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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한국 기업 ESG의 대주제 ‘안전’돼야

ESG 경영은 환경과 사회, 기업지배구조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는 기업들의 전방위적 노력이다. 분야별 지표를 개발해 기업의 현 상황을 측정하고 공시하며 이에 따른 투자자들의 힘을 바탕으로 기업행동의 자율적·실질적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하지만 ESG 경영을 도입하는 목적은 기업이 속한 산업과 사회가 당면한 구체적 과제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와 기업이 먼저 고려해야 하는 ESG 주제는 무엇일까? 나는 단연코 Safety, 곧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라고 생각한다. 많은 한국 기업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자신이 속한 산업의 최정상에 서 있지만 그 영광의 반대편 그늘은 어둡고도 깊다. 우리 기업의 성공은 OECD 최고 수준의 산재 사망, 사고율 국가라는 오명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아파트 건설 현장과 조선소 도크에서는 오늘도 노동자들이 떨어지고 끼이고 깔려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판교의 지식노동자들은 조직 내 집단따돌림과 괴롭힘에, 병원에서는 신임 간호사들이 선배들의 ‘태움’에 정신과를 찾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역설적이게도 그 답이 우리 기업이 이뤄낸 과거의 성공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찬란한 성공 경험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비용효율성 중심의 선진국 따라잡기 경영 체계에서 작업 현장 안전장치는 추가 비용에 불과하며 현장 근로자는 지시와 복종의 대상일 뿐이다. 성공의 기반이 됐던 돌관(돌파관철)작업과 크런치 모드, 일사분란한 군대식 조직문화는 이제는 덫이 돼 우리 기업들의 미래를 향한 도약을 가로막는다. 최소한의 안전, 건강,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일터에서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품과 공정의 혁신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한국 기업들이 열망하는 창조와 혁신을 위한 가장 첫 걸음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한 시스템과 문화를 먼저 갖추는 일이다. 그것이 둘러가는 길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미래 경쟁력을 위한 준비라는 것에 모두가 합의하는 것이다.

ESG 경영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준비하는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먼저 기업들은 개별 사업장의 산업안전과 보건투자 현황을 구체적 지표로 평가하고, 거래소는 이를 기업 ESG 공시와 지속 가능 경영보고서에 주요 항목으로 반영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산업안전지표와 공시를 바탕으로 장기적 가치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을 선별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금융뿐 아니라 국민연금과 기업금융도 산업안전 및 보건지표들을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ESG 경영이 기업생태계 전반에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대기업 공급망 내의 중소기업과 하청기업에 대한 협력과 지원도 강화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중대산업재해 감축을 위해 기존 산업안전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정책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위에 제시한 내용이 그 로드맵에 포함돼 기업의 경영 체계에 안전을 이식하는 노력들이 ‘Safety in ESG’라는 큰 구호하에 펼쳐진다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라는 당연한 명제를 우리가 곧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박선현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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