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끝났다, 대신 몰려드는 부동산

조회 48,1912025. 2. 28. 수정
모듈러 주택 스타트업 '스페이스웨이비'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모듈러 건축 스타트업 스페이스웨이비 홍윤택 대표. /스페이스웨이비

테슬라의 혁신성을 평가했던 주요한 요소 중 하나는 ‘온라인 주문’이다. 테슬라는 2019년부터 모든 차량 판매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소비자들은 테슬라 공식 웹사이트에서 세부 옵션을 고르고 차량을 주문할 수 있게 됐다. 딜러와 눈치 싸움을 할 필요도, 나만 비싸게 산 것 같은 기분에 찝찝할 필요도 없어졌다.

차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많이 고민하게 하는 품목이 있다. ‘집’이다. 모듈러 건축 스타트업 스페이스웨이비 홍윤택(34) 대표는 테슬라처럼 웹사이트에서 집을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클릭 몇 번이면 취향에 맞는 집의 디자인 도안을 받아볼 수 있게 했다. 도안을 바탕으로 상담을 요청하거나 공장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홍 대표를 만나 ‘집’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예술을 꿈꾸던 공학도

미국 뉴욕 프랫대 유학시절. /홍윤택 대표 제공

2010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 전기공학과에 입학하며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1학년을 마치고 진로 고민을 다시 했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기왕이면 ‘예술’이 한 방울 들어있길 바랐어요. 공부했던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예술 분야로 ‘건축’을 택했습니다. 건축이야말로 맨땅에서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건축 분야의 권위 있는 대학인 뉴욕의 프랫대(Pratt Institute)로 편입해 학업을 이어갔다. “특히 ‘건축 및 도시 설계’를 심층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빈곤·양극화 등 사회 문제를 건축으로 풀어나가는 법을 연구했죠. 가령 인천 송도 지역에 난민·탈북자를 위한 공공시설이나 문화시설을 모듈 방식으로 설계해 봤어요. 졸업 논문으로 ‘필리핀의 인구 밀도·빈곤·슬럼화를 해결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습니다.”

스페이스웨이비의 웨이비룸을 운반·설치하는 모습. /스페이스웨이비

유학 생활을 하며 건축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자취방이 있었던 브루클린 한복판에서 20일 만에 32층짜리 건물이 지어지는 걸 봤어요. 공장에서 일정한 품질의 모듈을 만들고 현장에서 결합하는 ‘모듈러 공법’이었습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먼지·소음 등 민원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꼭 고층으로 쌓아 올리지 않더라도, 이동 가능한 주택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겠더군요. 건설 업계에 팽배해 있는 ‘품질에 대한 불신’까지 해소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어요.”

졸업과 동시에 귀국했다. 목표는 ‘창업’이었다. “모듈러 건축을 얼른 국내에 도입하고 싶었어요. 다만 그 전에 경험을 더 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 ‘패스트파이브’에 입사해 건설 시공 업무를 맡았어요. 스타트업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하는지, 어떤 위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등을 보고 배울 수 있었죠. 1년 뒤 독립을 선언하고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배운 걸 실천할 때가 온 겁니다.”

◇모듈러 건축 스타트업의 첫걸음

웨이비룸 1호를 만들던 모습. /홍윤택 대표 제공

2019년 공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아 ‘스페이스웨이비’를 설립했다. “처음엔 돈 되는 일이라면 다 했어요. 사무실, 교회, 카페, 실내 테니스장 등을 설계하면서 야금야금 자금을 모았죠. 1년 남짓한 기간에 모은 돈이 2000만원 정도였어요. 김포에 있는 창고 한 칸을 빌려 친구들과 6평(약 20㎡)짜리 모듈러 주택 1호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카드값도 못 막는 상황에서 대출을 끌어다 친구들에게 월급을 줬어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내 손으로 만든다는 것 하나로 행복했습니다.”

시제품을 완성했다. 일명 ‘웨이비룸’이다. “마케팅 비용이랄 게 없었어요. 몸으로 때웠죠. 친구 과일가게 트럭에 광고 시트를 제작해 붙이고, 밤 12시에 아파트를 돌며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고생한 덕분인지 6개월간 매일 하루에 전화가 15통씩 왔습니다. 하지만 계약은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어요. 공장이 없으니 신뢰할 수 없단 말을 수도 없이 들었죠. 염치 불고하고 작은 할머니의 논밭이었던 땅 500평을 빌려 갈아엎었습니다. 한가운데에 시제품을 놓고 양쪽에서 웨이비룸 모듈을 만들었어요. 반년 만에 매출 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21년 처음 마련했던 공장(왼쪽)과 2025년 현재 운영 중인 3000평 부지의 공장(오른쪽). /스페이스웨이비

2년간 만들어 낸 성적표를 들고 투자 라운드를 돌았다. 투자사 블루포인트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경기도 화성시에 1000평(약3300㎡) 부지의 공장을 마련했다.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는 데 힘을 많이 쏟았습니다. 2023년엔 현대리바트의 전략적 투자를 받으면서 고품질의 내부 인테리어 자재를 도입했어요. 소비자의 만족도도 높아졌죠.”

2022년까지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비율이 80% 이상이었지만 2023년엔 B2B(기업 간 거래)와 B2C가 5:5 비율로 나타났다. 2024년은 여기에 ODM까지 더해져 매출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2024년 LG전자와 함께 다양한 모듈러 홈을 만들어 낸 덕분이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에도 출품했어요. 이후 LG전자의 모듈러 주택 ‘스마트 코티지’ 생산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2024 CES에 출품한 LG전자의 본보야지. /홍윤택 대표 제공
제주 숙박시설로 들어간 16채의 웨이비룸. /스페이스웨이비

최근에는 모듈러 건축의 장점을 살려 건축 설계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건축주 입장에서 제일 궁금한 건 디자인과 가격이에요. AI를 결합해 디자인·설계를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거주인원·설치목적·설치환경 등을 입력하면 10분 안에 3가지 시안을 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웨이비AI’에 바로 물어볼 수도 있죠. 건축을 ‘제조’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한 걸음이라고 생각해요.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공사 기간을 명확히 하면서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까지 전국에 설치된 웨이비룸은 약 200채에 달한다. “강원도의 한 건축주는 세컨드하우스로 웨이비룸을 설치했는데요. 양평에 새로운 집을 지을 계획이라며 그때 웨이비룸을 이전 설치하고 싶다더군요. 제주도 숙박 시설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습니다. 숲속 풍경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캠핑을 온 듯한 콘셉트를 잡았어요. 객실과 직원 숙소까지 총 16채를 화성 공장에서 만들고 제주로 옮겨 설치했죠.”

◇K-모듈러 건축, 해외 진출 코앞

농촌 체류형 쉼터용 모델 '웨이비룸 그로브'. /스페이스웨이비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 체류형 쉼터’의 시행을 발표하며 스페이스웨이비도 바빠졌다. “현행법상 농막은 숙박이 불가능한데요. 농촌 체류형 쉼터는 10평(약 33㎡) 이내라면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발맞춰 웨이비룸도 ‘그로브(Grove)’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김포 현대 프리미엄아울렛에서 팝업 매장을 열고 전시하기도 했어요.”

2025년 2월 텍사스 경제개발청, 테일러시 시장이 한국을 방문해 업무 협약(MOU)을 맺었다. /스페이스웨이비

2025년 목표는 미국 진출이다. 벌써 텍사스에 법인도 설립했다. “텍사스 경제개발청과 MOU를 맺고 미국 뉴저지·캘리포니아, 캐나다 밴쿠버 등 북미권에 협력사 7곳을 구축했습니다. 미국은 제게 처음으로 모듈러 건축의 가능성을 알려준 곳입니다. 이후 한국에서 5년간 직접 부딪히며 기획·설계·허가·토목·운반·설치·CS 등 전과정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어요. 이제 다시 미국에 보여줄 차례가 왔습니다. K-팝, K-뷰티, K-푸드 그 다음은 K-홈이 될 거에요. 한국형 모듈러 건축의 저력을 보여줄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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