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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등장한 '오래된 미래' 메타버스…'세컨드 라이프' 재탕일까

최근 떠오르는 '메타버스'…일각에선 "마케팅 용어에 불과해"
"단순히 현실을 가상으로 옮겨선 과거 실패 사례 반복"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2021-03-24 07:00 송고
'메타버스'의 시초로 평가 받는 서비스 '세컨드 라이프' (세컨드 라이프 홈페이지 갈무리) © 뉴스1
'메타버스'의 시초로 평가 받는 서비스 '세컨드 라이프' (세컨드 라이프 홈페이지 갈무리) © 뉴스1

'메타버스'가 IT 업계 화두다.

가상,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쉽게 말해 가상세계를 말한다. 최근 새롭게 주목받는 IT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지만, 사실 메타버스는 '오래된 미래'다.
이미 가상세계에서의 삶을 말하는 서비스들은 수없이 등장했다 말없이 사라졌다. 2003년 '세컨드 라이프'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메타버스에 대해 마케팅 용어일 뿐이라며 냉소적 시선을 보낸다.

메타버스는 '세컨드 라이프'의 재탕에 불과할까. 아니면 현실의 연장선으로 자리 잡을까.

◇30년 전 시작된 오래된 미래 '메타버스'

메타버스 개념은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발표된 미국 작가 닐 스티븐슨의 SF 소설 '스노우 크래시'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현실과 가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확장된 세계를 나타내는 기술로 소개된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인터넷 등이 결합해 만들어진 기술인 셈이다.
이후 메타버스 개념은 실제 서비스로 구현된다.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가 2003년 등장한 '세컨드 라이프'다.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과 달리 목표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용자를 가상세계 안에 던져놓고 그 안에서의 교감과 삶에 집중한다. 이용자들은 자신을 대리하는 아바타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실제 현실처럼 게임 내 가상화폐를 통해 가상의 기업을 차리고, 부동산을 사고팔 수 있다. 옷이나 가구 같은 아이템을 만들어 거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벌어들인 가상 화폐를 실제 현금으로 환전할 수도 있다.

미국 개발사 린든랩이 만든 '세컨드 라이프'는 가상세계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린든랩 제공) © 뉴스1
미국 개발사 린든랩이 만든 '세컨드 라이프'는 가상세계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린든랩 제공) © 뉴스1

하지만 '세컨드 라이프'는 현재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중·후반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현실의 시뮬레이션 같은 가상에서의 삶보다 현실의 관계망을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데 더 관심을 쏟았다.

싸이월드 미니라이프를 개발한 이득우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는 "(세컨드 라이프를 비롯해) 이전까지의 메타버스 서비스는 기술적으로 가상세계 공간에 현실세계를 복제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서비스적인 가치를 주는 데 실패했다"라고 평가했다.

'세컨드 라이프' 이후에도 아바타를 통해 가상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내에서는 싸이월드가 대표적이며, 집과 마을을 꾸미는 '동물의 숲' 등의 게임도 거론된다.

특히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가상세계에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온라인 기능을 바탕으로 현실과 상호작용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메타버스 개념에 들어맞는 서비스로 주목받는다. 정치인이나 기업들은 '동물의 숲'을 활용한 홍보 활동을 활발히 벌인다. LG전자도 지난 21일 '동물의 숲'을 활용한 올레드(OLED) TV 마케팅을 선보였다. 다른 이용자들이 방문할 수 있는 가상의 섬을 만들어 자사 제품과 관련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이다.

'동물의 숲'을 활용한 LG전자 마케팅 (LG전자 제공) © 뉴스1
'동물의 숲'을 활용한 LG전자 마케팅 (LG전자 제공) © 뉴스1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와 함께 각광

코로나19 이후 메타버스 개념은 더욱 각광 받고 있다. 비대면 문화가 주류가 되면서 현실 세계를 대신한 가상세계에서의 활동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에픽게임즈의 인기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에서는 실제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방탄소년단(BTS)도 지난해 9월 '포트나이트'에서 싱글 곡 '다이너마이트'의 안무를 처음으로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공개된 BTS의 '다이너마이트' 안무 버전. (캡처) © 뉴스1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공개된 BTS의 '다이너마이트' 안무 버전. (캡처) © 뉴스1

'로블록스'도 메타버스의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로블록스'는 이용자가 직접 게임을 만들거나 다른 이용자가 만든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구현한 샌드박스 기반 오픈월드 게임 플랫폼이다. 가상세계를 직접 창조하고 그 안에서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물건을 만들어 사고파는 등 경제 활동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메타버스에 다가선 서비스로 평가받는다. 또 유튜브 같은 수익 배분 모델을 갖춰 이용자들이 적극적으로 가상세계를 만들도록 독려한다. 월 활성 이용자 수(MAU)는 약 1억5000만명. 지난 10일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로블록스의 시가총액은 385억3800만달러(약 43조4700억원)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제트가 만든 '제페토'가 메타버스 서비스로 꼽힌다. 제페토는 Z세대를 겨냥한 AR 아바타 서비스로, 얼굴인식·AR·3D 기술을 활용해 커스터마이징한 자신만의 개성 있는 3D 아바타로 소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AR 아바타 의상을 직접 만들어 판매할 수도 있다. 글로벌 가입자 수는 약 2억명을 넘어섰고 해외 이용자 비중은 90%, 10대 이용자 비중은 80%에 달한다. 현재 구찌 등 다양한 글로벌 사업자들과 IP(지식재산권) 제휴를 진행 중이다.

JYP 아이돌그룹 '트와이스'의 제페토 아바타 모습 (네이버제트 제공) © 뉴스1
JYP 아이돌그룹 '트와이스'의 제페토 아바타 모습 (네이버제트 제공) © 뉴스1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메타버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소니는 '포트나이트' 제작사 에픽게임즈에 2억5000만달러(약 2820억원)를 투자하고 회사 지분 1.4%를 사들였다.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결합한 3D 가상세계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목적이다. 빅히트·YG엔터테인먼트는 제페토에 120억원, JYP엔터테인먼트는 5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엔씨소프트는 K팝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유니버스'를 지난 1월 글로벌 134개국에 출시했다. IT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온·오프라인 팬덤 활동을 모바일에서 즐길 수 있도록 꾸려졌다.

◇마케팅 용어?…"현실 복제와는 다른 가치를 줘야 성공"

하지만 메타버스 서비스가 이전에 등장한 가상세계 서비스들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실 세계처럼 상품을 만들어 사고 팔고, 실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등 이용자의 생산과 참여가 부각되지만, 이는 이미 '세컨드 라이프' 시절에도 선보였던 기능들이다. VR·AR 기기들의 발전과 함께 확장된 현실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기술에도 초점이 맞춰지지만, 해당 기기들은 아직  대중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메타버스가 크게 새로울 것 없는 서비스들을 포장하기 위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서비스들이 '세컨드 라이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단순히 현실을 가상으로 옮기는 것 이상의 정교한 장치와 기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게임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는 "현재 메타버스 서비스들이 코로나19 상황을 맞아 붐을 일으키고 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서비스가 되려면 뚜렷한 수익 모델을 갖춰야 한다"며 "'포트나이트'에서 공연하는 게 오프라인 공연보다 매력적인지 의문이고 '세컨드 라이프' 등 과거 개념과 다른 뭔가가 나와줘야 한다. 가상 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로블록스'는 이용자의 생산과 참여가 가능한 정교한 시스템을 갖춘 메타버스 서비스로 평가받는다. (로블록스 블로그) © 뉴스1
'로블록스'는 이용자의 생산과 참여가 가능한 정교한 시스템을 갖춘 메타버스 서비스로 평가받는다. (로블록스 블로그) © 뉴스1

이득우 교수는 "로블록스가 뜨는 배경에는 사용자가 자신만의 공간에서 정교한 시스템에 기반한 생산적인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있기에 의미가 있다"며 "단순 디지털 트윈 개념에서 메타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세컨드 라이프'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생각되고 메타버스 세계 안에서 정교한 놀이와 생산 체계가 있어야 예전과 다른 새로운 개념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게임 엔진의 발전으로 '세컨드 라이프' 수준의 메타버스는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총론의 관점에서는 동일하겠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결국에는 메타버스 내에서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와 같은 정교한 제작 시스템으로 가치 창출이 가능하도록 실질적인 기획력과 기술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분야를 진정 활성화하려면 이제부터라도 총론 수준의 논의는 지양하고 각론 수준에서 심화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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