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 칸 미국 FTC위원장
리나 칸 미국 FTC위원장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력이 날로 막강해지고 있다. 작년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은 큰 폭의 이익 성장과 주가 상승을 이뤄냈다. 빅테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더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각국 정부가 빅테크의 막강해진 힘을 통제하기 위해서 각종 규제책을 마련하고 있는 이유다.

먼저 유럽연합(EU)이 온라인 플랫폼 투명성·공정성 규칙을 마련하고, 플랫폼 사업자의 금지 행위를 규정한 법안(Digital Market Act)을 제정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뒤이어 미국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빅테크 규제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바이든은 미국의 반독점 기구인 FTC(연방거래위원회)위원장으로 '아마존 저격수'로 명성을 떨친 리나 칸(33)을 임명했다. 이 뿐만 아니다. ‘구글 저격수’로 불리는 조너선 캔터를 법무부 반독점국장에, 빅테크 기업의 분할을 촉구해온 팀 우를 대통령 기술·경쟁정책 특별보좌관에 발탁했다. 리나 칸, 조너선 캔터, 팀 우의 삼각편대는 빅테크를 이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강력한 메시지로 읽힌다.

리나칸이 이끄는 FTC는 작년 말 아마존의 핵심 사업인 클라우드(가상서버) 사업에 대해 반독점 조사를 시작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리나 칸은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거대 플랫폼의 특성을 감안한 새로운 경쟁법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한 인물이다. 과연 리나 칸은 세계 최대의 기업 중 하나인 아마존을 옛 스탠다드 오일처럼 분할할 수 있을까. 그는 논문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미국의 향후 반독점 정책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서 리나칸의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아마존은 싸게 파는데 뭐가 문제지?

아마존에 대한 칸 위원장의 빅테크에 대한 시각은 그의 논문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2017년 초 로스쿨 재학 중에 아마존의 반독점 패러독스를 썼다. 이 논문은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미국의 독점법을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예일대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칸이 주목한 것은 아마존은 더는 '약탈적 가격'을 통해서 독점 지위를 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의 경쟁법은 독점을 판별할 때 가격 결정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이 시장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경우에 독점이 성립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로버트 보크라는 인물과 관련이 있다. '반독점 패러독스'의 저자인 그는 독점기업을 우세한 시장지위를 이용해 경쟁을 억압하는 기업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가격을 부당하게 인상할 때 독점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라도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면 독점이 아니다'는 사고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인정되는 대법원 판결의 기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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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로버트 보크의 시각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게 칸의 해석이다. 그가 보기에 빅테크의 상황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논문에서 "아마존의 지배력이 경쟁에 미치는 잠재적인 위협은 가격과 산출량을 통해 평가할 때는 인식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아마존은 시장 가격을 높이지 않고 낮게 유지하고 있다. 빅테크 덕분에 가격이 낮아지니 소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빅테크는 소비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빅테크는 왜 가격을 여전히 낮게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제프 베조스가 선택한 아마존의 성장 전략과 관계가 깊다.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은 오로지 성장이었다. 적자를 보더라도 매출을 키우는 게 아마존의 목표였다. 대표적인 서비스가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이다. 이 서비스가 처음 시작됐을 때 연 79달러(현재 119달러)를 내면 무료로 이틀 안에 배송해줬다. 이후에 음악과 영화, e북을 번들로 제공하기도 했다. 배송기간은 계속 줄어 최근엔 당일배송도 가능해졌다.

2011년 연구에 따르면 이때 비용이 90달러였다. 79달러를 받았으니 가입자당 11달러의 손해를 봤던 셈이다. 하지만 프라임 멤버가 되면 아마존 사이트에서 쓰는 돈이 150% 늘었다. 심지어 프라임 서비스 가입자들은 다른 쇼핑몰도 잘 이용하지 않았다. 79달러를 회수하기 위해선 아마존에서 더 많이 소비하는 게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기준 프라임멤버는 약 1억500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서비스 연회비로만 20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셈이다.

또 아마존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 기업일 뿐만 아니라 마케팅 플랫폼이자 배달 및 물류 네트워크이고, 결제 서비스이면서 도서출판사다. 영화 제작사임과 동시에 세계 최고 클라우딩 컴퓨팅 서비스 업체이기도 하다. 거대한 인터넷 경제의 인프라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특정 분야에서의 아마존의 경쟁업체가 아마존의 고객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낳고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경우 아마존이 프라임비디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최대 경쟁자가 됐다. 하지만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최대 고객 또한 넷플릭스다.

◆아마존 겨냥하는 리나칸

칸 위원장이 이끄는 미국 FTC는 '독점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FTC는 엔비디아가 400억달러(48조원)에 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 암(ARM)을 인수하는 데 제동을 걸었다. 메타의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인수 건도 고소장을 제출했고, 록히드마틴이 로켓 엔진 제조업체인 에어로젯 로켓다인 홀딩스를 44억달러(약 5조 2000억원)에 인수하는 건도 소송을 진행키로 했다. 모두 거대 기업의 시장 독점이 염려된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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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목받고 있는 행보는 아마존의 클라우드 사업인 아마존웹서비스(AWS)에 대한 반독점 조사다. 아마존 저승사자로까지 불리는 그가 전 세계 클라우드 시장에서 41%를 점유하고 있는 AWS를 정조준한 사건이어서다. AWS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사의 소프트웨어 진입 등을 방해했는지가 이번 조사의 핵심이다. 이번 조사는 의미심장하다. 아마존은 배송, 결제,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통해 인터넷 경제의 핵심 인프라 기업이 되었고, 그 중심에 AWS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AWS에 시장지위 남용혐의가 있다고 판결이 날 경우 아마존은 모든 사업 영역에서 이해상충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 이 조사는 그가 논문에서 지적한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사가 모아둔 정보를 지배적 플랫폼은 경쟁자의 입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빅테크 독점에 대한 규제책 마련을 주장하는 이들의 아이디어의 근저에는 실리콘밸리가 정부를 주축으로 탄생한 곳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납세자들의 세금을 발판 삼아 혁신을 일궈낸 곳이란 의미다. 현재는 생활에 없어선 안 될 GPS 지도에서부터 터치스크린, 인터넷에 이르는 모든 것들은 미 국방부가 개발을 직접 진행했거나 자금을 지원한 연구를 통해 탄생한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실리콘밸리는 그 후에 상업화를 추진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리나칸은 어떤 점에서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보고, 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을까. 칸은 우선 소비자 복지에 초점을 맞춘 지금의 반독점 프레임워크를 경쟁을 유도하고 시장 구조를 보조하는 데 중점을 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1)기업 구조가 반경쟁적 이해상충을 일으키는지 2)서로 다른 사업분야에 있어서 시장 이점을 교차 활용할 수 있는지 3)온라인 플랫폼 경제가 약탈적 가격 정책을 장려하고 자본시장이 이를 허용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지배적인 플랫폼이 수직적으로 통합하는 걸 금지하는 기존의 독점 금지 원칙을 복원하면 시장에서 경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한다. 예를 들어 이해상충이 일어나는 사업 분야를 분할하도록 명령하는 게 대표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아마존을 전력망 또는 통신망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리나칸은 "정부가 공공의 목표를 위해 사기업의 활동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책 수단으로 1)가격과 서비스의 무차별 공급 2)수수료 상한 설정 3)투자량 결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아마존은 자사의 인프라를 이용하는 기업이나 소비자에게 차별을 둘 수 없다.

◆리나칸은 성공할까?

현재 리나칸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바이든 정부는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가 경제 전반을 지배할 경우 경쟁의 부족을 가져오고, 이는 경제 전체를 병들게 할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낮은 가격으로 인한 소비자 혜택이 크더라도 경쟁이 사라지면,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에서다. 빅테크의 시장지배력 확대와 경제적 불평등 확대는 경쟁의 부족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바이든 정부도 리나칸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FTC위원장으로 앉혀서 빅테크 질주에 제동을 걸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하지만 리나 칸이 풀어가야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미국의 반독점 법체계 자체를 다시 써야 하는 이슈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기업가치에 훼손이 되는 결정을 내렸을 때 전세계에 포진한 주주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지나친 규제가 소비자 후생을 줄일 것이라는 반발도 거세다. 기업분할 명령제도를 시행할 경우 그동안 그동안 플랫폼 운영자가 다른 분야에서 이윤을 내는 구조 덕분에 이용자들이 공짜로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던 구조에 균열이 갈 수 있어서다. 이 탓에 플랫폼이 사용료를 받게 되면 소비자들이 누리던 혜택이 줄어들 소지가 크다. 문어발 확장을 막기 위한 극약처방이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 셈이다.

칸 위원장은 2018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나 사용자로서 우리는 테크 기업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그리고 기업가로서 우리는 그들의 힘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그들의 지배력을 평가하고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워크와 새로운 용어가 필요합니다."

(“As consumers, as users, we love these tech companies,” she said. “But as citizens, as workers, and as entrepreneurs, we recognize that their power is troubling. We need a new framework, a new vocabulary for how to assess and address their dominance.”)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다 같이 잘 살자는 '공동부유론'을 앞세워 빅테크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IT공룡의 시장가치가 곤두박질 친 이유다. 한국 공정위도 2년 넘게 '디지털 공정경제 달성'을 화두로 내걸고 있다.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거대 플랫폼 규제에 힘을 쏟고 있다. 리나칸의 도전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경쟁당국의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빅테크의 본산인 미국에서 강력한 플랫폼 규제가 실현될 경우 다른 나라의 경쟁당국도 제재수준을 끌어올리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IBM은 12년, MS는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반독점 조사와 재판을 벌였다. 아마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그 긴 여정의 초입인 셈이다. 리나칸이 "소비자 복지 위주의 경쟁법 구조를 경쟁과정과 시장구조에 대한 접근법으로 대체시킬 필요가 있다"는 그의 야심 찬 기획을 완수해 미국 반독점 규제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인가. 아니면 침몰하는 바이든 정부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말 것인가. 리나칸이 이끄는 FTC의 행보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