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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달라져요 '여성 네트워킹의 힘', 김지영 스여일삶 대표

2021.01.09 08:00 입력 2021.01.09 09:46 수정

국내 최대 여성 중심 스타트업 커뮤니티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스여일삶)을 운영하는 김지영 대표. 유명종 PD

국내 최대 여성 중심 스타트업 커뮤니티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스여일삶)을 운영하는 김지영 대표. 유명종 PD

“한 명이라도 (여성 롤 모델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천지 차이에요. 나와 비슷하게 고민 중인 사람을 보고, 고민을 해결하고 있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100% 달라집니다.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의지가 100% 달라질 수 있어요.”

‘스여일삶.’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했던 혹은 일하고 싶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페이스북 기반의 커뮤니티 ‘스여일삶’은 2017년 11월 오픈 후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 만으로 3년 사이 5000명이 가입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고민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일까. 지난달 29일 서울 동작구 여성가족복합시설 스페이스살림에서 스여일삶 대표 김지영씨를 만나 물어봤다.

■만나면 달라져요…여성 네트워킹의 힘

“사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어느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이든 비슷한 것 같아요.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때, 커리어를 설계할 때도 고민을 나눌 사람이나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요. 특히 팀원 중에 혼자 여성인 경우도 많고요. 남성 중심적인 조직인 스타트업에서는 (여성의 경력에 대한) 레퍼런스가 더 없죠.”

대학 졸업 후 홍보대행사 디지털마케팅 AE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영씨는 우연한 기회에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스로 기획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스타트업 특유의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서 터졌다. 결혼 1년 차.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을 때 어떻게 하면 계속 일할 수 있는지 물어볼 동료가 한 명도 없었다.

“사내에 결혼한 선배나 아이를 낳은 선배가 전혀 없었어요.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 거예요. ‘왜 없지?’ ‘다 어디 갔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단 소규모로 주변에 있는 스타트업 여성들을 모으려고 커뮤니티를 시작했어요.”

김지영 대표의 생각대로 여성 롤 모델과 멘토를 찾고 있던 사람들은 많았다. 온라인으로 시작된 커뮤니티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오프라인 모임으로 확장돼 여성들의 네트워킹의 장이 됐다. 경력 관리와 이직, 창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거나 업무 관련 팁을 서로 배우고 사수 없이 일해야 하는 스타트업 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밀레니얼이나 Z세대의 생각이 궁금한 여성 창업가도 모임을 찾았다. 지영씨는 “내 상황을 쉽게 공감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굉장히 솔직하게 일과 삶의 고민을 얘기한다”며 “그동안 외롭고 힘들었던 마음에 눈물을 보이는 분들도 많다. 오프라인 모임은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감정적 유대와 지지,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오프라인 모임은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감정적 유대와 지지,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에요.” 스여일삶 제공

“오프라인 모임은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감정적 유대와 지지,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에요.” 스여일삶 제공

‘스여일삶’은 여성뿐 아니라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남성들이 동료나 직원들에게 물어보지 못하는 것을 듣기 위해 가입하기도 한다.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에 대한 고민은 모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육아 휴직이나 출산 휴가 제도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는 스타트업 조직의 특성상 몇 달씩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현실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제도가 없어서 (여성) 스스로 대표에게 요구해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지만 스타트업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맡은 역할이 워낙 크다 보니까 개인적인 고민을 분명히 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계속 일을 하고 싶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커리어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생에서 경력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니까요. ‘창업’ ‘스타트업’ ‘일반 기업’ ‘프리랜서’ 등 형태가 무엇이 되었던 일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로 선택지를 넓혀야 해요. 특히 주변에 사람이 많아야 일자리나 일거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무엇보다 중요한 거 같아요.”

지영씨는 30대에는 스여일삶을 운영하는데 집중하고, 40대에는 자신과 같은 여성 창업가들에게 투자를 하거나 액셀러레이터로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스여일삶 제공

지영씨는 30대에는 스여일삶을 운영하는데 집중하고, 40대에는 자신과 같은 여성 창업가들에게 투자를 하거나 액셀러레이터로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스여일삶 제공

■여성 창업가, 30%는 돼야 한다

“아직도 투자자 중에는 여성 창업가에게 ‘시어머니가 반대 안 해요?’ ‘남편은 무슨 일해요?’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있어요. 여성 창업가의 숫자도 적지만 여성 창업가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풀고 싶어 하는 문제에 공감하는 투자자나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회사)를 만나기 힘들어요. 이들 대부분이 남성인 것도 (여성 대표가 적은) 원인이죠.”

2019 대한민국 글로벌 창업백서에 실린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현황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스타트업 여성 창업자는 2017년 8.3%에서 2019년 8.7%로 소폭 늘었지만 여전히 10%가 되지 않는다. 스타트업 내 여성 고용 비율은 2017년 64.3%에서 2019년 81.2%로 늘었는데도 스타트업은 남성조직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네트워킹과 컨퍼런스와 같은 이벤트가 열리면 여성 연사가 한 명도 초대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저는 ‘노력하면 여성 연사를 찾을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스타트업 업계에) 공개적으로 합니다. 다양한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해요.”

지영씨는 수치상으로는 아직 부족하지만 스타트 업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젠더 관점을 가진 투자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여성 창업경진대회나 국가사업에서 여성 창업가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 등 여성 창업가의 비중을 높이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10% 내외의 여성 창업가의 비중이 최소한 30%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여성 창업가들 역시 실력으로 증명해야겠죠. 그래야 창업을 준비하거나 도전을 망설이는 여성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

■30대의 김지영이 꿈꾸는 40대의 김지영

지영씨 스스로도 ‘스여일삶’은 인생에 터닝포인트였다. 커뮤니티 운영에 집중하려고 1년 전 다니던 스타트업을 나온 대표이자 직원인 지영씨는 30명의 운영진과 ‘스여일삶’을 꾸려가고 있다. 운영진은 각자 본업을 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 개념으로 ‘스여일삶’에 참여한다. 본인이 원할 때 관심 있는 모임이나 강연을 기획해 운영하고 참가비 등의 수익이 발행하면 나눈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여파로 모임이 취소되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전까지는 도시락 값 정도의 실비만 받았던 오프라인 모임이 점차 회원들의 참여가 활성화되면서 참가비, 뉴스레터를 통한 광고 수익을 조금씩 내고 있었다. 지영씨는 30대에는 ‘스여일삶’을 운영하는데 집중하고, 40대에는 자신과 같은 여성 창업가들에게 투자를 하거나 액셀러레이터로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그때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스여일삶’의 대표 운영자에서 이제는 스타트업 ‘스여일삶’의 대표가 된 지영씨. 어깨는 무겁지만 무리해서 투자를 받거나 당장 팀원을 뽑을 계획은 없다. 지속가능한 ‘스여일삶’을 위해 최대한 가볍게 운영하겠다는 처음의 다짐을 그대로 이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즈음, 지영씨는 지난해 코로나로 오프라인 모임이 취소돼 만나지 못했던 멤버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혼자가 아니에요. 이 시국을 잘 버티면 분명히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온다는 걸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가장 바라는 일이기도 하고요.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있고 우리는 지금 그 끝으로 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니까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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