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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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 플랫폼을 활용해 유통, 금융, 콘텐츠 등 산업 전 분야를 아우르는 네이버가 이번엔 메디컬·헬스케어 분야 진출에 고삐를 죄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시니어 인구 증가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의료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전망이 밝다는 분석이다. 네이버가 강점을 지닌 정보통신(IT) 기술을 결합해 의료 분야 데이터 구축도 꾀할 것으로 점쳐진다.

네이버,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잇따라 투자

[제공=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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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IT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의 스타트업 양성기구 'D2SF'(D2 Startup Factory)는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신규 투자를 단행했다. 투자 대상이 된 스타트업은 경도인지장애 디지털 치료제(DTx) 개발사 '이모코그'. 경도인지장애는 비슷한 연령대에 비해 인지 능력이 감퇴됐으나 일상 생활은 수행 가능한 치매 전 단계다. DTx는 질병 치료를 위해 환자 행동이나 생활양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소프트웨어(SW)로 환자들의 심리적 거부감이 적어 주목받고 있다.

네이버는 이모코그가 개발한 '메타기억교실'을 눈여겨봤다.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의 인지능력을 돕는 해당 프로그램은 이모코그가 자체 개발해 오프라인과 인공지능(AI) 스피커로 서비스하고 있다. 현재 준비 중인 스마트폰용 프로그램 '코그테라'(cogthera)는 뇌에서 기억 전략과 관련된 영역을 활성화해 장기 기억을 증진시킨다. 15년간 축적한 연구 데이터에 기반했으며 관련 논문 5편을 발표했다.

메디컬·헬스케어에 대한 네이버의 관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 1월에는 IT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4곳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투자한 8개의 스타트업 중 아이크로진 사운드짐 엔서 휴레이포지티브 사운더블헬스 헬스케어 관련 회사가 5개에 달한다.

네이버는 지난 14일 차의과대학교 차병원과 의료인 정보 제공에 관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차병원 소속 의료진의 기본 프로필과 진료과·전문분야 등 정보를 인물정보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네이버는 이미 서울대학교병원·연세의료원·강북삼성병원·삼성서울병원·한림대학교의료원의 의료인 인물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분당서울대병원·대웅제약과 의료·보건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개발에 협력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합작 벤처를 설립했다. 네이버의 관계사 라인 역시 일본에서 병원 검색·예약·진료·결제를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라인 닥터'를 서비스하는 등 메디컬·헬스케어에 대한 투자와 데이터 구축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지속 성장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이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운영하는 선별진료소에서 로봇을 이용한 원격 진료를 하는 모습 [사진=명지병원 제공]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이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운영하는 선별진료소에서 로봇을 이용한 원격 진료를 하는 모습 [사진=명지병원 제공]
이같은 네이버의 '헬스케어 행보'는 향후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미래 메디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아산나눔재단이 지난 2월 발간한 '디지털 헬스케어 스케일업 추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영향으로 헬스케어 기업은 세계적으로 집중 투자를 받아 지난해 상반기에만 54억 달러(한화 약 6조2000억원)를 유치했다. 2017년 연간 총 투자 금액과 맞먹는 규모로 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으로 투자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만은 역대 최대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시장 조사 기관 글로벌 '마켓인사이트' 역시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가 지난해 130조원(1064억달러)에서 연평균 29.6% 성장해 2025년 600조원(5044억달러)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네이버가 의료 시장에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네이버는 2017년부터 대형병원, 제약사, 바이오기업 등과의 협력을 통해 헬스케어 합작법인을 세우는 등 헬스케어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닦아왔다. 지난해 '데이터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려 헬스케어 관련 사업에 추진력을 얻게 된 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가 진짜로 노리는 것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의무실에서 감기 증상을 보이는 장병이 원격의료 장비를 통해 군의관에게 진료를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의무실에서 감기 증상을 보이는 장병이 원격의료 장비를 통해 군의관에게 진료를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헬스케어 시장에 투자를 확대하는 네이버가 진짜로 노리는 것은 '원격의료'라는 말도 나온다. 원격의료는 통신 기기를 이용해 원격지의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 시스템으로 차세대 헬스케어 시장의 핵심으로 꼽힌다. 원격의료는 비대면 의료 시스템이라 현행 제도나 환자들의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혔지만 코로나19가 '변곡점'이 됐다.

코로나19 이후 원격의료 업체가 매출이 폭증했다는 통계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원격의료 서비스 업체 텔라닥은 시장 수요 폭증으로 지난해 상반기 원격의료 매출 약 1억 달러, 이용자 수 약 7300만명을 기록했다. 2019년 상반기 매출 대비 147% 증가, 이용자는 5600만명에서 6개월 만에 1700만 명이 증가한 수치였다.

양상환 네이버 D2SF 리더는 "IT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치료제의 경우 미국, 영국,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일상 속에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며 "이번에 신규 투자한 이모코그는 효과 검증에 성공한 탄탄한 연구 실적과 사업 역량을 두루 갖춰 다양한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만의 특수한 의료 시스템,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 크기, 높은 규제 등으로 메디컬·헬스케어 분야 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네이버가 구글처럼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며 "유망 메디컬·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머지 않아 인수·합병 하는 사례도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내부적으로 의료 데이터가 쌓이고 원격의료가 본격 활성화되면 네이버가 병원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이른바 '네이버 병원' 형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