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러 주택 스타트업 '스페이스웨이비'
테슬라의 혁신성을 평가했던 주요한 요소 중 하나는 ‘온라인 주문’이다. 테슬라는 2019년부터 모든 차량 판매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소비자들은 테슬라 공식 웹사이트에서 세부 옵션을 고르고 차량을 주문할 수 있게 됐다. 딜러와 눈치 싸움을 할 필요도, 나만 비싸게 산 것 같은 기분에 찝찝할 필요도 없어졌다.
차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많이 고민하게 하는 품목이 있다. ‘집’이다. 모듈러 건축 스타트업 스페이스웨이비 홍윤택(34) 대표는 테슬라처럼 웹사이트에서 집을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클릭 몇 번이면 취향에 맞는 집의 디자인 도안을 받아볼 수 있게 했다. 도안을 바탕으로 상담을 요청하거나 공장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홍 대표를 만나 ‘집’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예술을 꿈꾸던 공학도
2010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 전기공학과에 입학하며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1학년을 마치고 진로 고민을 다시 했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기왕이면 ‘예술’이 한 방울 들어있길 바랐어요. 공부했던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예술 분야로 ‘건축’을 택했습니다. 건축이야말로 맨땅에서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건축 분야의 권위 있는 대학인 뉴욕의 프랫대(Pratt Institute)로 편입해 학업을 이어갔다. “특히 ‘건축 및 도시 설계’를 심층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빈곤·양극화 등 사회 문제를 건축으로 풀어나가는 법을 연구했죠. 가령 인천 송도 지역에 난민·탈북자를 위한 공공시설이나 문화시설을 모듈 방식으로 설계해 봤어요. 졸업 논문으로 ‘필리핀의 인구 밀도·빈곤·슬럼화를 해결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습니다.”
유학 생활을 하며 건축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자취방이 있었던 브루클린 한복판에서 20일 만에 32층짜리 건물이 지어지는 걸 봤어요. 공장에서 일정한 품질의 모듈을 만들고 현장에서 결합하는 ‘모듈러 공법’이었습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먼지·소음 등 민원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꼭 고층으로 쌓아 올리지 않더라도, 이동 가능한 주택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겠더군요. 건설 업계에 팽배해 있는 ‘품질에 대한 불신’까지 해소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어요.”
졸업과 동시에 귀국했다. 목표는 ‘창업’이었다. “모듈러 건축을 얼른 국내에 도입하고 싶었어요. 다만 그 전에 경험을 더 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 ‘패스트파이브’에 입사해 건설 시공 업무를 맡았어요. 스타트업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하는지, 어떤 위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등을 보고 배울 수 있었죠. 1년 뒤 독립을 선언하고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배운 걸 실천할 때가 온 겁니다.”
◇모듈러 건축 스타트업의 첫걸음
2019년 공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아 ‘스페이스웨이비’를 설립했다. “처음엔 돈 되는 일이라면 다 했어요. 사무실, 교회, 카페, 실내 테니스장 등을 설계하면서 야금야금 자금을 모았죠. 1년 남짓한 기간에 모은 돈이 2000만원 정도였어요. 김포에 있는 창고 한 칸을 빌려 친구들과 6평(약 20㎡)짜리 모듈러 주택 1호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카드값도 못 막는 상황에서 대출을 끌어다 친구들에게 월급을 줬어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내 손으로 만든다는 것 하나로 행복했습니다.”
시제품을 완성했다. 일명 ‘웨이비룸’이다. “마케팅 비용이랄 게 없었어요. 몸으로 때웠죠. 친구 과일가게 트럭에 광고 시트를 제작해 붙이고, 밤 12시에 아파트를 돌며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고생한 덕분인지 6개월간 매일 하루에 전화가 15통씩 왔습니다. 하지만 계약은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어요. 공장이 없으니 신뢰할 수 없단 말을 수도 없이 들었죠. 염치 불고하고 작은 할머니의 논밭이었던 땅 500평을 빌려 갈아엎었습니다. 한가운데에 시제품을 놓고 양쪽에서 웨이비룸 모듈을 만들었어요. 반년 만에 매출 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년간 만들어 낸 성적표를 들고 투자 라운드를 돌았다. 투자사 블루포인트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경기도 화성시에 1000평(약3300㎡) 부지의 공장을 마련했다.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는 데 힘을 많이 쏟았습니다. 2023년엔 현대리바트의 전략적 투자를 받으면서 고품질의 내부 인테리어 자재를 도입했어요. 소비자의 만족도도 높아졌죠.”
2022년까지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비율이 80% 이상이었지만 2023년엔 B2B(기업 간 거래)와 B2C가 5:5 비율로 나타났다. 2024년은 여기에 ODM까지 더해져 매출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2024년 LG전자와 함께 다양한 모듈러 홈을 만들어 낸 덕분이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에도 출품했어요. 이후 LG전자의 모듈러 주택 ‘스마트 코티지’ 생산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듈러 건축의 장점을 살려 건축 설계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건축주 입장에서 제일 궁금한 건 디자인과 가격이에요. AI를 결합해 디자인·설계를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거주인원·설치목적·설치환경 등을 입력하면 10분 안에 3가지 시안을 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웨이비AI’에 바로 물어볼 수도 있죠. 건축을 ‘제조’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한 걸음이라고 생각해요.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공사 기간을 명확히 하면서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까지 전국에 설치된 웨이비룸은 약 200채에 달한다. “강원도의 한 건축주는 세컨드하우스로 웨이비룸을 설치했는데요. 양평에 새로운 집을 지을 계획이라며 그때 웨이비룸을 이전 설치하고 싶다더군요. 제주도 숙박 시설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습니다. 숲속 풍경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캠핑을 온 듯한 콘셉트를 잡았어요. 객실과 직원 숙소까지 총 16채를 화성 공장에서 만들고 제주로 옮겨 설치했죠.”
◇K-모듈러 건축, 해외 진출 코앞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 체류형 쉼터’의 시행을 발표하며 스페이스웨이비도 바빠졌다. “현행법상 농막은 숙박이 불가능한데요. 농촌 체류형 쉼터는 10평(약 33㎡) 이내라면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발맞춰 웨이비룸도 ‘그로브(Grove)’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김포 현대 프리미엄아울렛에서 팝업 매장을 열고 전시하기도 했어요.”
2025년 목표는 미국 진출이다. 벌써 텍사스에 법인도 설립했다. “텍사스 경제개발청과 MOU를 맺고 미국 뉴저지·캘리포니아, 캐나다 밴쿠버 등 북미권에 협력사 7곳을 구축했습니다. 미국은 제게 처음으로 모듈러 건축의 가능성을 알려준 곳입니다. 이후 한국에서 5년간 직접 부딪히며 기획·설계·허가·토목·운반·설치·CS 등 전과정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어요. 이제 다시 미국에 보여줄 차례가 왔습니다. K-팝, K-뷰티, K-푸드 그 다음은 K-홈이 될 거에요. 한국형 모듈러 건축의 저력을 보여줄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