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경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가 2일 오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방송사 비정규 노동자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해고 사유를 정확히 설명해 주시는 분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퇴직금 수령에 관해 물었더니 ‘안 될 텐데 알아보겠다’는 답이 전부였습니다. 지난해 말 해고 당한 뒤 일자리가 없고 막막한 상황입니다”

2018년부터 2년 넘게 한 방송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 A씨는 “‘근로계약과 무관하다’고 적힌 프리랜서 계약서 때문인지 마지막 근무일 3일 전에 해고(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평소 국장에게 업무지시를 받고 일했지만 계약해지될 땐 정당한 사유조차 듣지 못하고 방송국을 떠나야 했다.

4일이면 비정규직 동료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당한 뒤 목숨을 끊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가 숨진 지 1주기다. 하지만 여전히 방송현장에는 ‘무늬만 프리랜서’인 방송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는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방송·미디어 산업 무늬만 프리랜서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토론회를 열었다. 부당해고를 입증하기 위해 생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던 이재학 PD 사례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전문가와 노동계는 “방송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하고 방송근로자의 법적 지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비정규직 몇 명인지도 몰라”

‘방송사 비정규직’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제작사에 고용돼 방송사의 간접고용 노동자와 같은 현장 스태프도 있고 방송사 안에서 일하는 CG·자막·MD(송출)도 있다. 대표적인 방송 프리랜서인 방송작가도 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가 없어 방송 비정규직 현황과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간한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담긴 청주방송 비정규직 실태조사가 국내 최초 방송사 비정규직 전수조사다. 김유경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지상파 3사는 비정규직 문제를 조사한 적도 공개한 적도 없다”며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밝힌 방송사 비정규직 실태를 대규모 방송사 실태로 확장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범 언론노조 전략조직국장도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발간하는 방송산업실태조사 보고서는 비정규직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사회는 지금 방송 비정규 노동자가 몇 명인지조차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현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모든 방송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부터 시작하자”며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근로계약 도입하자”

방송업 종사자가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은 판례는 여러 번 있다. 프리랜서 방송제작PD의 경우 지난 2014년 대법원이 “종속적 관계에서 지상파 방송사에게 근로를 제공해 근로자로 봄이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2011년 영상취재요원(VJ)에 관한 대법원 판례, 2017년 교통방송 객원PD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판례도 모두 방송 비정규직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다.

김 노무사와 김 변호사는 방송법에 방송근로자 개념을 도입할 것을 국회에 주문했다. 이를 바탕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근로계약 도입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화비디오법)은 2조에 ‘영화근로자’의 정의를 명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산업노조는 영화제작 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주장할 수 있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대중문화산업법)이나 예술인 복지법에서 각각 ‘대중문화예술인’이나 ‘예술인’을 정의하고 있지만, 여기에 포함되는 방송업 종사자는 예능작가·교양프로그램작가 등으로 극히 일부다.

김유경 노무사는 “방송제작 현장에서 근무하는 다양한 비정규직을 개별 판례의 판단기준에 대입해 하나하나 근로자성을 가려내기보다 방송산업 특성을 고려해 정의 규정을 신설해 근로자임을 명시하는 방향이 옳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