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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본기’를 몸으로 익히는 공간, 알로이시오기지1968 (2)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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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3. 21:50
비움의 방, 대청마루 감각이 주인공이 되는 공간
멀리 부산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침묵의 방. 따뜻한 온돌방에서 맨발로 뒹굴거리며 자연과 여유를 만끽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기지 구축의 첫 단추였다. ©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기지’는 1968년 개교하여 알로이시오 중·고등학교로 쓰였던 건물이다. 소 알로이시오Aloysius Schwartz 신부님이 전쟁고아들의 참혹한 현실을 돕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50년간 가난한 아이들의 학교로 사용되었지만 쓰임을 다해 문을 닫았다. 마리아수녀회와 건축사사무소 오퍼스(대표 우대성, 조성기, 김형종)는 이곳에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한다. 콘크리트를 걷어 흙을 살려 텃밭을 만들고, 태양 빛과 빗물을 모아쓴다. 망망대해의 버팀목이자 피난처와 같은 기지基地에서 ‘삶의 기본기’를 익히도록 만드는 것이 이들의 미션이다. 설계를 맡은 우대성 건축가는 “집을 짓는 이에게 건축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지만, 기지 프로젝트는 집을 짓기 이전에 필요를 찾는 것이 먼저였다”고 말한다. 공간의 쓰임과 방향을 정의하고, 공감하며, 기획하는 일. 건축가가 여기에 에너지를 쏟은 시간은 자그마치 8년이었다. 이곳에서는 때때로 ‘감각’이 공간의 주인공이 된다. 된장국 냄새 가득한 부엌, 오케스트라 연주가 울리는 알로이시오 홀,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 온기가 전해지는 대청마루… 맨발로 움직여야 하는 공간도 많다. 온돌의 따뜻함과 선선한 기운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건축가는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빈둥거림’을 오래 즐기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정점에 ‘침묵’을 담았다.
시선의 확보와 차단을 동시에 고려한 설계. 완전히 트인 곳보다는 적절히 에워싸는 공간에서 더욱 안온함을 느낀다는 건축가의 뜻이 담겼다. ©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Interview 건축가 우대성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기지에는 아무 기능 없는 잉여 공간이 많다. 대청마루와 침묵의 방처럼. 두 공간은 건축가가 가장 공들인 곳으로 꼽기도 했다. 수도원을 제외하고 침묵할 수 있는 공간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침묵도 중요하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침묵의 방 입구에서는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만날 수 없는 구조다. 문도 두 개다.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필요하다면 잔잔하게 음악을 틀기도 하지만, 침묵의 기본은 침묵이다. 최소한의 조명과 최소한의 사람만 있다. 이곳 역시도 온돌로 바닥을 데웠다.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창 너머로는 부산 앞바다가 보인다. 면벽을 할 수도 있겠지만 ‘기쁨이 있는 침묵’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시를 높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맛. 굉장히 값진 호사다. 또 다른 맥락에서는 ‘자연이 이렇게 있는데 아파트가 도시를 점령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누구도 느끼지 못할 수 있겠지만, 건축가로서 우리가 한 번쯤 되짚어 볼 지점이라고 판단했다.
비움과 연결의 축이 되었던 대청마루. 이곳 역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움직여야 하는 마루와 온돌이다. 따뜻함과 함께 목재의 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처마 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도록 설계한 섬세함도 엿보인다. ©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입구에서 내부까지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한 침묵의 방. 침묵 속에서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공간이다. ©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공간의 사용자들도 건축가의 의도를 인지하는가? 아직 누구에게도 많은 설명을 하진 않았다. 건축가가 사용자에게 공간을 읽어주며 자칫 오독되기도 한다. 다행인 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쓰면서 익히고 느낀다는 것이다. 기지를 개관하는 날 관계자분들과 함께 이곳에 방문했다. 건물 스스로 말을 하고 있더라. 침묵의 방에서 혼자 두 시간 넋 놓았는데 다음에 또 오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공간의 쓰임과 방향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공간이 지닌 스스로의 힘을 확대하고자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사로를 포함한 모든 공간이 열려 있다. 안전에 대한 우려는 없었는지? 부석사를 오르는 계단엔 난간이 없다. 사람이 떨어져 다쳤다는 뉴스는 아직 보지 못했다. 위험하면 스스로 방지한다. 교육청 관계자들은 여전히 난간을 더 올려 달라고 한다. 하지만 공공 건축에서의 규제가 과연 진짜 안전을 위한 것일까? 지나치게 안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책임에 대한 회피이기도 하다. 난간이라는 감옥 안에 사람이 갇히는 건축은 교육의 본질과도 철학적으로 충돌한다. ‘시선’은 기지를 설계하며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 중 하나다. 내가 확보하는 시선, 그리고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기지는 시각적으로 열려 있는 동시에 적절히 가린 공간이기도 하다. 완전히 트인 곳보다는 적절히 에워싸는 곳에서 더 큰 안온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의 모든 공간을 관통하는 경사로. 건축가는 이곳을 ‘집’이라고 표현한다. 학교라는 ‘시설’에서 탈피하겠다는 뜻이며, 대체할 수 없는 시간과 흔적에 대한 존중이다. ©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집안의 모든 공간은 이어진다. 시각적으로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청각적으로도 열어 둔다. 소음을 차단하는 곳은 침묵의 방, 음악활동실, 그리고 녹음실 단 세 군데다. 우대성 건축가는 “아이들이 소통하는 공간에서 소리가 꼭 차단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지점”이라고 말한다. ©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삶의 기본기를 학습하는 공간이라고 했는데 듣고 보니 삶에서 가장 풍요로운 것을 누리는 공간인 듯하다. ‘행복을 경험해 본 사람이 행복을 꿈꿀 수 있다.’ 마리아수녀회의 철학이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은 이곳에 모여 있는 공간을 만들 당시 가장 가난한 이에게 최고의 대우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빵 굽는 수녀님’의 시제품을 만들 때도 주변에서는 절대 단가를 맞출 수 없을 것이라 얘기했다. 인풋과 아웃풋을 계산적으로 고려하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지만 50년 동안 이곳이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흔들리지 않은 철학과 지향점을 믿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지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도 느슨하게 열려 있다. 어떻게 채워 나가고자 하는가? 수십 년간 그랬듯 공간을 쓰는 이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는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원칙처럼 실천하려고 하는 것은 ‘먹는 것’ 앞뒤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는 점이다. 기지에서는 같이 먹는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 라면 한 그릇을 먹더라도 말이다. 개인적인 희망 사항으로는 잃어버린 도심의 어둠을 찾기 위한 야간 프로그램이 늘어나면 좋겠고, 본질적으로는 아주 소수의 인원이 공간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건축가로서 이곳에서의 변화를 기대하는 공간도 있나? 입구 중 한 곳을 보면 계단 사이 사이가 살짝 벌어져 있다. 시공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틈을 비우고 꽃을 심은 것이다. 제비꽃이 올라올 자리인데 이곳이 가장 기대된다. 기지를 오가는 이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앞서 이야기했듯 한국 출산율은 점점 떨어진다. 아동의 숫자는 줄어든다.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폐교 건물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쓸 것인지를 결정하기 전에 ‘무엇을’과 ‘왜’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 여백이 있어도 공간이 작동한다. 사람들이 집을 고치는 데 관심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감각과 이야기다. 이를 일깨워줄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폐교가 지닌 건축적 조건 중 굉장히 좋은 강점이 있다. 요충지로서 도심의 거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학교’는 사람들의 기억과 움직임에 상징적인 자리로 남아있다. 개인의 주거공간이나 여타 상업공간보다 더욱 ‘잘’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1층을 제외하고 모두 비워낸 2동 건물에서는 콘크리트 기둥을 일부 남겨 놓았다. 학교와 집을 오가던 이곳 아이들의 기억을 연결하는 장치이며, 꽃이 타고 올라가게 될 지지대다. ©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계단의 틈을 비워 제비꽃을 심어두었다. 건축가는 이곳에 꽃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시공 경성리츠(건축) 신태양건설(전기) 동진정보통신(통신) 태양설비공영(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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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디자인프레스 정인호 기자 (designpress2016@naver.com)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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