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 그 자체였다"… '공식화폐 비트코인' 엘살바도르의 첫날

7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스타벅스의 '비트코인 결제' 안내 표시. /사진=로이터

"재앙 그 자체였다."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가상자산) 비트코인을 공식 화폐로 채택한 7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의 'B-데이'(비트코인데이)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비트코인 사용에 필요한 전자지갑 '치보'(Chivo)가 서버 폭주로 이용이 일시 중단되고, 공식화폐 채택을 앞두고 치솟던 비트코인 가격은 폭락했다. 또 수도 산살바도르에서는 대규모 반대 시위가 발생하는 등 각종 문제가 쏟아져 나왔다. 비트코인을 '진짜 돈'으로 만들겠다던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의 야심 찬 계획이 시행 첫날부터 삐걱거린 셈이다.

전자지갑 '치보' 출시 몇 시간 만에 먹통

7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전자지갑 '치보' 홍보팀이 수도 산살바도르의 한 치보 현금 인출기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치보 서버 오류로 인출기를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사진=로이터

비트코인은 이날 자정(한국기준 7일 오후 3시)부터 엘살바도르 공식 화폐가 됐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현재 '치보' 등록시 3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제공하는 등 비트코인 사용 유도에 2억2500만달러(2622억1500만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다. 또 치보 현금인출기(ATM)를 이용해 비트코인을 달러로 환산, 수수료 없이 현금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하루 전까지 엘살바도르는 미국 달러를 자국 통화로 사용해왔다.

부켈레 대통령은 치보 현금인출기를 통해 연간 4억달러(4600억원)의 송금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고, 은행에 계좌가 없는 사람도 치보를 통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며 치보 등록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엘살바도르인 대부분이 이날 오전 비트코인을 '돈'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법정통화가 된 지 몇 시간 만에 서버 폭주로 앱 스토어에서의 치보 다운로드 및 이용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부켈레 대통령은 치보 서버용량을 늘리는 동안 일시 중단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 조치 이후 이날 낮부터 치보의 사용은 가능해졌다. 하지만 현재 치보는 화웨이의 훙멍 운영체계(OS)와 애플의 iOS 기반 스마트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삼성의 갤럭시 등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비트코인 채택 첫날 산살바도르 안티구오 쿠스카틀란 광장에 있는 치보 현금인출기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주민들이 치보 앱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자 휴대폰만 응시했다고 비꼬기도 했다.

7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한 여성이 비트코인의 공식화폐 채택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AFP

찬반 논쟁 여전…시민 1000여명 반대 시위치보 오류에 엘살바도르 내 비트코인 반대 여론은 한층 거세졌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산살바도르 전역에서 약 1000명이 참석한 비트코인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대법원 앞에서 "비트코인 도입 반대"를 외치며 타이어를 불태우는 등 화염 시위에 나섰다. 야당 의원들은 검은색의 반(反)비트코인 옷을 입고 의회에 참석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트위터 영상 속 한 시위대는 치보 현금인출기를 가리키며 "비트코인을 이용해 (우리의 돈을) 훔치려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시위대는 "비트코인은 부자들을 위한 통화로 투기 세력에게나 적합하다"며 비트코인 도입을 반대했다.

엘살바도르의 경제 고문인 루이스 멤브레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치보' 운영 안정성을 문제 삼으며 "치보 오류로 비트코인을 달러로 전환할 수 없는 경우 시민들의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B-데이 첫날은) 재앙 그 자체였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시민들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엘살바도르 국제트럭운전자협회도 정부의 기업 비트코인 허용 의무화 방침에 "경제적 자유를 앗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엘살바도르인 모두가 비트코인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시민들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스타벅스, 맥도날드, 피자헛 등에서도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시물을 올리며 비트코인 도입을 환영했다.

산살바도르에 사는 루이스 알레만(61)은 WSJ 인터뷰에서 "항상 모든 일에는 결함이 있기 마련"이라며 미국에 있는 자녀로부터 치보를 통해 비트코인을 송금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산업용 철판 제조업에 종사하는 페르난도 아바렝가도 "어머니는 비트코인이 악마의 것이라고 믿으시지만 장점이 많다"며 이번 비트코인 도입이 2001년 미국 달러 도입 이후 엘살바도르의 금융혁신과 다변화를 위한 또 다른 단계라고 봤다.

/사진=코인데스크 홈페이지 갈무리

암호화폐 줄줄이 폭락…부켈레 대통령은 '줍줍' 엘살바도르의 혼란은 암호화폐 시장에도 영향을 줬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도입이 하루가 지난 8일 오후 3시 현재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거래 대비 12.15% 추락한 1BTC당 4만6292.23달러에서 거래되고 있다. 공식 도입을 앞두고 5만2000달러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은 치보 오류에 급락세로 전환, 한때 최대 17%까지 폭락하며 4만3000달러까지 밀렸다.

이 여파로 대표 알트코인인 이더리움, 카르다노, 바이낸스코인, 리플 등의 가격도 추락했다. 최근 강한 오름세로 4000달러 도달을 앞두고 있었던 이더리움은 12.76% 빠진 3421.91달러에서 움직이고 있다. 카르다노는 13.67%, 바이낸스코인은 17.39%, 리플은 20.65% 등이 빠지며 낙폭을 확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날 하락세의 근본적인 원인을 트레이더들의 매도 움직임으로 꼽았다.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애널리스트는 "일부 트레이더들이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도입으로 가격이 이미 고점에 도달했다고 판단, 매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편 엘살바도르 정부는 이를 저가 매수 기회로 활용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 가격이 추락하자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150개를 추가 매수했다고 밝혔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B-데이'를 앞두고 비트코인 400개를 사들인 바 있다. 이로써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보유 수는 550개로 늘었다.

/사진=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트위터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