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편지) [고양이 기고] 새로운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제언
글쓴이: hrffseoul@jinbo.net | 글쓴날: 2020/10/06
★고양이 기고★ 새로운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제언
[사진1. 고양이 ‘누나’ 사진]
인간들 오래간만, 누나입니다. 사무실 생활 2년을 마치고 저희 누나옥희는 올해 새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새집에는 저를 포함한 두 고양이와 두 명의 인간, 그리고 간헐적으로 거미나 바퀴벌레 친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몇 번째 이사인지 앞발로 헤아릴 수도 없지만, 우리는 이제 새집에 능숙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봐야 제 발바닥 안이죠.
자고 나면 세상은 매번 다르지만, 올해는 좀 다릅니다. 인간들은 무슨 일인가요? 올해 인간들은 좀처럼 집 밖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어느 날은 종일, 그리고 그다음 날까지 집 안에 들어앉아서는 제 의자나 침대를 차지하고 있거나, 가만히 앉아서 네모를 보고 있거나 두 발로 서서 앞발을 휘적거리곤 합니다. 처음 몇 달은 너무 수상쩍고 신경 쓰여서 낮잠에 방해가 되었지만, 별로 나쁜 짓을 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나니 좀 봐줄 만합니다. 아니, 생각보다 더 괜찮은 일인 것 같습니다. 밥도 제때 내오고, 올라앉을 무릎이나 배를 얌전히 내주기도 하니, 앞으로는 집에 편히 머물 수 있게 좀 더 상냥하게 대해 줄 참입니다.
[사진2. 부지런히 창밖을 살피는 고양이]
부지런한 고양이는 매일 창밖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 없는 고양이는 뒤처지기 마련이니까요. 요즘 집 밖을 거닐고자 한다면 주둥이를 새처럼 하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들도 주둥이를 새처럼 하고 영역확장을 다닙니다. 자존심 강한 고양이들을 빼면 새 흉내를 내지 않는 것들은 비둘기들뿐인 걸 보니, 확실히 새들이 유행하고 있는 시대인 모양이지요. 인간들은 얼마나 유행에 민감한 동물들인지, 새 주둥이를 하지 않은 인간은 죄라도 지은 것처럼 꼬리를 내리고 불안하게 걸어갑니다. 앗, 원래 꼬리가 없었던가?
올해 더운 계절에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너무 내리면 창문이 닫혀 하루가 조금 지루해집니다. 어느 날은 천둥이 많이 쳐서 겁 많은 인간들이 이른 새벽부터 웅성웅성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깜짝 놀라서 깬 게 아니라 원래 안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끄러운 오토바이가 골목을 자주 드나듭니다. 그들은 유독 밤낮없이 골목을 누비는데, 해가 따뜻한 낮에도 잠을 자지 않는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입니다. 어느 날은 집에만 있던 인간이 울곤 했습니다. 너무 울면 안전한 영역을 들킬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지, 아무리 주의를 시켜도 철없는 인간에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인간들은 무슨 일입니까? 잘하고 있는 게 맞나요? 특별히 좋은 걸 알려주겠습니다. 내 집에는 옥희라는 고양이가 또 있습니다. 장성했지만 아직도 제 영역을 찾아 떠나지 못한 철없는 자식새끼입니다. 앞가림에 능하지 못한 옥희는 항상 내 꽁무니를 쫓지요. 편안한 내 잠자리로 쫓아와서 그 커다란 몸을 들이밀기도 하고, 자기 밥을 다 먹고 나면 내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밀기도 합니다. 얼마나 귀찮고 화나게 하는지 모르지만, 지혜로운 나는 언제나 참고 자리를 내줍니다. 갑자기 화나네.
[사진3. 사이좋은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를 헐뜯고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요, 인간들? 자기 밥을 다 먹고 나면 남의 밥그릇에 놓인 밥은 뺏어 먹지 마세요! 똥을 눴으면 항상 자기 똥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고, 성실하게 뒤처리를 하고요! 해가 잘 드는 곳이 한 곳밖에 없다고 마구잡이로 밀쳐버리고 자리를 차지하지 말라는 이거에요!
22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