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 선언을 한 지 16년째 되는 해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와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결과물인 혁신도시가 성과로 꼽히지만, 수도권 집중화·과밀화는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 지방에는 재정 부족에다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몰린 시·군·구가 적지 않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지역균형뉴딜 기획’ 시리즈 마지막 순서로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김사열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케이(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광재 의원(강원 원주갑)의 대담을 마련했다. 김 위원장은 지역 주도의 ‘한국판 뉴딜’을 이끌고 있고, 이 의원은 지역에 근거지를 둔 혁신기업도시 의원 모임을 만들어 균형발전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들은 “지역의 교육·의료·문화 등 정주 여건 개선을 기반으로 국가 대개조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담은 지난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회의실에서 진행했다.​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수도권 집중은 더 심화됐고 일부 지자체는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균형발전 정책의 반성적 평가가 선행돼야 할 것 같다. 실태를 먼저 짚고 이야기해보자.

김사열(이하 김) “참여정부 때 수도권 인구 집중이 46%에 달했다.(지난해 말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2003년 국가균형발전이란 화두를 걸고 지금의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세종시와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국가혁신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등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정권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지면서 정책을 연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공적 시스템을 대전환하지 않으면 힘들다. 예를 들어 예비 타당성 조사, 경쟁에 의한 선발, 공모제 등이 결국은 지역을 버리게 만들고 여건이 좋은 곳만 기회를 갖게 한다. 큰 흐름을 보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광재(이하 이) “균형발전을 하려면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때 균형발전위원회가 75차례 정도 열렸다. 그 결과 10개의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생겼고, 행정수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 이후 균형발전 정책은 엠비(MB)와 박근혜 정권 때 실종됐다. 두번째로는, 지역이 살려면 혁신과 기업이 있어야 한다. 결국 지역 산업에 특화된 대학이 나와야 한다. 지식 없이는 절대 혁신이 없고, 혁신 없이는 기업이 없다. 대학의 혁신을 이루는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다. 세번째는 정주 여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혁신도시를 보면 대부분 장거리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다. 지방에서 살아도 교육과 일자리, 문화생활 등 정주 여건을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제2단계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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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7월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왜 ‘한국판 뉴딜’인가? 지역뉴딜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고 재난이 왔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닥쳤다. 한국판 뉴딜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코로나 이후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이루는 대전환 계획이다. 2025년까지 국비 114조원을 포함해 160조원을 투자하고 190만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역균형 뉴딜은 한국판 뉴딜이 지역에서 구현되어 단기적으로는 지역 경제를 회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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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뉴딜’ 예산 절반인 75조원을 지역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는데?

“한국판 뉴딜 예산 160조원 중 75조원이 지역에 투자되는 사업이다. 지역균형 뉴딜은 지역 회복과 지역의 내생적 발전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균형위는 광역 시·도와 일선 시·군·구로부터 2853개의 지역균형 뉴딜 과제를 받았고 충북도의 빅데이터 기반 맞춤형 화장품 플랫폼 구축, 울산시의 수소전기차 안전인증센터, 전남 나주시의 저압직류 핵심기기 인증지원센터 기반 구축 등 사업에 대해선 국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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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더불어민주당 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

―여당은 ‘케이-뉴딜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사회안전망을 위한 휴먼 뉴딜의 실현과 입법 과제를 뒷받침하는 당내 조직이다. 첫째,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특색 있게 키우려고 한다. 다양한 혁신 산업도 육성할 것이다. 2018년 삼성 매출이 267조원이고 벤처 매출은 192조원이었다. 4대 그룹 종사자가 66만명, 벤처 일자리는 71만명이다. 벤처가 미래이고 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 결국 벤처에서 일자리와 혁신이 일어난다. 지역뉴딜벤처펀드를 만들어 혁신 산업을 촉진시키자는 게 제 생각이다.”

―지역뉴딜펀드의 성공 사례로 꼽을 만한 게 있나?

“지난 11일 부산에서 ‘지역뉴딜벤처펀드’가 만들어졌다. 기술보증기금과 부산시 등이 펀드를 만들어 블록체인, 친환경 에너지 등 혁신기업을 키우는 것이다. 지역의 혁신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부의 모태펀드를 활용해 창업과 벤처기업에 중점 투자하는 펀드를 확대 조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원주는 지역 특성화 산업인 보건의료 데이터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금융사에 위탁한 적립금 일부를 떼어내 벤처펀드로 활용한다. 전남 나주로 본사를 옮긴 한국전력은 자체 펀드를 만들어 광주·전남으로 이전하는 중소기업들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이번에 부산에서 혁신 기술 하나로만 1천억원 규모의 지역 펀드를 만들었다. 이런 것을 전국에 8개를 발굴해 지원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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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돈이 들어갈 텐데?

“한해 국내 금융권에서 움직이는 자산이 8천조원쯤 된다. 이 중 국가가 갖고 있는 것이 2천조원, 민간 대기업은 900조원쯤 된다. 약 2%의 안정 수익을 주면 움직일 수 있는 돈이 몇백조원이다. 국가 예산에 기대지 말고 시중의 유동자금을 미래투자자금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게 한국형 뉴딜 펀드다. 벤처 자금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것을 지역에는 만들 수 없을까? 세제혜택 등 강력한 유인책을 주면 가능하다. 나주의 한전 사례가 있고 원주는 의료데이터, 광주·전남은 에너지, 전북은 농촌진흥청처럼 지역을 특화하면 가능성이 있다.”

―공공기관과 달리 민간기업들이 쉽게 움직일까?

“일단 지방에 가서 물어보면 사람 구하기가 어렵고 다들 서울로 간다고 한다. 대학 총장들 만나면 우리 애들 취직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에 법안 발의를 해 놓은 게 있다. ‘혁신·기업도시 소재 공공기관과 산업체의 병역특례 제도 도입’, ‘지역 특성과 주민 의견 고려한 학교 신설’ 등이 담겨 있다. 기업들이 혁신도시로 이전할 만한 확실하고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한 게 핵심이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는 참여정부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하나로 추진돼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양대 축으로 기대를 모았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기업 유치를 통해 수도권 과밀과 국토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 4·15 총선을 통해 10년 만에 국회로 돌아온 이 의원은 최근 지역의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인재 육성과 인재 유인, 정주 여건 개선 등을 목표로 한 ‘혁신·기업도시 발전 5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송기헌, 서삼석, 윤재갑, 김성주 의원 등 13명이, 국민의힘에서는 송언석, 박성민 의원이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그동안 혁신·기업도시의 발전이 정체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정주 여건이 열악했다. 지역에서 기업을 하면 손해라는, 그런 고민들을 해소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역균형 뉴딜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시·군·구 단위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전에는 여력과 시스템이 없었다. 이번에 한국판 뉴딜의 기본 정신에 지역균형 뉴딜을 포함시키고 예산 절반을 지역에 투입하려는 것은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주춧돌을 확실하게 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한해 50만명이 귀농·귀촌을 하는데, 저는 여기서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본다. 정주 여건이 좋아지고 지식과 혁신 역량을 갖춘 지역이 등장하면 미래형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많은 일을 벌이기보다 한 도에 하나씩 핵심적 산업을 키워 몇 개만 성공시키면 이 길을 갈 수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7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와 청와대를 모두 세종시로 옮겨 행정수도를 완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참여정부가 추진한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진척이 있나?

“국회를 먼저 이전하자는 게 제 생각이다. 헌법재판소에서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는 것을) 관습헌법으로 판단한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 결정을 존중하면서 가장 빨리 실천할 수 있는 게 국회 이전이다.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 세종시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명실상부하게 세종시를 세종시답게 만들자는 얘기다. 국회가 떠난 자리는 첨단 플랜을 갖춘 금융 중심지로, 여의도를 여의도답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정부 부처들이 많이 내려가 있는데 이번 기회에 정주 여건의 보완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 연장선에서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 여건도 다양하고 과감하게, 획기적으로 바꿔주면 좋겠다. 예컨대 중국에도 영국학교가 3개나 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하면 미국 학력을 인정해주는…. 공급자 중심의 행정에서 벗어나고, 국민들이 필요한 것을 해줘야 한다. 지방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지난해 전교생이 10여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놓였던 경남 함양군의 한 초등학교가 민·관·기업 등의 협력으로 살아난 사례가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는 집을 짓고 아이들을 데려온 학부모에게는 주택 제공과 일자리 알선을 하는 등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농촌을 살렸다.”

“강원도도 아이들이 크면 춘천이나 수도권으로 가버려 지역에 아이들이 없다. 화천군은 고민 끝에 아이들 교육비로 10년 동안 2500억원을 쓰기로 했다. 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비를 대준다. 프랑스의 균형발전 정책이 성공한 것은 인재 양성이 결정적이었다. 어떤 정부든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펼치기 위해선 앞으로 균형위의 역할과 책임이 더 커질 것 같다.

“국가균형발전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1963년 국가균형발전과 지역발전 정책을 전담하는 기관(DATAR)을 설립하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지역발전투자협약 제도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일본은 늦게 시작했음에도 자문기관이 아니라 실행기관으로 힘이 실렸다.”

“균형위의 법적 성격이 현재 대통령 심의 자문기구로 돼 있어 집행기능에 한계가 있다. 여야 의원들과 함께 균형위를 실질적 권한을 갖춘 장관급 행정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기 위해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진행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정리 이주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사진 김혜윤 <한겨레> 기자