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을 계기로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산재노동자 보상·치료·사회복귀를 위한 산재보상보험제도 개선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산재처리 절차 개선과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전문가들이 바라본 산재보상보험제도 개혁 과제를 6차례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조현주 변호사(공공운수노조법률원)
조현주 변호사(공공운수노조법률원)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은 2009년 임신 중 근무하면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주야간 교대근무, 임산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물 같은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에 일정 기간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했다. 이 노동자들은 태아의 건강손상이 업무상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에서 다퉜다. 요양급여를 신청한 2012년 12월 이후 7년4개월이 지나서야 대법원에서 태아의 건강손상이 업무상재해라는 최종 판단을 받았다.

대법원은 2020년 4월29일 선고한 2016두41071 판결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해석상 임신한 여성노동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노동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산재보험법 5조1호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① 산재보험 제도와 요양급여 제도의 취지·성격 및 내용에 헌법의 여성근로자 보호(32조4항), 모성 보호(36조2항) 취지 등을 종합하면, 여성노동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지목했다. 또한 ② 산재보험법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되며, ③ 산재보험 발전 과정, 민사상 불법행위책임 증명의 어려움, 사업주의 무자력 등을 고려하면 산재보험으로 해결하는 것이 노동자 및 사용주 모두에게 바람직하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노동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해 모체의 일부인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는 업무상재해가 발생해 산재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성립했다면, 이후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됐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된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제주의료원 판결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에 관해 모(母)의 업무상재해로 포섭할 수 없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한 사례다.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노동자의 업무상재해에 포함되는지에 관한 최초의 판례고,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합헌적 법률해석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큰 판결이다.

그렇지만 제주의료원 판결은 노동자의 업무로 인한 2세 질환을 업무상재해로 보장하기 위한 종국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제주의료원 판결은 임신한 여성노동자의 업무에 기인해 모체의 일부인 태아의 건강이 손상된 경우 요양급여 지급에 관한 사안이다. 때문에 업무로 인한 2세 질환에 관한 여러 쟁점들이 입법을 필요로 하거나 또다시 지난한 사법부에서의 법적 다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무상재해가 되는 태아의 ‘건강손상’에 태아가 출생시 사망하거나 출생 이후 질병이 악화해 사망한 경우가 해당되는지, 업무상재해 인정 기준은 무엇인지, 요양급여 외 휴업급여·장해급여·간병급여·유족급여·상병보상연금·장의비·직업재활급여 같은 보험급여가 지급될 수 있는지 등을 입법으로 정해야 한다.

20대 국회 때 발의됐던 관련 산재보험법 개정안들은 임기만료로 폐기됐고, 이번 국회에 위 쟁점과 관련된 산재보헙법 개정안만 4개가 발의돼 있다. 헌법재판소는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는 피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을 지는 의무보험으로, 원래 사업주의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사업주로부터 보험료를 받아 그 재원으로 사업주를 대신해 피재근로자에게 보상해 주는 제도다(헌재 2009. 5. 28. 2005헌바20등 참조). 이처럼 산재보험 제도는 사업주의 무과실배상책임을 전보하는 기능도 있지만, 오늘날 산업재해는 이미 개별 기업차원의 안전위생시설의 기술적 개량만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고 재해의 위험을 모두 개별 사업주에 귀속시키는 것도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산업재해로부터 피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는 기능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헌재 2016. 9. 29. 선고 2014헌바254결정)”고 산재보험 제도 기능의 중요성을 설시했다.

국회는 산재로부터 피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제주의료원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더 이상 입법을 늦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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