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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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 네이버 대출에 이어 '쿠팡 대출'이 나올 모양입니다. 쿠팡은 지급결제 자회사인 쿠팡페이 산하에 '쿠팡 파이낸셜'을 만들고 최근 여신전문금융업 진출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여신전문금융업은 말 그대로 소비자로부터 예금을 받는 수신 기능 없이 돈을 빌려주는(여신) 역할만 하는 금융업입니다.

업계 안팎에선 쿠팡이 쿠팡 파이낸셜을 통해 자사 플랫폼에 입점한 사업자를 위한 대출 서비스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알리바바 등 전자 상거래업에 뿌리를 둔 글로벌 빅테크들은 이미 하고 있는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이런 '빅테크 대출'은 단기 유동성 확보가 중요한 개인 사업자들이 담보 없이 비교적 쉽고 편리하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수단입니다. 높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자금난에 시달리는 자영업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금융의 핵심 영역인 대출 서비스에 '빅테크 공룡'들이 깊숙이 파고들면서 이제까지와 다른 리스크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쿠팡, 할부금융업 등록 신청

금융권에 따르면 쿠팡 파이낸셜은 최근 금융감독원에 여신전문금융업의 일종인 할부금융업 등록을 신청했습니다. 신용카드업을 제외한 여전업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여서 신청 법인의 자본금이 200억원 이상이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등록을 거쳐 영업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쿠팡 파이낸셜은 이르면 이달 중 등록 절차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쿠팡페이 자회사인 쿠팡 파이낸셜은 올 1월 설립된 신생 법인입니다. 쿠팡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금융업 진출의 신호탄이나 다름 없는 회사입니다. 2015년 말부터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 쿠팡페이(옛 로켓페이)를 운영해온 쿠팡은 2019년 6월 쿠팡 파이낸셜 상표 출원, 2020년 4월 쿠팡페이 분사, 올 3월 미국의 핀테크 데카콘 '브렉스'의 공동 창업자인 페드로 프란체스키 이사 영입 등을 통해 금융업 진출을 차근차근 준비해왔습니다.

지급결제 서비스는 이미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2015년부터 간편결제 서비스를 운영해왔고, 2020년 8월엔 후불결제 서비스인 '나중결제'도 선보였죠. 나중결제는 쿠팡이 직매입한 상품에 한해 유료 회원이 일단 사고 결제는 나중에 나눠서 할 수 있는 일종의 '온라인 외상' 서비스입니다. 우수 회원이면 최대 한도가 200만원으로 높고 할부 기간도 최장 11개월까지 제공해 신용카드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출 서비스로 '락인' 노리는 빅테크들

여전업 등록은 쿠팡이 여기서 더 나아가 '금융의 꽃'인 대출 시장에 직접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쿠팡·쿠팡이츠 등 자체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입점한 개인사업자들에게 쿠팡이 직접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모델이죠.

대출은 아마존 알리바바 네이버 그랩 등 국내외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이 이미 진출해 있는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쿠팡의 롤모델인 아마존은 2011년 일찌감치 입점 업체에 운전자금을 빌려주는 대출 서비스 '아마존 렌딩'을 시작했습니다. 전통 은행과는 달리 사업 계획이나 부동산 담보, 과거 매출 자료가 아닌 아마존 플랫폼에 쌓인 사업자의 실시간 매출과 재고 상황, 판매 실적 데이터 등을 보고 대출을 내줍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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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 금융사와 협업해 대출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골드만삭스의 인터넷뱅크인 마커스와 손잡고 개인사업자에게 최대 100만 달러(약 13억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을 열어주는 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는 "아마존의 대출 서비스는 새로운 수익원일뿐 아니라 아마존의 핵심 경쟁력인 입점 사업자들이 아마존에서 계속 다양한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수익성보다는 '락인(잠금) 효과' 목적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국내에서도 빅테크의 대표주자 네이버가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을 통해 금융사와 연계한 대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쇼핑에 입점한 온라인 판매자를 위한 '스마트스토어 대출'에 이어 최근에는 네이버 검색과 지도에 가게를 등록한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 오프라인 사업자 250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무담보 신용대출 상품도 출시했죠.

빅테크 신용공급 규모, 내년이면 1469조원

쿠팡의 행보가 보여주듯 정보기술(IT) 태생 빅테크들의 금융 진출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강력한 플랫폼과 대규모 자본, 방대한 데이터를 갖춘 빅테크에 금융 서비스는 자체 생태계를 강화할 수 있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이죠.

몇 년 전만 해도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 후불 결제 등의 신용 공급 기능은 전통 금융사만 할 수 있는 핵심 영역으로 꼽혔습니다. 소비자의 신용도를 평가하고 부도 위험을 관리하는 것은 높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이용자 기반과 그만큼 방대한 데이터, 정교한 신용평가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갖춘 빅테크가 등장하면서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빅테크와 핀테크의 신용공급 규모. /국제결제은행(BIS) 자료
빅테크와 핀테크의 신용공급 규모. /국제결제은행(BIS) 자료

실제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빅테크·핀테크의 신용 공급 규모는 2013년 205억달러에서 2019년 7950억달러로 6년 새 40배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특히 이중에서도 빅테크 의 신용 공급 비중은 51%에서 72%로 늘었습니다. 금융이 주업인 핀테크 스타트업보다 IT 태생의 거대 빅테크가 새로운 금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입니다.

아시안뱅커에 따르면 이 규모는 내년이면 1조2300억달러(1599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빅테크 비중 전망치는 무려 92%, 1조1300억달러(1469조원)입니다.

'빅테크 대출'의 명암

빅테크의 대출 서비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립니다. 긍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최근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서 나온 한 워킹페이퍼는 빅테크의 무담보 사업자 대출에 대해 전통 은행 대출보다 규모는 작고, 이자율은 높으며, 대출자들이 만기 도래 훨씬 이전에 갚으며 더 자주 빌린다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단기 유동성이 필요한 개인사업자들의 대출 수요를 빅테크가 충족시켜주고 있다"며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대출자들이 역선택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 원활하게 신용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습니다.

BIS의 연구진도 2020년 펴낸 보고서에서 빅테크의 '데이터 기반 대출'이 경기 사이클에 취약한 기존 금융사 대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경기 침체로 부동산값이 떨어지거나 특정 산업의 전망이 나빠지면 담보대출이 대부분인 은행도 대출 공급을 줄일 수밖에 없지만 빅테크는 차주의 경쟁력이 데이터로 증명된다면 경기 사이클과 상관없이 무담보로 돈을 빌려준다는 것입니다.
'쿠팡 대출'도 온다…대출시장 파고드는 빅테크 고래들 [빈난새의 한입금융]
반면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빅테크의 신용 공급 규모가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금융 안정성을 뒤흔들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플랫폼'이라는 빅테크의 특성에 기인합니다. 유통·전자상거래·모빌리티 등 다양한 비금융 분야에서 광범위한 고객 기반과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한 빅테크가 금융 서비스까지 포괄하면서 자생적인 생태계를 강화할수록 어느 한 곳에서 리스크가 터졌을 때 안팎으로 전염될 가능성도 커질 수 있습니다.

BIS 산하 금융안정연구소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빅테크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플랫폼 안팎의 다양한 주체간 상호의존성"이라며 "이를 통해 빅테크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성장할 수 있지만 리스크 전염 효과도 커진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금융 불안 리스크를 식별할 수 있는 투명성이나 적시에 대처할 수 있는 대응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데이터를 독과점할 수 있는 빅테크가 금융시장에서도 지배적 지위를 점하고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다만 아직은 현실화되지 않은 우려에 불과합니다. 아마존 네이버의 사례나 쿠팡이 준비 중인 서비스에서 보듯 빅테크의 대출은 핵심 사업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의 성격이 강합니다. 금융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다만 빅테크의 몸집이 워낙 커지고 이들이 공급하는 신용 규모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불어나다 보니 이제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의 사후적 금융감독에서 사전적 방식으로 전환하고, 금융서비스 확장 경로를 예상한 동태적 감독기법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