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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중공업·유통 등 '업종 불문' 뛰어든다…뜨거운 디지털 헬스케어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22.04.08 10:54:16
  • 최종수정 : 2022.04.14 17:04:16
롯데지주는 최근 롯데헬스케어를 설립하고 건강관리 시장에 진출했다. (롯데헬스케어 제공)

롯데지주는 최근 롯데헬스케어를 설립하고 건강관리 시장에 진출했다. (롯데헬스케어 제공)

지난 4월 6일 남궁훈 카카오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동체 상생방안을 내놨다. 소상공인 등을 위해 5년간 3000억원 규모로 상생기금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문어발식 계열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30~40개 계열사를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카카오가 이처럼 이미 자리매김한 영역에서 적지 않게 발을 빼려 하는 가운데, 신규 진출에 속도를 내는 분야가 있다. 바로 헬스케어다.

카카오는 지난 3월 17일 카카오헬스케어(가칭) 법인을 새로 만들며 헬스케어 산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조직을 지휘하는 이는 황희 헬스케어CIC 대표다. 지난해 12월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전담할 헬스케어CIC를 설립하고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영입했다. 황 대표는 이지케어텍 부사장으로서 클라우드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선보였다. 2019년 미국의료정보학회(HIMSS)로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리더 50인에 선정될 정도로 업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CIC는 석 달여간 법인 설립을 준비해왔고, 행정 절차를 마치는 대로 본격적인 채용과 사업 확장에 나선다. 카카오의 헬스케어 진출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헬스케어 시장의 급성장세를 예고한다.

시장조사업체 GIA에 따르면, 2020년 1525억달러(약 180조원) 규모인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연평균 18.8%씩 성장해 2027년 5088억달러(약 610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이보다도 더 빠른 2026년 6394억달러(약 750조원) 시장을 예측했다. 이에 구글·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도 관련 시장에 앞다퉈 뛰어드는 형국이다.

국내 시장 전망도 밝다. 보스톤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국내 헬스케어 시장은 2020년 237조원에서 2030년 450조원으로 연평균 6.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디지털 헬스케어는 포스트 코로나·4차 산업혁명 시대와 맞물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된다.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에 공을 들이는 국내 기업이 놓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뜻이다.

▶카카오, 플랫폼 적극 활용

▷네이버, AI 기술로 승부

디지털 헬스케어에 뛰어든 기업은 카카오뿐 아니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은 ‘업종불문’하고 디지털 헬스케어를 신성장동력으로 고민하는 듯 보인다.

또 다른 IT 플랫폼 거물 네이버도 진입했다. 지난 1월 국내 최고 수준 사내병원 ‘네이버부속의원`을 오픈하고 코로나19 확진 직원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실시 중이다. 이에 앞선 지난 2019년 일본 자회사 라인은 소니 계열 의료 플랫폼업체 M3와 합작법인 라인헬스케어를 설립하고 원격의료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네이버 헬스케어 부문을 이끄는 인물은 나군호 네이버 헬스케어연구소장이다. 로봇 수술 전문가인 그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영입됐다. 카카오가 플랫폼의 높은 접근성을 토대로 의료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나 소장은 기술에 집중한다. 그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AI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며 “로봇·자동 물류 시스템·5G 관련 기술을 사내에 먼저 적용한 후 다른 곳에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네이버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스마트서베이, 환자(PT) 서머리, 보이스 전자의무기록, 클로바 AI콜 등 솔루션을 개발하며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IT 기업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마이데이터 사업권을 획득한 SI업체 LG CNS는 GC녹십자헬스케어, LG유플러스와 손잡았다. 데이터 기반 헬스케어 서비스가 비즈니스 모델이다. 고객이 가족 건강, 자녀 성장, 음식 소비 등 데이터 제공에 동의하면, GC녹십자헬스케어는 식이요법, 영양소 정보 등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KT는 지난해 10월 생체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스타트업 제나와 함께 헬스케어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사업을 시작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초 유전자 분석 기반 구독형 헬스케어 서비스 케어에이트 디엔에이(care8 DNA)를 업그레이드했다.

LG전자는 최근 주주총회에서 의료기기의 제작·판매업을 블록체인 기반 소프트웨어의 개발·판매, 암호화 자산의 매매·중개업 등과 함께 사업 목적에 추가해 눈길을 끌었다. 미래 먹거리인 헬스케어 사업을 경영 목적에 공식적으로 추가하며 적극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구광모 LG 회장이 추구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한 신사업 발굴·육성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는 평가다.

LG전자는 지난해 카이스트와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센터를 만들어 인프라 확충을 위한 기술 개발에 시동을 건 상태다. 이미 2020년 탈모 치료 의료기기 ‘메디헤어’ 등 가정용 의료기기 등을 선보이며, ‘하드웨어’에서 주도권 선점에 나섰다.

IT 기업들의 헬스케어 사업 참여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AI 원격진료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애플은 AI 웨어러블기기로 심전도, 혈당 수치 등을 확인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음성인식 기술 기업 뉘앙스를 인수하고 의료 상담 서비스 개발에 들어갔다.

IT 기업이 디지털 헬스케어에 진출하는 이유는 데이터 경쟁력이 탄탄해서다. 대부분 기업이 높은 수준의 데이터 처리 기술을 갖고 있는 데다, 플랫폼 기업으로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맞춤형 분석이 중요한 헬스케어 시장에서 IT 기업이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쉽다는 의미다.

▶IT 기업 맞춤형 데이터에 강점

▷중공업 회사도 헬스케어 군침

국내 대표 중공업 기업도 가세했다. 현대중공업지주에서 HD현대로 사명을 변경한 정기선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성장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부문에 역량을 쏟는 중이다. 조선과는 직접 관련 없는 투자지만, 그룹 지주사의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된 정 대표가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디지털 헬스케어를 미래 먹거리로 삼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HD현대는 지난 3월 31일 삼성전자와 모바일 헬스케어를 제공하기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이라는 ‘동맹’을 맺었다. HD현대 자회사 메디플러스솔루션이 자체 개발한 모바일 건강관리 앱을 갤럭시 워치와 연동시켜 환자에게 정교하고 개인화된 헬스케어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전략이다.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를 추진하는 메디플러스솔루션은 HD현대의 투자 전문 자회사가 지난해 8월에 인수한 회사다. 솔루션 고도화와 환자 만족도를 높이고자 서울아산병원도 협력한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HD현대가 미래에셋그룹과 함께 디지털 헬스케어·바이오 분야의 유망 벤처기업을 찾아 키우기 위해 340억원 규모의 펀드도 조성했다. 이 투자 펀드에 대웅제약과 서울아산병원도 참여한다. 지난해 12월 HD현대 자회사 현대미래파트너스가 암크바이오를 설립하며 신약 개발을 사업 목적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유통 강자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헬스케어 사업에 눈독을 들인다. 롯데지주는 최근 700억원을 출자해 롯데헬스케어를 만들었다. 롯데그룹의 헬스케어·바이오 사업을 이끌 수장으로 이훈기 롯데지주 부사장을 임명했다. 이 부사장은 1990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1995년 신동빈 회장과 함께 롯데그룹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신 회장 신임을 얻고 있는 전문경영인 중 한 명이다. 아울러 삼성전자 삼성헬스서비스 플랫폼 총괄 파트장 출신인 우웅조 상무보(신성장3팀장) 등도 스카우트했다. 신 회장의 헬스케어 사업에 대한 관심과 육성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4호 (2022.04.13~2022.04.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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