤 매너는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 designpress
박창현 학부에서 가구를 전공하고 경기대 건축 전문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와 박사를 수료했다. 2006년 건축사사무소 SAAI의 공동 대표를 한 뒤, 2013년부터 에이라운드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주택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웃과 가족과의 관계 형성에서 건축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물리적인 제안으로 이어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다가구와 다세대주택을 통해 공동 주택에서 공용 공간에 대한 실험을 시도했던 박창현 건축가. 이전에 건축주를 설득하며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주거 양식에 대한 제안을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보고 싶었다. 그는 토지 매입, 건축 설계 및 감리, 입주자 선정, 커뮤니티 프로그램 기획 등 총체적인 부동산 개발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박창현 건축가는 아파트를 사는 대신, 주거 실험을 위한 장을 마련했다. 바로 써드플레이스다. 현재 써드플레이스는 홍은1, 2가 완성된 상태. 올해 홍은3, 4가 오픈할 예정이고, 홍은 5, 6은 계약을 앞두고 있다. 품질 낮은 원룸이나 빌라에 지친 영혼을 거두기 위한, 그의 따뜻한 공동체 실험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순항 중이다. 품위 있는 원룸, 품격 있는 빌라를 원한다면 그의 행보를 주목해도 좋다.
써드플레이스 홍은1의 공용 공간 모습. 내부도 외부도 아닌 중간 지대 같은 공용 공간이 주는 감성은 사뭇 다르다. © 김주영
유일주택은 써드플레이스의 시초가 되었어요. 써드플레이스에는 공동 주택이 아니라 공동체 주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던데, 두 가지는 어떻게 다른가요? 공동 주택은 다세대, 연립, 아파트 등 여러 세대가 모인 주거 방식을 통칭하는 단어입니다. 공동체 주택은 서울시가 인증하는 사업이에요. 고독사, 층간 소음 같은 현재 주거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를 추후에 비용을 들여 해결하기보다 선제적으로 이웃 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초기 지원으로 미래의 문제를 완화하자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웃 간의 소통 확대와 더불어 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공동체 주택이라고 칭하고 있어요. 공동체 주택에는 전체 가구를 연결하는 공간 프로그램이 있어야 해요. 공동육아, 한 달에 한 번 함께 식사하기, 텃밭 꾸미기 같은 거죠.
써드플레이스 홍은 2 입구 모습. 둥글게 튀어나온 외부 공용 공간 모습이 흥미롭다. © 김주영
써드플레이스 홍은2는 한 달에 한 번 입주자가 모두 모여 함께 식사하는 일월일식이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가 진행되는 공용 라운지. 이 공간 한쪽에는 건조기가 있는데, 이 주택에서 제일 바쁜 존재라고. 인터뷰하던 날에도 건조기는 계속 돌고 있었다. © 김주영
건축주의 의뢰가 아닌,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는 신개념 공동체 주택 브랜드 써드플레이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매년 다가구와 다세대주택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계획만 하고 지어지지 못한 채 실험에서 멈춘 작업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재미있게 한 작업이 현재 써드플레이스 홍은1 대지였어요. 사업이 무산돼 설계안을 버려야 하는데, 뭔가 아쉬웠어요. 마침 새로운 공간을 찾던 친구에게 무료로 설계해 주겠다고 꼬드겨 써드플레이스 홍은1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설계는 다시 해야 했죠. 이전부터 쌓아온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땅을 구입하고 설계를 하고 공동체 주택 인증과 대출을 받고 시공을 하고 입주자 선정을 하고 이후 프로그램과 건물에 대한 관리까지 총체적인 부동산 개발을 하게 되었어요. 써드플레이스 홍은1과 2는 150m 정도 거리밖에 안 되어요. 앞으로 반경 400m 안에 써드플레이스 건물을 몇 개 더 지어 연결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써드플레이스 홍은2에는 와인바 어라우즈가 입점해 있다. © 이명수
써드플레이스는 1층 상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주거 문화는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택 양이 부족해지자 1984년 다세대주택 도입, 1990년 다가구주택이 허용되면서 지금 같은 형태로 나아갔습니다. 1층을 임대하고 2층에 주인이 살면서 외부 계단이 생겼어요. 그렇게 단독주택인데 여러 층을 나눠 사용할 수 있는 다가구가 도입되었습니다. 1990년 다세대주택 면적이 완화될 때는 주차에 대한 개념이 강화되었어요.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1층이 모두 필로티 구조가 되었어요. 주차장과 현관만 있는 1층, 주거가 들어선 2~5층, 이 구조가 보편화된 거죠. 도로에서 보는 풍경이 이제 주차장밖에 없는 거예요. 단독주택 단지라고 하면 1층에 미용실, 슈퍼, 세탁소 같은 동네 사람이 운영하는 동네 상점을 이용해야 이웃 간의 연결이 가능합니다. 필로티가 생기니 1층 상가가 사라지고 대신 자동차를 타고 가는 대형 매장이 생겼어요. 1층에 근린생활시설이 없다 보니 동네 사람을 연결해 주는 장소도 기회도 없는 거죠. 1층 상가가 동네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공동체 주택 인증을 받으면 주차 1대를 완화 받을 수 있어요. 써드플레이스에는 근린생활시설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건물에 서로 다른 업종과 프로그램이 동시에 포진하게 되면 동네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써드플레이스 상가를 통해 동네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허브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써드플레이스는 현재 홍은 1,2가 있고, 올해 3, 4도 오픈할 계획입니다. 왜 홍은동이었나요? 사실 이전에 이런 동네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좌초된 써드플레이스 홍은1 이전 작업을 통해 이 동네를 알게 되었습니다. 써드플레이스 사업을 좀 더 확장하기 위해 나름 동네 조사를 했어요. 합정동, 망원동, 성산동, 불광동 등과 달리 1960년대 홍은동은 토지 구획 정리가 되지 않아 무허가 건물이 난립한 동네였어요. 1971년 서울시는 홍은동의 도시개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대지 경계에 선을 긋고 도로를 만들어 작은 동네를 계획한, 반듯한 형태의 홍남지구가 생겼습니다. 홍은동과 남가좌동을 아우르는 지구라는 뜻이에요. 토지 구획 이후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이 동네에 집이 지어졌습니다. 불란서 주택이라 불리는 2층 양옥집이 일렬로 늘어선 단독주택 단지가 형성된 거죠. 합정동과 성산동이 100평 내외 대지라면, 이 동네는 50평 내외 작은 필지가 많아요. 이 때문에 도로 폭이 메인은 6m, 이면은 4m로 정도입니다. 차 두 대가 교행하기 어렵다 보니 일방통행이 되었죠. 1990년대 대대적으로 ‘담장 허물기’라는 구청 지원 사업이 실행되면서 담장이 많이 사라졌어요. 개인의 마당과 정원이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공용화된 동네에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도로 폭이 좁으니 집과 집 사이의 거리도 넓지 않아요. 지금 홍은동의 스케일감은 이렇게 탄생했죠. 홍은동에는 유독 감나무도 많고요. 이런 전반적인 동네 분위기를 써드플레이스에 담고자 해요.
유일주택에 있던 오렌지 T자형 표식과 써드플레이스 홍은2에 있는 돌. ‘너와 나만 아는 암호’ 같은 이런 장치가 공간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좀 더 미묘하고 풍성하게 한다고 박창현 소장은 생각한다. © 김주영
유일주택에는 공간 곳곳에 오렌지색 T자형 표식이 있어요. 써드플레이스 홍은2에는 돌이 놓여 있고요. 이것에는 어떤 사연이 있나요? 이런 장치는 써드플레이스 홍은2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난데없어 보이는 돌덩이들이 공간 곳곳에 놓여 있는데, 사실 이 돌은 모두 이전 건물주의 물건입니다. 써드플레이스 홍은2는 두 필지를 합쳐서 지은 건물인데, 그중 한 집에 수석을 수집하는 분이 계셨어요. 이사하실 때 화단 경계로 사용한 수석을 두고 가셨는데,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이전 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물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층마다 하나씩 두었습니다. 유일주택에는 주황색 페인트로 T자 표식을 했죠. 설계를 함께한 사람들이 마지막에 공간을 살펴보고 세대마다 특징이 되거나 중요한 위치에 T자를 직접 그렸어요. 기능은 없어요. 나중에 어떤 역할을 할지 지켜보자는 심산이었죠. T자 표식은 옮길 수 없지만 돌은 거주자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이 돌이 옮겨지는 순간 공간의 분위기도 바뀔 수 있을지 몰라요. 바둑에서 돌 하나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판세가 확 달라져요. 이를 의식해 돌을 또 하나 두면 두 개의 바둑 알 사이에 관계성이 생깁니다. 판 전체에 힘이 생기죠. 돌이 없을 때, 하나일 때, 둘일 때 완전 느낌이 달라집니다. 공용 공간에서 이 돌들이 어떤 움직임이나 긴장감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거주자가 돌을 의식하게 되면 돌에 이야기가 스미면서 강력한 기물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써드플레이스 홍은2의 외부 공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다가구와 다세대주택의 문법과는 전혀 다르다. 골목에서 집으로 가는 계단과 복도에 나무, 볕, 바람 등을 즐길 수 있는 짧은 여정을 만들었다. © 이명수
공용 공간이 많은 공동 주택에서는 이웃과의 관계가 관건입니다. 이웃에 대한 소장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우리가 말하는 결과물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이웃에 대한 개념이 예전에 비해 각박해진 게 사실이에요. 옆집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심리적 영역이 전혀 없이 프라이버시만 우선시하고 있어요. 그러면 문제나 사건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할 능력 자체가 없어지게 되죠. 그러다 보니 참을 수 없고, 참을 필요도 없는 이웃이 되는 겁니다. 써드플레이스는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 안부와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이웃을 추구합니다. 그렇다고 프라이버시가 없느냐, 그렇지도 않아요. 세대마다 현관 문의 방향과 위치가 모두 다릅니다. 공용 공간은 분리되어 사용하고, 온라인 네트워크는 유지하면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심리적 관계가 형성되었어요. 이런 느슨한 관계성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주거의 품질과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생각해요. 건물 안에서 이웃이라는 관계가 잘 작동하고 있는 거죠. 익숙하지 않아서 현재는 제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런 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공동체 주택의 큰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이 인터뷰를 본 사람들 중에 입주 방식이 궁금한 사람도 많을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서울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서울시민이어야 해요. 이외에는 서울 공동체 주택과 써드플레이스 홈페이지에서 입주자 모집 공고가 날 때 지원하시면 됩니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와 결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어요. 현재 써드플레이스 홍은2 입주자는 모두 여성분들이에요. 우리가 모집 공고를 냈을 때 응모해 주신 분들 중 남성분이 딱 1분이었어요. 우리는 그분이 꼭 입주했으면 했는데, 그냥 궁금해서 신청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박창현 소장님의 이웃에 대한 관심이 지역과 동네로 확장하고 있어요.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구미의 삼일문고일 듯해요. 구미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한 클라이언트가 지역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어요. 당시 구미에 오래된 서점이 문을 닫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출판이나 서점과 관련된 분이 아닙니다. 금오시장이라는 상가 건물이 시간이 지나 노후화되고 슬럼화되면서 동네 전체가 어두운 기운이 가득했어요. 이 시장 바로 앞에 있는 건물에 삼일문고가 있어요. 클라이언트는 이렇게 칙칙한 동네에 책을 보러 누가 올지 고민했어요. 그래도 이 동네를 위한 문화 활동을 하자는 마음으로 진행했지요. 삼일문고는 클라이언트의 헌신이 중심인 프로젝트에요. 이곳에는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작은 전시실 두 개를 구성해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책을 큐레이션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시실 하나는 구미 출신 작가나 사람을 재조명하고 있고요. 지역적 한계로 구미에서는 예술과 문화 관련 행사가 많지 않은데, 지역 서점이 이런 역할을 하다 보니 구미 안에서 큰 반응이 일고 있습니다.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슬럼화된 동네가 변하고 있어요. 근처에 오래된 호텔이 리뉴얼을 단행했고, 금오시장도 시의 지원 아래 정비를 마쳤습니다. 그 단초가 된 게 삼일문고가 아닐까 싶어요.
구미의 지역 서점이자 중형 서점으로 자리 잡은 삼일문고. 서점 하나가 지역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체감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라고. © 진효숙
써드플레이스는 현재 홍은3과 홍은4도 준비 중입니다. 살짝 ‘스포’해주세요. 올해 안에 선보일 계획입니다. 써드플레이스 홍은3과 홍은4는 이전 써드플레이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훨씬 더 실험적인 방향으로 해보려고 해요. 공용 공간을 그 층 거주자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거주자가 사용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층마다 공용공간의 성격 자체가 다를 예정이에요. 영화 감상, 운동 등 액티비티가 있는 공간으로 프로그램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이런 활동이 집과 집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지 않을까 싶어요. 프로그램이나 기획의 바탕이 되는 물리적인 공간 역할에 충실한 작업을 해왔는데, 의도, 기획, 생각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대로 공간이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의 개입을 얼마큼 할지 고민 중입니다. 그 사이 써드플레이스 홍은5, 6도 계약을 앞두고 계시다고요. 이러다 박창현 소장님이 설계한 건물 앞을 지나지 않고는 홍은동을 통과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어요. 하하. 주거에 대한 다양성을 실험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써드플레이스가 오픈할 때도 관심 가져 주세요. * 3편에서 이어집니다. 기획 | 디자인프레스 편집부 글 | 디자인프레스 객원 기자 임나리 인물 사진 | 이명수(아프로_이 스튜디오) 사진 제공 | 에이라운드건축사사무소
디자인프레스는 매주 1명의 크리에이터를 선정하여 ‘네이버 디자인 - Oh! 크리에이터’를 연재합니다. 동시대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에게 듣는 다양한 디자인 스토리! 네이버 디자인 판에서 매일 만나보세요. Oh! 크리에이터 - 건축가 박창현 01. 이웃 간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건축가 ▶ 02. 품위 있는 다가구, 품격 있는 다세대 03. 어떤 집에 살고 싶나요? 04. 건축가를 인터뷰하는 건축가 05. 건축가 박창현에게 영향을 준 스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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