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게임사 창업자가 ‘영양제’ 사업에 뛰어든 이유

지난 3일 오후 4시. 일찌감치 사무실을 나섰다. 독수리약국의 영업시간이 짧아, 늦기전에 신촌엘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약국은 쌔고 쌨다. 우리집 1층에도 건물주가 하는 약국이 있다. 굳이 독수리약국까지 찾아간 것은, 여기에 건강기능식품 정기배송 서비스 ‘아이엠(IAM)’을 체험해볼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엠은 다소 낯선 서비스다. 모노랩스라는 스타트업에서 운영하는 브랜드인데, 개개인의 건강 상태에 맞춰 구성한 영양제를 한 번에 한 포씩 털어먹도록 소분해 정기배송한다. 원래 우리나라 법에서는 영양제 포장을 뜯어 소분 판매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일부 사업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정기 배송 서비스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때 특례사업자로 선정된 곳 중 하나가 모노랩스다.

약국에 다녀온 이튿날, 서울 역삼동에 자리한 모노랩스를 찾아 소태환 대표를 만났다. 스타트업을 찾아가 사업 설명을 듣는 것은 나의 일이나, 이번에는 목적이 좀 달랐다.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게임 업계에서 소태환이라는 이름 석자는 유명하다. 무려 2003년에, 모바일 RPG 게임 ‘삼국지 무한대전’을 만들어 인기를 얻은 후 회사를 넥슨에 매각했다. 이 회사, ‘엔텔리젼트’는 넥슨모바일의 전신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선 후에는 ‘네시삼십삼분(4:33)’이라는 게임회사를 만들었고, ‘활 for kakao’ 같은 게임으로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았다.

그런데, 게임에서 잔뼈가 굵은 이가 뜬금없이 영양제 정기배송이라니. 그것도 온라인 소프트웨어만 만들었던 사람이 한국콜마 등과 손잡고 영양제를 스물한종이나 직접 만들고, 또 이걸 소포장하는 공장을 세워 구독자에 직접 배송하는 서비스를 기획하다니. 창업이 취미인 사람 중에 다양한 업종에 도전하는 경우를 못 본 것은 아니지만, 소 대표의 변신은 내게 꽤나 놀랍게 느껴졌다. 그래서 만나서 이것저것 물었다. 아이엠이라는 서비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다는, 이 사람의 심경변화가 어디에서 왔고, 또 새로운 사업을 하면서 얻게 된 경험과 생각 등을 주로 물었다.

소태환 모노랩스 대표

게임에서 헬스케어라니, 하시는 일이 확 바뀌었어요

제가 영양제를 엄청 많이 먹어요(웃음). 그런데 영양제도 종류별로 먹는 방법이 다 달라서요, 어렵고 불편하더라고요. 외출할 때도 영양제를 별도로 다 챙겨야 하고요. 쉽고 편한 대안이 없나 고민하던 와중에 해외에 유사한 사업들이 있는 걸 봤어요. IT 기술로 헬스케어 사업을 하면 좋겠는데, 많은 이들이 쉽게 접하는 영양제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죠. 좀 편하고 쉽게 먹어보자고요(웃음).

영양제는 얼마나 많이 드시나요? 안그래도 오면서, 영양제 뭐 드시냐고 그것부터 물어보려 했어요(웃음)

알수로 하면 하루 서른개가 넘어요. 종류로 따지면 끼니마다 먹는게 다르니까요.

서른알씩이나. 그렇게 많이 먹게 된 계기가 있나요?

게임회사 일이 정말 힘들었어요. 모바일 게임의 라이프 사이클이 너무 짧고 운영도 365일 24시간 돌아가니까요. 숫자는 눈앞에 계속 보이고, 이슈는 계속 터지고. 뭔가 새로운 걸 하나 하면 두 시간 안에 반응이 올라오니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죠. 회사일을 그만두고 잠시 시간을 갖던 때, 개인적으로 친구가 갑자기 죽는 일이 생겼어요.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스스로 건강을 너무 등한시한 건 아닌가, 건강을 챙겨봐야겠다고 해서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죠.

그게 대표님의 인생을 바꿔놓았네요

건강과 관련한 시장을 찾아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건강 나이라는 것이 있어요. 평균 수명 말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나이인데요. 통계청 수치로 보면, 우리나라 평균수명과 건강나이 사이에 20년 이상 차이가 있어요. 앞으로는 더 오래 사는 것보다 사는동안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더 많이 나올 것 같거든요. 죽고 사는 것은 메디컬이 해결할 문제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더 건강하게 사는 것은 헬스케어가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게 중요한 전환점이었죠.

메디컬과 헬스케어는 다르다, 중요한 구분이네요

인공지능 기술로 이쪽 일을 한다고 하면, 아픈 사람 치료하고 CT 영상 분석을 하는 얘기를 많이들 하세요. 저는 그건 메디컬 시장이라고 봐요. 메디컬과 헬스케어는 다른 영역인데, 하나의 이름으로묶여서 서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어요.

메디컬은 규제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 생명을 다루잖아요? 훨씬 경험 많고 교육을 잘 받은 의사들의 의견이나 진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건강한 사람들의 삶의 질에 대한 서비스는 아직 많이 없어요. 저는 헬스케어를 메디컬과 분리하고, 헬스케어 시장에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죽는 날까지 쭉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큰 복이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커지는 것은 아프지 않게 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다만, 개인이 필요한 영양제를 이것 조금 저것 조금씩 온라인을 통해 살 수 있는 길은 법적으로 막혀 있었다. 모노랩스를 비롯한 일부 회사들이 지난해 4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그 길을 일부 텄다. 약사나 영양사의 상담을 받은 개인이, 필요한 영양제를 소분해 정기배송으로 받아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모노랩스에게 약국을 우군으로 삼는 일이 중요해진 때다.

 

약국과 협업을 해야 하는데, 약사들을 설득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약대 교수님들이나 현업 약국 약사님들과 아이디어를 많이 나눴어요. 그분들도 저희와 완전히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사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변화는 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운영이 잘 되기 때문에 빨리 변해야 할 필요는 못 느낀다”는 상태였죠.

그런데 이게 바뀐 게 코로나 직후예요. 병원에 안 가니까 처방이 나올 수 없죠. 코로나로 운영이 가장 어려워진 곳 중 하나가 약국이예요.

최근에는 약을 쿠팡이나 네이버로 많이 사기도 하고요. 앞으로 규제가 풀리면 사람들이 약을 온라인에서 더 많이 살거란 생각을 하게 될 테니까, 약국에선 우려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미 약국 점유율이 10%가 안 돼요. 온라인으로 살 수 있는 걸 굳이 약국에서 사는 일은 적죠. 약국이 바로 변화해야 하는 상황을 코로나가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을 약사님들이 의외로 굉장히 잘 받아주세요. 저희가 “사람들이 약국을 쉽게 찾도록, 진입장벽을 없애고 싶다”고 말하거든요. 이런게 정말 필요했다고들 해요. 다만, 저희가 아직 새로운 서비스니까 “너희의 뜻은 정말 좋은데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세요.

정기 배송 서비스에 참여하는 게, 약국에는 어떤 이득이 있나요?

일단 저희가 약국에 판매수수료를 지급을 하고요. 또 약국 입장에서는 재고 부담이 없죠. 약국에서는 상담을 해주시는 거고, 실제 배송은 저희 쪽에서 하니까요. 또, 구독 서비스니까 정기적인 매출도 생기죠. 예전에는 한 번 방문한 손님이 다음에 또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여기에서는 상담을 한 후 정기배송을 통한 수익이 계속 쌓일 수 있으니까 약국 입장에서는 또 다른 사업모델인 거죠.

 

아직은 규제 샌드박스로 인해 모노랩스의 ‘아이엠’이 들어갈 수 있는 매장 수는 약국 스무개, 판매업 영업장 6개에 한정되어 있다. 모노랩스의 첫 오프라인 매장은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점에 자리잡았다. 첫 약국 파트너는 신촌 독수리약국이다. 소 대표는 모바일 게임이라는, 온라인 소프트웨어에는 잔뼈가 굵었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만드는 것은 생초짜 신인이다.

모노랩스의 아이엠 정기배송 서비스. 알고리즘에 따라 개인 맞춤형 약 구성을 짜기 때문에, 각자 받는 내용물이 달라진다.

첫 오프라인 매장이 이마트였잖아요? 왜 하필 이마트였나요?

저희가 작년 4월에 사업을 허가 받았는데요, 코로나 상황에서 매장을 내야 하는 고민이 컸었죠. 코로나 이전에 사업 신청서를 냈는데 사업 허가 이후에는 상황이 확 달라졌으니까요. 처음에는 저희도 “코로나라는게 뭐야? 어떻게 되는 거지” 이랬는데 두세달 지나면서 “아,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겠구나”라는 걸 알면서, 저희가 가졌던 전략을 다 처음부터 새로 세워야 했죠. 그러면서 “마트는 가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한 거죠.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건 처음이셨을텐데, 고민이 많았겠어요?

일관된 경험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고객이 매장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영양제를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영양제 추천을 위한 설문 화면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같은 경험 개선을 계속 하고 있어요.

그 수많은 경험 중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꾸준히 먹게 하는 거죠.

그런데 영양제는, 예를 들어서 제품이 예쁘다고 꾸준히 먹는건 아니잖아요?

꾸준히 먹고 건강해져야 구매를 계속 하는 거잖아요? 판단의 순서를 살펴보면 우선적으로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게 ‘꾸준히 먹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요. 그래서 피드백을 강화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저희 챗봇이 “오늘 영양제는 챙겨 먹었는지” 여부를 묻거든요. 그런 경험 등을 통해서 “내가 잘 챙겨 먹고 있다”는 성취감을 들게 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고요. 이게 게임을 하면서 했던 일들이니까요.

게임을 하면서 했던 일들중에서, 어떤 경험이 도움이 되었나요?

우리나라 어떤 서비스 중에서도 게임만큼 리텐션(retention, 유지) 관리를 가장 타이트하게 하는 곳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존의 오프라인 리테일에선 리텐션 관리라는 개념이 잘 없죠. 관리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고요. 저희는 리텐션을 지표로 생각하고, 우리가 뭘 하면 꾸준히 먹을 수 있을까를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죠.

어떻게 계속 서비스를 구독하게 할까는, 모든 정기구독 서비스의 고민이죠. 그렇지만 더 좋은 서비스, 더 효과 좋은 영양제가 나올테고, 그럴때마다 움직이는 게 사람 마음아닌가요?

소비자는 항상 진화하고 더 빨리 변하잖아요. 누가 “이게 좋더라”라고 해서 먹는 건 그 판단을 완전히 소비자한테 맡겨서 그래요. 하지만 앞으로는 더 스마트해질 거라고 봐요.  “이 약이 지금 유행하던데, 정말 저한테 도움이 될까요?”를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약사가 있다면, 그분이 정확한 답변을 해준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겠죠.

판단의 주체가 제가 되면 안되겠군요(웃음)

판단은 본인이 하겠지만, 조언을 들을만한 곳이 있다면 달라지겠죠? 지금은 미디어나 일방적인 메시지를 듣게 되는데, 실제로 그게 나한테 필요한 건지 조언을 들을만한 곳이 없잖아요? 그거 하나 물어보려고 병원을 찾기도 어렵고요. 저는 그런 접근성이 달라지면 상황도 달라질 거라고 봐요.

어제, 신촌 독수리약국에 갔었어요. 구독을 위해서 테스트를 해보니까, 질문사항이 꽤 많았는데, 이걸 짜는데도 신경을 꽤 쓰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해외 서비스랑 비교해보면, 해외 거는 되게 어려워요. “건강 어느 분야에 관심 있으세요? 면역? 소화?”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해요. 저희는 생각해서 답해야 하는 질문은 다 없앴어요.

! 저도 설문을 적으면서 되게 빨리 진행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질문이 잠은 잘 자니?”이런 식이었거든요

“어…?” 이렇게 고민을 해야 하는 질문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빠르게 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고요. 게임이 원래 그렇잖아요? 멈칫하는 순간이 생길 때 이용자 이탈이 많이 일어나는데요, 이탈이 일어나지 않게 했던 경험을 많이 넣어서 최대한 편하게 답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오프라인 매장 운영은, 게임 쪽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일 것 같은데요, 양쪽을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비교할만큼 이쪽 경험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웃음). 일단, 게임은 소프트웨어를 온라인으로 만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고객이 어떤 상황인지는 숫자로 정말 빠르게 파악이 돼요. 그렇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파악하기 어렵죠. 그런데 여기는 누구인지는 알겠어요. 누가 우리 매장에 오는지요. 하지만 실제로 고객의 반응을 얻어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죠. 접근성이 떨어지니까요.

정 반대네요. 즉각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니까 답답하진 않으세요?

그런 부분 때문에 저희 영양사들이 매일매일 퇴근할 때쯤이면 그날 만났던 고객들에 대해서 리뷰를 잘 남겨주세요. 고객 분들이 오늘 어떤 걸 물어봤고, 어떤 부분을 편해 했고, 어떤 부분을 불편해 했고, 이런 부분을 개선했으면 좋겠다 같은 내용을 매일 남겨주셔서 매일 보고 있어요.

메디컬이나 헬스케어가 더 많이 온라인으로 넘어오게 됐을 때, 대표님이 그리는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요?

궁극적으로 누구나 쉽게 자기 건강 상담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게 하는게 목표예요.

그 역할을 챗봇이 할 수도 있을까요?

저는 챗봇한테 물어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접근성의 문제이지, 약사님이 해주신다고 하면 저는 약사님한테 물어볼 것 같아요.

약사가 더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으니까요?

뉘앙스 파악의 문제도 있죠. 저한테 챗봇이 뉘앙스를 명확하게 구분해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들라고 하면, 못 만들 것 같아요.

피곤하다고 느끼는 걸 약사님한테 설명을 하면 약사님은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데, 챗봇은 그걸 디테일하게 물어보기에는 한계가 분명 있지 않을까요?

저희도 물론 챗봇이 있어요. 그런데 챗봇은 “약 배송을 일주일 미뤄주세요” 같은 주문만 받아요. “이 영양제를 더 먹고 싶은데 이게 저한테 맞는 걸까요?” 같은 질문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종합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서비스는 최대한 합리적으로 영양제를 먹게 도와주는 건데, 그 사이에 사람이 해야 되는 일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인터뷰를 가면  자주 “놀 땐 뭐하고 노느냐”고 묻는다. 대체로 창업자들은 하루 스물네시간 밤낮없이 일한다. 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고, 또 어떻게 재충전을 할까.

 

인터뷰 오기 전에, 소 대표님을 아는 분께 SOS를 쳤어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굉장히 책을 많이 읽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하루에 몇권씩도 읽는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책을 왜 그렇게 많이 보세요?

제가 지적 호기심이 많은데, 요즘은 유튜브가 그 역할을 해주지만 예전에는 그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은 책 말고는 없었죠. 궁금한 것에 대한 깊이 있는 얘기를 듣고 싶은데. 그때마다 모든 사람들한테 다 연락을 할 수는 없잖아요. 책을 통해서 그런 걸 좀 많이 얻기도 했고요, 책 읽는 과정에서의 몰입의 경험이 저한테는 기분 좋은 경험이기도 하고, 의외로 전혀 다른 영역에서 영감을 굉장히 얻어요.

사업에 대한 영감도요?

네, 세상이나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 같은 걸 얻어요. 주로 물리, 과학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데, 도움이 되죠.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물리와 관련된 책을 읽다가 사업 아이템과 연결된다는게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가서요(웃음)

물리학에서는 ‘빅 히스토리’라는 개념이 있거든요. 빅뱅부터 지금까지 오는 전 과정을 다루는데요. 거기에서는 ‘존재’라는 건 없고 ‘관계’만 있다고 보고요, ‘인과’의 관점이 아닌 ‘확률’의 관점에서 봐요. 시간은 ‘연속’이 아니고 ‘불연속’이라고 보고요.

인과의 관점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건강하다고 하는데, 담배를 피워도 90세까지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건 인과로 설명이 안되죠. 그런데 확률의 관점에서 보면 가능하죠. 확률적으로 담배를 안 피면 건강할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 반드시 인과관계는 아니잖아요. 세상의 많은 일들이 단순히 인과관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확률이 중첩되서 그중 어느 하나가 트리거가 되어 사건이 벌어지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헬스케어에서 앞으로 우리가 뭘 해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보이는 거죠.

헬스케어 사업은 아플 확률을 줄여주는 건가요?

그런게 저는 헬스케어 아닐까… 건강나이를 늘린다는 것이 상대적으로 제가 질병에 걸릴 확률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인과관계로 봤던 것과는 다른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다고 봐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다소 뜬금없지만, 놀 때는 뭘 하고 노시나요?

영화를 많이 보고요.

콘텐츠를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책도 많이 보시고요

네, 책도 그렇고 영화도 좋아하고요. 게임도 지금도 많이 해요.

시간이 어디서 나나요? 콘텐츠 소비는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데요. 무엇을 포기하셨나요?

저는 골프를 치지 않아요. 시간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사람들이 골프는 재미있고, 또 쳐야 한다고 하는데 제가 그걸 선택하는 순간 이 세가지(게임, 책, 영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저는 그런데 이게 아직도 즐겁거든요. 굳이 해야 한다면, 적어도 노는 건 제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요. 음악도 많이 듣고요. 클래식 공연도 많이 보고요. 두시간이잖아요, 그 두시간의 짧고 강렬한 경험이 저한테는 되게 강하게 남아요.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가 있나요?

<자산어보>요. 제가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감독님이 흑백영화로 촬영한 이후부터 더 좋아졌어요. 영화 콘텐츠 안에서도 굉장히 쾌감이 있고 묵직한 스토리도 있지만, 그 영화가 등장하는 이 시대적 메시지까지 포함한다면, 이준익 감독 영화는 보고 나왔을 때 단순히 “재미있다”를 넘어서 책을 읽은 것 같이 생각할 거리를 굉장히 많이 남겨주는 것 같아요.

자산어보에서는 어떤 의미를 찾으셨나요?

정약용, 정약전 형제가 보수적 시대상황에서 진보된 무언가를 느꼈고, 느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죠. 또 형제의 선택도 달랐고요. 한명은 끊임없이 중앙으로 진출하려 했고, 또 한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용서를 썼죠. 영화에서 “이런걸 책으로 쓰느냐”는 질문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정말 진보적인, 서구에서는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접하고 실행에 옮긴 거잖아요.

일부 동질감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뭔가 새로운 걸 배우고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요. 완전히 새롭진 않아도, 기존에 없던 걸 하려는 곳이 스타트업이잖아요?

하려고 하고 있죠. 제가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걸 하고 싶어 하는 입장에서도 그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저한테는 좀 다르게 느껴졌어요.

 

<자산어보>에서 새로운 지식과 실용을 가져온 시대의 혁신가를 보았다는 이야기다. 스타트업의 관점에서, 이 영화가 쉬이 읽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소 대표도 단순하게 ‘영양제 판매’로 꿈을 제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여쭤볼게요

서비스를대중화하는 것이 당장의 가장 큰 이슈고요. 헬스케어는 전세계가 이제 다 걸음마단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헬스케어 회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모노랩스가 되기를 기대를 하시는 거고요

이유가 있는데요, 슈퍼셀 아시죠? 슈퍼셀이 탄생한 배경을 가만히 보면, 그전에 수미아라는 회사가 있었어요. 수미아는 노키아라는 회사 때문에 있을 수 있었죠. 핀란드가 왜 갑자기 게임 강국이 되었는지 질문을 해봐야 해요.

노키아의 인재들이 수미아로 갔나요?

노키아에 게임 콘텐츠를 공급하던 회사가 수미아예요. 노키아가 당시 세계적인 휴대폰 점유율을 갖고 있었잖아요. 그 회사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던 곳이 수미아인데, 노키아가 망하면서 수미아도 망했지만 그 회사에 다니던 이들한테 게임을 만들던 경험과 노하우가 엄청나게 축적이 되어 있었거든요. 이 사람들이 슈퍼셀을 만든거예요. 어느날 갑자기 게임하자고 해서 뚝딱뚝딱 만들어서 나온게 슈퍼셀이 아니란 얘기예요. 그렇게 보면, 어떤 한 회사가 세계적으로 성장하려면 좋은 인력, 운 이런 것도 다 중요하지만 저는 그 회사가 있는 위치, 환경 등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슈퍼셀이 덴마크나 노르웨이가 아니라 핀란드에서 나온 건 노키아 때문이거든요.

그렇네요, 노키아의 자산이 있었으니까요

한국이 노령화가 가장 빠른 국가라는 것이 굉장히 걱정스러운 지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먼저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어차피 모든 국가의 평균수명은 다 늘어날 거고, 고령화는 모든 국가의 고민이 될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먼저 고민을 시작했고, 또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스마트폰 회사와 가전 회사가 있잖아요? 우리나라의 디바이스가 전세계 라이프스타일에 들어가고 있어요. 스타일러도 전세계 최초로 우리나라가 만들었잖아요?

이런 변화들이 저는 한국이 가진 사회적 환경이라고 봐요. 라이프스타일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것을 세계사람들이 받아들여줄 준비가 되어 가는 거 같아요. 한국이 기술 수용력도 높은 상황이라, 저희가 아니라도 세계적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한국에서 만들어 성공시켜 세계로 내보내는 것이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요. 저희가 그런 회사가 되는게 사실은 목표예요. 이전에는 말할 기회가 없어서 영양제 얘기만 했는데, 사실 저희 목표는 거기 까지 가는 거죠.

글로벌 시스템을 들고 나가실 건가요? 제조는 현지 업체들과 손잡는 형태로요?

그냥 저희가 지금 만드는 걸 바로 내보낼 것 같아요. 영양제는 직구가 가장 잘 되는 항목 중 하나예요.

  걸리는 건 각 나라의 규제일까요?

영양제는 식품이라 특별한 규제가 없어요. 언어적 장벽이랑…

브랜드 신뢰?

브랜드 신뢰는, 해외 나가면 국내 유수의 제약회사나 저희나 똑같던데요(웃음).

아니, 그래도 브랜드를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웃음)?

알리고 있는데, 저는 오히려 해외에 나가면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해외에 유명한 곳들과도 싸워야하잖아요

아, 오히려 한국이 경쟁력이 있어요. 한국이 식약처 규제가 가장 센 나라 중 하나예요.

, 그게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도 있겠군요

예를 들면 같은 영양제라도 200mg이라고 써놨어도, 한국은 ‘지표물질’이라는 항목이 따로 있어요. 그 성분이 200mg이 들어가야 인정을 해줘요. 지표물질의 함량이 적힌 것보다 적으면 영업정지를 먹어요. 해외에서는 한국 것보다 비싼 제품에서만 지표물질 함량을 표시해놨어요. 이 센 규제가 한국에서 사업하기 힘든게 있지만, 해외로 나갈 경우에는 굉장히 큰 장점이죠.

사업이 커지면 계속해 사람을 옆에 많이 두셔야 할텐데, 어떤 관점으로 뽑으시나요?

과거의 경험을 좀 많이 물어보는 편이에요. 어떤 경험이 의미가 있었는지, 그때는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어떤 생각이었는지, 지금도 그게 유지가 되는지, 달라졌다면 왜 달라졌는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라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 생각해봐요.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사람이 어떤 문제, 삶의 기회에 어떤 태도로 대응을 했는지 보이잖아요. 저는 사람의 직접적인 장단점 보다는, 그런 태도들이 모여서 지금 그 사람이 됐다고 생각해요.

좋은 말이네요. 태도가 모여서 사람이 됐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 외에는 안 보려고 해요. 환경에 맞춰서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또 다른 환경에 가면, 저라는 사람 자체가 변하진 않겠지만 저의 선택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직원이 회사에 와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에는 회사의 모든 환경이 다 영향을 준다고 봐요. 일관된 삶의 태도로 자기 삶을 바라봤던 사람들이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좋은 회사라고 생각해요.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 회사에 와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건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해요. 우리 환경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우리의 생각과 다른 의사결정을 저 사람이 하고 있으니 원인을 빨리 파악해야죠. 그걸 사람 탓으로 돌리면 회사는 변하지 않아요.

 

태도가 모여 사람이 된다, 는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거의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 시간 동안,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그 태도도 기억에 남는다. 시작은 영양제이지만, 그 끝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이 될 거라는 모노랩스에는 카카오와 네이버 등이 투자했다. 시장 가능성이나 창업자의 역량이 평가받았을 터다. 백세 시대에,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을 모노랩스가 어떻게 쫓아가게 될지, 건강염려증을 가진 1인으로서, 계속 지켜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관련 글

첫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