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동판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40)씨는 지난달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2년 계약이 만료되면서 임대인과 재계약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임대인은 이씨에 즉각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임법)의 임대료 인상률 상한인 5% 인상을 요구했다. 물가 상승 등으로 임대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경기 수원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모(47)씨는 최근 임대인으로부터 재계약 시 그간 없던 관리비 10만원을 신설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상임법으로 월세를 5% 이상 인상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관리비 명목으로 월세를 더 올려받겠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자영업자 입장에선 한 달 10만원이 적지 않은데, 건물주는 10만원 더 파시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 후 재계약이나 신규계약에서 건물주들이 임대료 인상에 나서면서 자영업자들이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아직 경기가 제대로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에선 임대료 인상을 제한한 상임법을 우회하기 위해 관리비를 신설하거나 인상하는 수법이 유행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러스트=손민균

3일 정부 등에 따르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건물주의 과다한 임대료·보증금 인상을 제한하기 위해 그 인상분이 5%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매년 인상이 가능하나 계약 기간 내 인상은 임대인이 필요성을 입증해야한다.

건물주들은 금리와 물가 상승에 따라 임대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난데다 인건비 등이 오르면서 상가 관리에 드는 제반 비용이 모두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임대료를 올리지 않은 곳도 많은만큼 정당한 인상이라고 항변한다.

서울 삼청동에 3층 짜리 건물을 소유한 임모(58)씨는 “지난 2년동안 착한 임대인 운동에 참여해 계약기간이 만료한 임차인들에도 임대료를 한푼도 인상하지 않았다”면서 “일상회복으로 자영업 경기도 나아지고 있는데다 모든 물가가 오르고 있으니 임대료도 이에 맞춰 인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거리두기 여파와 물가 상승으로 운영위기를 겪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식재료 등 모든 비용이 오르고 있는데 이에 더해 고정비용인 임대료까지 상승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상임법을 적용받지 않는 신규계약의 경우 시세보다 훨씬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거나, 임대료를 올려받지 못하니 관리비를 올리는 경우도 적지않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이모(33)씨는 “일상회복 이후 2호점을 내려했는데, 신규계약을 하려고 하니 비슷한 동네인데도 월세가 20만원 이상 비싸서 계획을 접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37)씨는 “건물주가 이번에 임대인 전부에게 모두 관리비를 10만원씩 올리겠다고 통보했다”면서 “인건비가 올랐다는 것이 이유인데, 임대 계약기간이 남은 상인들이 많아 임대료 인상이 어려우니 꼼수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한 자영업자 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자영업자들의 대출빚은 급증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말 기준 909조6000억원으로, 지난 2012년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지난 2019년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684조원이니 코로나19 기간 동안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금융 채무가 무려 225조원, 32.8%나 불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정부의 코로나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받은 대출만 해도 133조4000억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