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만 해도 개발자 직원이 코스콤에 들어왔다가 몇 년 배웠다 하면 다른 IT 기업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죠. 그런데 요즘은 그쪽도 힘든지 반대로 한두 명씩 우리 회사로 오더라고요.”

얼마 전 코스콤의 한 부서장과 만나 채용 분위기 관련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말입니다. 경제 불황의 그림자가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번지면서 개발자들의 상황도 사뭇 달라진 모습인데요. 국내 주요 플랫폼 기업으로 꼽히는 일명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등 IT 기업에서 금융권으로 눈을 돌리는 개발자나 취업 준비생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네이버가 2023년 예비 개발자 육성을 위해 진행한 '네이버 캠퍼스 핵데이' 모습./네이버 제공

금융권 채용 분위기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은 코스콤으로 보입니다. 한국거래소의 IT 자회사 코스콤은 과거 2010년대 초반까지 금융과 IT 관련 최고 인재가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주식 거래를 위한 전반적인 인프라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전담하는 곳으로, 공공기관이라는 특성상 채용 안정성과 높은 수준의 연봉과 복지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경쟁 강도가 덜해 ‘신의 직장’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기 전후로 플랫폼 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최신 개발 트렌드를 익히고 억대 연봉과 스톡옵션 등의 혜택을 쫓아 IT 기업으로 취직을 희망하는 개발자와 취준생이 급증했습니다. 코스콤이 높은 연봉을 지급한다고 해도 네카라쿠배에 비하면 임금 메리트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죠.

일의 보람이 덜하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금융권 개발자의 경우 규제산업이라는 특성이 있고 주로 유지보수(SM) 위주의 개발을 맡아 ‘개발자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개발 능력이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고요.

하지만 최근 빠르게 경제가 위축되면서 IT 기업들도 취업 문을 닫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개발자 커뮤니티 오키(OKKY)가 신입 개발자 채용 동향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원 수 100명 이상의 IT 기업 18곳 중 올해 상반기에 신입 개발자 채용 계획이 없다고 답한 곳은 50%로 절반이었습니다. 규모가 더 작은 기업들(53곳)은 59.2%가 아직 채용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는 ‘경기 및 사업 현황이 좋지 않아서’가 38.03%로 가장 높았습니다.

여기에 IT 기업 개발자라면 감당해야 할 잦은 야근과 강한 업무 강도를 피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누릴 수 있는 금융권 메리트도 커졌습니다. 코스콤에 재직 중인 20대 개발자 A씨는 “회사에 대형 IT 기업에서 이직해 온 사람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데 무한경쟁에 지쳐서 코스콤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가 가장 크다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코스콤 채용 관련 유튜브 쇼츠. /유튜브 영상 캡처

실제로 잦은 이직 없이 한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은 개발자들이 코스콤에 대한 수요가 크다고 합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숨겨진 신의 직장’, ‘여의도 공무원’으로 부르며 코스콤이 취업하기 좋은 기업이라고 홍보하는 게시물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A씨는 “코스콤이 근무시간을 조정하지 못한다는 점을 뺀다면 다른 IT 기업보다 업무 강도가 덜하고, 급여도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개발자들이 2000년대처럼 금융권 취업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금융사를 취업 선호 회사로 하나둘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건 불과 10년도 안 된 시간 동안 빠르게 바뀐 개발자 채용 시장을 반영하는 모습입니다.

8년 차가 됐다는 30대 개발자 B씨는 “IT 기업들이 개발자 과포화 상태라 뽑더라도 경력직에 소수로, 최대한 밀도 있게 채용하고 있다. 비교적 금융권은 채용 허들이 더 낮다는 인식이 있고, 적당한 업무 강도에 워라밸도 좋아서 주위 이직을 생각하는 개발자들도 선회하는 분위기”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