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고속도로 달려온 쿠팡, 대기업 험로 걷는다

공정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경영활동·이사회 현황 등 공시 의무 늘어
내부거래 계열사 수익모델과 직접 연결
불공정거래로 판단시 고강도 규제 불가피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쿠팡이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집단에 포함됐다.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총수) 지정은 피했지만,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묶이면서 앞으로 대규모 내부거래와 재무구조 변동사항 등에 대한 공시의무를 지게 됐다. 스타트업으로 빠른 성장을 일궈온 쿠팡이 대기업 규제를 받게 되면서 사업 확장에 새 변수가 될 전망이다.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을 자산규모 5조원 이상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새로 지정했다. 쿠팡은 지난해 자산총액이 전년대비 87% 늘어난 5조8000억원으로 국내 기업 중 60위에 이름을 올렸다. 동일인에는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아닌 쿠팡 국내법인을 지정했다.

쿠팡의 앞으로 행보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는 한시름 덜었지만 대기업 집단에 들어서면서 종전보다 더 많은 공시 의무가 발생하게 됐다. 경영활동 변동뿐 아니라 임원·이사회 현황과 주식소유 현황, 내부거래 현황을 분기별 또는 회계연도 말에 공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정위의 집중 감시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규제 부담이 커졌다. 총수 없는 기업집단도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에 따른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쿠팡 역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 공정거래법을 투자 위험 요소로 꼽으며 이 같은 가능성을 인정했다.

쿠팡이 맞닥뜨릴 리스크는 내부거래가 대표적이다. 쿠팡은 e커머스를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수직계열화한 상태인 만큼 일감을 계열사에 맡기는 구조다. 쿠팡 종속기업은 쿠팡풀필먼트와 쿠팡로지스틱스, 떠나요, 쿠팡페이, CPLB 등 8개에 달한다. 쿠팡은 이들과 조단위 거래를 하고, 계열사 대부분은 쿠팡 수익모델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쿠팡과 물류업무대행 계약을 맺은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의 경우 쿠팡과 거래를 통해 지난해 1조900억원의 수익을 챙겼지만 제공한 비용은 132억원에 불과했다. 2019년 쿠팡과 거래 수익이 5824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 만에 2배에 가까운 수익을 벌어들였다. 자본총계와 자본금 중 큰 금액의 100분의 5 이상이거나 50억원 이상인 경우 대규모 내부거래 행위로 공시 대상이 된다.

물론 모든 내부거래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쿠팡은 물류과 자체 브랜드(PB) 등의 사업 고도화를 위해 분사를 택했다. 공정위의 내부거래 규제 취지가 총수 일가가 다수의 계열회사를 지배하고 친인척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걸 막는게 주된 명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쿠팡은 재벌식 순환·상호출자가 없고 혼맥으로 얽힌 친족 경영도 없다.

그러나 공정위가 이 같은 쿠팡의 사업 구조가 시장질서를 해치는 불공정거래라고 판단할 경우 사업 위축이 불가피하다.

대기업 집단이 계열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할 경우 공정위는 행정조치를 취하거나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이미 쿠팡은 불공정거래 이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협력사였던 LG생활건강과 크린랲 등은 지난해 쿠팡을 불공정거래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한 바 있다.

쿠팡 배송차량
쿠팡 배송차량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국내법에 의해 설립된 쿠팡의 기업집단 회사들은 공정거래법상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된다”면서 “국내 기업집단과 동일하게 공정거래법에서 적용되는 모든 의무사항이 쿠팡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쿠팡이 대기업 집단에 들어선 이상 과거 같은 공격적 사업 확장에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판매사업자나 납품업체 갑질 논란 등 그간 쿠팡을 둘러싼 각종 리스크가 공정거래법에 따른 고강도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쿠팡 관계자는 “공정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앞으로 공정거래법을 철저히 준수하겠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