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

대법원 2021. 4. 15. 선고 2021두30853 정보공개결정취소재결 취소

1. 사건의 배경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작측보고서)란 사업장의 유해물질 노출 관리 실태를 알 수 있는 문서다. ‘인체에 해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장’에서는 정기적으로 유해물질 노출 상태를 측정해, 이 보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해야 한다(산업안전보건법 125조). 그런데 삼성전자는 반도체 노동자의 업무상질병 판정 및 소송 절차에서 이 보고서를 계속 은폐해 왔다. 임의로 발췌·편집한 정체불명의 자료만 제출한 채, 그 이상은 보여줄 수 없다 했다. 노동부도 삼성의 영업비밀 주장을 이유로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법원의 문서제출 ‘명령’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1월, 시민단체 반올림은 직업병 피해 유족과 함께 삼성 온양공장 작측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한 법적 다툼을 거쳐 2018년 2월, 대전고법은 마침내 이 보고서에서 ‘근로자 이름’ 부분을 제외한 전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보고서 내용이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근로자의 생명·신체·보건과 직결된 정보로서 공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봤다. 노동부는 “이번 판결을 참조해 앞으로 작측보고서를 적극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반올림은 삼성 기흥공장 작측보고서에 대해서도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노동부가 약속대로 공개 결정을 하자, 이번에는 삼성전자가 행정심판을 걸어 왔다. 나아가 삼성은 돌연 이 보고서를 산업통상자원부로 가져가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신청했고, 산자부는 보고서 일부가 그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그러자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산자부의 국가핵심기술 판정 부분을 비공개하는 재결을 내렸다. 이에 반올림은 2018년 10월, 중앙행심위의 비공개 재결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 이 사건 쟁점 정보 및 정보공개법의 내용

행심위 재결에 따라 비공개된 부분(이하 ‘이 사건 쟁점 정보’)은 크게 ‘측정대상 공정’ 관련 정보와 ‘화학제품’ 관련 정보로 나눠볼 수 있었다. 전자는 공장에서 유해인자들이 노출되는 장소를 알 수 있는 정보였고, 후자는 공장에서 취급하는 화학제품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모두 그 공장 노동자의 직업병 피해를 예방·보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임에 틀림없었다.

한편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 보유 정보는 적극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면서도(3조),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는 예외적으로 비공개할 수 있다고 했다(9조1항7호 본문. 이하 ‘7호 본문’). 하지만 설령 그러한 정보라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9조1항7호 단서 가목. 이하 ‘7호 가목’)는 비공개할 수 없도록 예외의 예외를 뒀다. 이 소송에서 반올림의 주된 주장은 쟁점 정보가 7호 본문에 해당될 수 없고, 설령 그에 해당되더라도 사람의 생명·건강 보호와 직접 관련이 있는 정보이므로 ‘7호 가목’에 따라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3. 1·2심 판결의 요지

서울행정법원은 먼저 이 사건 쟁점 정보가 “공정·설비의 배치 정보, 해당 공정에 최적화된 화학물질 및 신기술·신제품의 특화 공정 등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7호 본문’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한 산자부의 국가핵심기술 판정은 “고도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사항에 관해 전문적인 판단을 한 것이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쟁점 정보가 ‘7호 가목’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노동자에게 작업환경측정 결과가 알려지고 있고, 7호 가목은 이미 입은 위해를 증명하기 위한 의도와는 맞지 않으며, 작측보고서의 ‘유해인자’ ‘측정치’ 등은 공개 대상이고, 작측보고서는 이미 업무상질병 판정에 입증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공장의 작업환경측정 결과가 모두 법정노출 기준 미만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원고패소. 서울행정법원 2020. 2. 19. 선고 2018구합80698 판결)

서울고법도 쟁점 정보 중 ‘공정명’을 제외한 정보에 대해서는, 1심 판결과 비슷한 이유에서 ‘7호 본문’에는 해당되지만 ‘7호 가목’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공정명’에 대해서는 “원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공정명만으로는 공정 배치방식을 유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 공개하라고 판결했다(원고 일부승소. 서울고법 2020. 12. 18. 선고 2020누37002 판결). 이 판결에 대해 원고(반올림)와 피고(중앙행정심판위원회) 및 피고보조참가인(삼성전자) 모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으로 모든 상고를 기각했다.

4. 평가

‘공정명’ 부분은 원고측에게 일종의 ‘마지노선’이었다. 그조차 비공개되면 공장 내에서 유해인자가 노출되는 장소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건 결론은 최악은 피한 셈이 됐지만, 판결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었다.

첫째, 이 사건 쟁점 정보를 통해 “공정 배치방식(lay-out)” “해당 공정에 최적화된 화학물질” “신기술·신제품의 특화공정”을 유추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산자부의 국가핵심기술 판정 이유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그러한 ‘유추’가 대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합당한 설명은 판결문에 보이지 않는다.

작측보고서에 대한 산자부의 국가핵심기술 판정은 그 자체로 위법한 것이었다. 삼성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결정을 받아내기 위해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신청했는데, 두 제도는 보호법익과 인정요건, 절차 및 효과가 모두 상이했다. 나아가 국가핵심기술 판정 절차는 엄연히 특정 ‘기술’에 대한 것인데 삼성전자는 특정 ‘문서’(작측보고서)를 대상으로 신청했다. 이처럼 삼성의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은 제도의 취지, 관련 절차 규정 등에 모두 반하는 것이었으나, 산자부는 삼성이 원하는 판정을 해줬고, 법원은 그 판정에 근거해 쟁점 정보를 비공개한 것이다.

설령 산자부 판정이 적법한 것이었다 한들, 그 판정에만 근거해 쟁점 정보가 비공개 대상 정보라고 판결할 수 있는가. 이런 판결이 계속된다면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결정은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 판정에 종속되고 만다. 국가핵심기술 판정은 산자부 산하 ‘산업기술보호위원회’가 하는데 그 위원회 구성이 철저하게 감춰져 있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삼성과 같은 회사들이 동 위원회를 적극적으로 악용할 유인이 생긴다. 2심 판결이 ‘공정명’ 부분에 대해 그랬듯, 법원은 보고서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산자부의 국가핵심기술 판정 결과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판단을 해야 했다.

둘째, ‘7호 본문’ 해당성과 관련해 법원은 쟁점 정보들로부터 ‘어떤 정보들이 유추될 수 있는지’와 ‘그 유추 가능 정보들이 회사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만을 판단했다. 원고측이 강조한 ‘공개 필요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7호 본문’ 해당성을 “공개를 거부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해 왔고, 그 판단은 “정보공개법의 입법 취지에 비춰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대법원 2011. 11. 24. 선고 2009두19021 판결 등). 따라서 그 판단은 대상 정보의 비공개를 통해 보호되는 이익의 존재 자체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익과 해당 정보 공개를 통해 보호되는 이익과의 ‘비교형량’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 대법원도 ‘고압송전선 관련 확약서’ 정보공개 사건에서 “이 사건 확약서의 내용·효력과 작성 경위, 이 사건 송전선 설치 공사가 인근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해 나아가 심리하지 않은 채 확약서가 7호 비공개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7호 관련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 했다(대법원 2020. 5. 14. 선고 2020두31408 판결)

셋째, 위 ‘7호 가목’ 해당성을 부인하며 내세운 근거들이 ‘현직 근로자들에게는 보고서가 모두 공개되고 있다’ ‘유해인자·측정치 등은 공개 대상이다’ ‘측정결과가 노출기준 미만이다’ 등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퇴직한 노동자와 협력업체 노동자에게도 공개돼야 하고, 유해인자·측정치 공개만으로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측정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측정 결과가 노출기준 미만이라 해 유해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음은 이미 여러 직업병 인정 판결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아울러 법원은 위 ‘7호 가목’을 “사업활동에 의한 위해 발생을 미리 방지하거나 위해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을 전제”한다고 단정하며, “산재소송에서 이미 위해를 입었음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문언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 했다. ‘7호 가목’은 기업의 영업상 이익이 국민의 생명·건강 보호라는 가치에 결코 우선될 수 없다는 매우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원칙을 구현한 것이다. 이 규정을 이렇게 제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법 문언상으로도 ‘이미 발생한 위해의 원인 규명’을 배제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이미 발생한’ 위해의 원인 규명 목적과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해의 예방 목적을 배타적으로 구별짓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이미 발생한’ 위해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 즉 그 위해와 어떤 사업 활동의 관련성을 규명하는 것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해의 예방에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법원은 “산재소송 당사자는 소송 절차에서 문서제출명령 등을 통해 이 사건 쟁점 정보를 제출받을 수 있다”고도 했는데, 이는 산재소송 절차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기업의 자료 은폐 작태에 대한 심각한 무지와 무관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번 판결은 매우 아쉽다. 여러 면에서 사업장 안전보건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법 해석 기준을 후퇴시킨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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